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한 남자..하늘로 간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

박찬은 2016. 12. 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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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한다기보다는 지하 100km 아래로 들어가는 듯한 극저음의 허스키 보이스로 읊조리는 듯하다. LP판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기 가장 좋은 계절에 그는 하늘로 갔다. ‘I’m Your Man(난 당신의 남자)’이나 ‘Dance Me to the End of Love(사랑의 마지막까지 춤을 춰요)’를 들으면 온몸의 뼈마디가 흐물흐물해진다. 요즘 세대에겐 그저 예능의 한 장면에 나온 효과음인 줄 알지만 ‘I’m Your Man’은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아티스트였던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1934~2016)의 대표곡이다. 노욕(老慾)이 한국사회를 지배한 2016년의 겨울, 이제는 하늘에서 유려한 사색에 빠져 있을 노년의 시인이 남긴 노래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깊은 사랑꾼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뮤지션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잠자다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레너드 코헨을 잃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물론 고인은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힐 만큼 세상 모든 일에 초연했지만.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할 일이 많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고통에 허물어지거나 너무 불편하지 않기만 바란다.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은 그 정도다.” 전쟁과 평화, 관능과 사랑, 증오와 섹스. 가창력보다는 연주와 멜로디, 때론 비속하고 때론 성스럽지만 때론 신성모독적인 가사가 버무려져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로 그는 전설적인 아티스트가 됐다. 이제는 그의 유작이 된 14집 <유 원트 잇 다커 You Want It Darker>는 바쁘게 투어를 하는 와중에 만든 앨범으로, 식당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환자용 보조 의자에 앉아 녹음한 앨범이다. 아들 아담 코헨이 직접 프로듀서로 나섰다. 담배를 든 채 밖을 내다 보는 커버 사진도 아들이 직접 찍었다. 1960년대 그리스 히드라 섬에서 소설을 쓰며 지내던 당시 만난 연인 마리안느 일렌은 그 당시 코헨의 여자친구를 뺏어간 작가의 아내였다. 연인을 잃은 슬픔과 깊은 우울증을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극복해낸 코헨은 마리안느와 10년간 함께 생활했고, 헤어진 뒤 ‘소 롱, 마리안느(So Long, Marianne)’라는 명곡을 만들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음악감상실의 단골 신청곡이었으며 레너드 자신의 시에 최초로 노래를 붙인 ‘수잔(Suzanne)’과 함께 그의 1집에 수록돼 있다. 마리안느가 창가의 새를 보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버드 온 더 와이어(Bird On The Wire)’, 사랑의 ‘성(聖)’과 ‘속(俗)’을 노래한 ‘할렐루야(Hallelujah)’ 역시 마리안느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곡.

‘우리는 이제 늙었고 몸은 허물어지고 있네요. 나도 곧바로 당신을 따라갈 것 같아요. 너무 가까이에서 따라가고 있어서 당신이 손을 뻗으면 내 손에 닿을 수 있을 만큼.’ 이러한 편지 내용을 들려주자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던 마리안느 일렌이 눈물을 흘렸고, 그녀는 편지가 전해진 지 이틀 만에 영면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아들 아담 코헨, 손자와 함께 있는 레너드 코헨
▶캐나다의 밥 딜런, 사망 직전 유작 앨범을 내다

80세가 넘어 가진 2014년 더블린에서 열린 ‘Live in Dublin’ 무대를 보라. 무릎을 꿇은 채 중절모를 벗고 초 저음의 바리톤 보이스로 노래하며 도발적인 시선으로 앞을 쳐다볼 때의 섹시함이란. 고령의 나이에 주 5회 몇 달씩 투어에 나서던 그는 자기 목소리의 우울함에서 벗어나려 늘 여성 백 코러스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세션 멤버들의 솔로가 시작되면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연주자에 대한 예우를 차리는 모습에서 지금은 사라진 ‘신사’의 잔향이 느껴진다. 따라 하지 못할 극저음의 바리톤 보이스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CF에 등장했다. 수없이 리메이크된 전설적 명곡들엔 베리 화이트의 기름기 가득한 보컬이나 거친 톰 웨이츠와는 또 다른 목소리가 담겨있다. <You Want It Darker>는 그의 스완송(최후의 작품)이다. 감정을 흔드는 가사와 고전적인 멜로디는 그대로여서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같은 앨범을 냈다는 평을 얻었다. ‘나무에 잎이 하나도 없고/바다에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새로 뜨는 태양 빛이 아무것도 비출 것이 없을 때/그 정도로 난 고장 날 것 같아요/세상을 진짜로 만들어줄 당신의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그렇게 느껴질 거에요.’(‘If I Didn’t Have Your Love’) 마리안느에게 바치는 듯한 ‘If I Didn’t Have Your Love’, ‘Traveling Light’, 할렐루야 시절의 멜로디 라인을 연상시키는 ‘Treaty’ 등에서 이는 특히 더 그렇다. 너바나(Nirvana)의 마지막 싱글곡 ‘Pennyroyal Tea’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등장한다. ‘다음 생애에는 내게 레너드 코헨을 들려줘. 그럼 난 영원토록 탄식할 수 있겠지’. 생전 빌보드 차트에 단 한곡도 오르지 않았음에도, 후배들이 두 장의 트리뷰트 앨범을 바친 가수. 노래하는 시인, 레너드 코헨의 영면에 그의 유작 앨범에 있는 ‘Traveling Light(움직이는 빛)’ 가사를 바친다. ‘난 움직이는 빛이에요/이제 안녕이네요/한때 내 빛이었던/한때 나의 별똥별이었던 당신/난 시간에 쫓기고 있어요/곧 바가 문을 닫을 거에요/그 바에서 나는 기타를 연주하곤 했어요/난 혼자가 아니에요/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움직이는 빛을 몇몇 만났거든요.’(‘Traveling Light’)

Biography 1934년생으로 9살 무렵 사망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글을 쓰기 시작한 레너드 코헨은 처음엔 작가를 준비했다. ‘캐나다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맥길 대학 재학 중에 첫 시집을 내고 시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1967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 도미한다. 그리고 이듬해 데뷔 앨범 <Songs of Leonard Cohen>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1988년 <I’m Your Man>을 통해 54세의 나이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 1990년대 무렵에는 25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미모의 여배우 레베카 드 모네이와 약혼하기도 한다. 14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는 60세가 되던 1994년 무렵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찰에서 5년 동안 선불교 수행에 나선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매니저의 횡령으로 500만 달러 이상을 빚지면서 2008년에는 파산을 극복하기 위한 투어를 시작한다. 시인과 소설가로서도 인상적인 활동을 펼쳐 2010년에는 제53회 그래미 어워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2011년에는 스페인 최고 권위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10년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 나온 ‘Everybody Knows’, <슈렉><바스키아> 등 온갖 영화와 본 조비, 루퍼스 웨인라이트 등 후배 200여 명의 리메이크 리스트만으로도 한 트럭은 될 ‘할렐루야(Hallelujah)’ 외에도 수많은 전설적인 노래를 배출했다.

(자료제공: 소니뮤직)

[글 박찬은 기자 사진 소니뮤직]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57호 (16.12.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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