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령탑, 60년 만에 대수술..모델은 GE

이성훈 기자 2016. 12.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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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이재용 발(發) 대변신’의 물꼬를 트고 있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미전실 폐지는 단순히 조직 하나를 없애는 게 아니다. 비서실(미전실)에서 각 계열사에 지시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이병철 창업주 이후 지속된 ‘오너 중심의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구조’를 60년 만에 대수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안의 핵심은 ‘GE식’ 모델이다. GE의 의사결정구조는 ‘이사회 중심의 결정, 지시 대신 전사(全社)조직을 통한 지원’으로 요약된다.

◇“컨트롤타워는 20세기 유산”… 지시 대신 지원하는 조직 만들 듯

2002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상무보는 미국 뉴욕 인근에 있는 ‘크로톤빌 연수원’의 ‘차세대 CEO 후보군 교육(EDC)’ 과정에 입소했다. 세계적 기업인 GE가 매년 10여 명의 차세대 글로벌 경영 리더를 선발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GE는 지주회사를 정점으로 항공·헬스케어·금융 등 10여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어 한국의 대기업과 유사한 구조였다. 2002년 매출액도 GE(154조원)와 삼성(144조원)은 엇비슷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과 닮은 GE의 경영방식을 눈여겨 봤고, 이후 GE의 핵심 경영진과 교류하며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 부회장도 평소 “기업의 컨트롤 타워는 20세기의 유산이며, 삼성 계열사들을 독립적이고 역동적인 벤처기업처럼 변모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미전실 해체’ 발언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며 “지배구조를 포함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미전실은 대형 인수합병(M&A) 등 그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약 60개 계열사를 통솔하는 역할을 해왔다. 1959년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출발해,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본부, 2006년 전략기획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그룹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폐지됐으나, 2010년 “그룹 운영 효율과 시너지 효과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부활했다. 현재 전략·기획·법무·인사·홍보 등 7개 팀에 약 200명이 속해 있다. 임직원들은 대부분 삼성전자 소속이지만, 미전실 자체는 특정 계열사에 소속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법적 실체도 없이 주요 의사결정을 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이라는 단일 조직과 핵심 임원 몇 명이 주요 이슈들을 결정하는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미전실이 내리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효율과 성과를 냈으나, 변화의 속도가 빠른 현재는 오히려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risk)이 더 크다는 것이다. 삼성은 또 미전실 해체와 함께 자연스러운 경영진 ‘세대 교체’도 검토 중이다.

미전실이 없어지더라도, 현실적으로 60개나 되는 계열사 간 조율을 맡을 조직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미전실처럼 지시나 결정을 하는 대신, 각 계열사를 지원하는 별도 조직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GE의 ‘전사지원조직(GE corporate staff)’이다.

GE는 그룹 차원의 핵심 결정은 지주회사 ‘GE’의 이사회가 내린다. 그리고 여기에 속한 ‘전사지원조직’은 법무·인사·재무·사업개발 등과 관련해 각 계열사들이 원하는 업무를 지원한다. GE 관계자는 “전사지원조직은 의사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각 계열사의 경영활동을 돕는 활동만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사회 중심의 계열사 책임 경영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폐지하는 대신 각 계열사의 책임 경영을 강조할 계획이다. 이사회 역할 강화가 핵심이다. 이미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되며, 이사회에 직접 힘을 실었다. 또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1명 이상을 이사회에 추천하고,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해 이사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이런 방식을 삼성전자뿐 아니라 전 계열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또 그룹을 ‘제조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 체재로 개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가 디스플레이·SDI 등 제조 계열사를, 삼성생명이 화재·카드 등 금융회사를 방식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최근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삼성은 계열사 간 협조나 공동 결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협의회를 통해 결정하는 구조를 고민 중이다. 제조·금융지주회사에 GE의 ‘전사지원조직’ 같은 조직을 만들어 계열사의 경영이나 ‘CEO 협의회’ 활동을 돕는 구조이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지금처럼 경영 환경이 급변할 때는 각 계열사 또는 현장 임직원의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이 부회장의 개혁도 결국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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