70년대식 "대통령 보위"..비망록 속 김기춘은 '청와대 대공수사국장'

2016. 12. 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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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상투쟁 다진 청와대회의
“근위병·전사 자세로, 전투력 잃지마라”
5·16 쿠데타엔 “애국 군인의 구국일념”
유신치하 중정 대공수사국장 때 모습

사정기관 동원 ‘정권비판 겁박’
“KBS 좌파이사 성향 파악” 지시
“비판보도 고소”“우호 언론 보조금”
군사정권식 ‘언론공작’ 주문도

청문회선 “몰랐다”“아니다”
“부끄럽지만...최순실 이제 알았다”
“헌재 결정 미리 인지? 완전 루머”
“업무일지는 김영한 개인 생각” 강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4년 12월15일 청와대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신의 업무수첩을 펼치고 있다. 오른손에 파란색 수성펜이 들려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재직 시절인 2014년 12월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파란색 펜으로 수첩에 메모한 내용.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재직 기간 작성한 업무일지(비망록)에 등장하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40년 전 유신 치하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의 사고방식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국정 전반을 총괄 보좌하기보다는 “대통령 보위”를 위해 시대착오적 공안통치 전략과 전술을 짜고 실행하는데 집권 초중반 귀중한 시간을 흘려 보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에서 검·경과 보수단체, 종편 등을 조종하는 지침을 깨알같이 내리고 그 결과도 꼼꼼하게 챙겼던 그는, 정작 7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는 “그런 내용이 있다고 해서 비서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며 발을 뺐다. 특위 위원들이 “그럼 이게 다 우연이냐”며 따졌지만, 김 전 실장은 “민정수석의 주관적 생각도 있다”며 망자 뒤로 숨었다.

“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보위” “이념 대결 속에서 생활, 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가치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회색지대 無(무)…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2014년 6월14일, 김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첫 출근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공안검사 출신인 김 전 실장은, 마찬가지로 같은 공안통 검사였던 김 전 수석에게 초임 검사 대하듯 “헌법가치 수호”를 위한 전사적 자세를 요구했지만, 그 방점은 “대통령 보위”에 쏠려 있었다. 김 전 실장은 “근위병, 호위무사, 끝까지 전투력을 잃지 않도록”하라고 독려하고, “국가 정체성과 헌법가치 수호 노력”을 “전사들이 싸우듯이”(9월5일)하라고 했다.

수석비서관회의는 사상교육의 장이자 전 정권 인사들이 아닌 “순혈”(10월30일)들의 의식화를 위한 자리였다. 검사 시절 유신헌법을 만드는데 간여했던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수석들을 상대로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6 쿠데타에 대해 “애국심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라며 정당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북한보다 가난했다. 반공의식 약화로 안보위기 상황이었다. 초등학생도 시위하는 등 사회질서가 문란했다. 애국심 가진 군인, 구국의 일념에 일으킨 사건이 5·16이다. 그 결과 경제성,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게 됐다.”(7월8일)

“정권 두려움 갖도록 사정 강화” 김 전 실장에게 사정기관은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한 발언과 행동을 겁박해 찍어누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정권 대하여 도전, 두려움 갖도록 사정활동 강화”(7월4일)하라는 지시가 버젓이 내려졌다. 김 전 실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공직, 민간, 언론을 불문”하고 “독버섯처럼 자랐다”고 지적하며 “<한국방송> 좌파 이사에 대한 성향을 확인”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요부처 실국장 동향을 파악”해 “충성심을 확인”하라며 공직기강 감찰 수준을 벗어난 사실상의 사찰을 지시한다.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대응이 청와대 비서실의 주임무가 됐던 2014년 12월11일, 김 전 실장은 “인간 쓰레기를 솎아내는 일을 점진적으로 추진토록 하라. 그것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 전 실장은 전교조 등 ‘생각이 다른’ 이들을 박멸의 대상으로 봤다. 2014년 7월13일, 김 전 실장은 “세월호특별법이 국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봤다. “좌익들이 국가기관 진입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의 이념 대결적 자세는 “좌익, 운동권은 성적 분방, 방종”(8월31일)하다는 근거 없는 비방으로까지 이어진다. “생존 위협하는 적군으로”(9월10일) 보라는 시대착오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우호 언론에 보조금…적에는 적개심” 김 전 실장은 특히 정권에 부정적인 보도와 언론사에는 “적개심”을, 우호 언론에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횡행하던 돈을 통한 ‘언론공작’까지 주문한다. “요즈음 국정운영을 둘러싼 언론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음… 허무맹랑하고 불합리한 일방적 지적·비판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면 안됨. 반드시 정정보도,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 고발, 손배청구 등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해야….”(7월2일) 정부 예산을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에만 쓰라고 지시하기도 하는데 “홍보 보조금 지급시 단체 성향에 따라 광고도 그와 같이…. 국정철학 공유 언론에 배분, 선 실태 파악”하라며 “적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져야”(11월26일)한다고 강조한다.

“업무일지 내용은 김영한 개인 생각” 김 전 실장은 “현 정부 출범 지지 세력은 헌법 근본가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초조한 나머지 유화론에 경도돼서는 안 된다”(8월27일)며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헌법 가치를 무너뜨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발뺌으로 일관했다. 그는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회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하다”면서도 “최순실은 이제야 알았다”, “몰랐다”, “나는 관련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해 김 전 실장과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시기와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그는 “완전한 루머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는 토론보다는 자신이 검찰총장 등으로 있던 수십년 전의 경험을 거론하며 이를 21세기 국정운영에 관철시키려는 모습이 뚜렸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 대해 “우리 회의는 일방적으로 실장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소통하는 자리다. 거기(업무일지) 적힌 것이 전부 실장이 하나하나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 회의 참여자들의 의견이나 작성한 분의 생각이 혼재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수석의 죽음을) 애도한다”면서도 “제가 괴롭혀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1월29일 “공(功)은 쉬 잊혀지고 과(過)는 오래 남는다. 공인의 과는 특히 오래 남는다. 눈이 쏟아질 때는 빗자루로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 나온 김 전 실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설’을 부질없이 쓸어내려고 했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 못 해서 오늘날 이런 사태가 된 데에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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