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 젊고 미숙한 총수, 저래서 삼성 이끌 수 있겠나

이철현 기자 2016. 12. 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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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미래전략실 체제 해체해야

 

삼성의  경영지배구조를 로마의 통치 구조와 비교해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등재되면서 초일류 기업집단 삼성의 종신 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국내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25만4000명(4월말 기준) 삼성인의 총사령관이다. 그는 반도체·정보통신·디스플레이·가전·금융처럼 시장 경쟁이 치열한 최전선을 지휘할 최고경영자(CEO)를 인선한다. 상대적으로 경쟁 환경이 우호적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소비재·유통·호텔·레저 영역의 CEO 인선은 미래전략실의 판단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로마를 법률상 형식적으로 통치하는 이는 집정관 2명이다. 집정관은 황제의 칙령을 실행하고 황제가 로마를 비웠을 때 황제를 대신한다. 삼성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겸 부회장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끈다. 이 두 부회장은 집정관 역할을 수행한다. 최지성 부회장이 최측근에서 황제를 보필하며 100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미래전략실을 통해 계열사 59개를 일사불란하게 이끌고 있다. 권오현 부회장은 그룹 최강의 단위 전력인 삼성전자의 디바이스솔루션 사업부분(반도체)를 총괄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로마 최대의 위협인 게르만족을 막아내는 고지게르마니아와 저지게르마니아 총독에 가깝다고나 할까.

 

 

명목상 삼성그룹 계열사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삼성사장단회의다. 신규 사업 진출이나 대규모 투자와 관련해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원로원’에 해당한다. 삼성사장단회의서 논의된 안건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이 부회장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원로원은 황제가 내린 칙령을 법률화하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 마찬가지로 삼성사장단회의도 이회장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주요 계열사 사장단만이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이 회의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삼성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이자 영광이다. 마치 원로원 멤버가 되는 것이 로마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의 지도자가 누릴 최고의 영광이었던 것처럼.

 

 

삼성 미래전략실은 권한과 업무가 방대해 로마의 통치기구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로마가 보유한 두 가지 통치기구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그리스나 이집트 출신 해방노예로 구성됐던 비서진을 보자. 

 

황제는 집안에서 일하는 해방노예에게 각자 역할을 부여해 제국 통치를 위임했다. 회계·청원서·편지·필기·지식·정보·공부 담당으로 해방노예에게 직책을 주고 세분된 업무를 분담 처리하게 했다. 이 해방노예의 대장은 ‘마요르도무스’라고 부른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마요르도무스는 그리스 노예 나르키소스였다. 

 

이 부회장의 나르키소스는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다. 나르키소스는 온갖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지만 최지성과 장충기는 어떨까. 최지성 부회장은 몰라도 장충기 사장은 비선실세 최순실과 유착을 실무적으로 총괄한 듯하다.

 

 

미래전략실은 제한적으로 황제의 친위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친위대는 반란으로부터 황제를 보호하고 수도 치안을 맡는 임무를 수행했다. 미래전략실 산하 조직인 경영진단팀은 그룹 계열사의 부실이나 부정을 조사하고 처벌한다. 이 부회장이 지시하면 경영진단팀이 해당 계열사에 파견되어 회사 관련 모든 자료를 압수하고 임직원을 조사한다. 그러다보니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실적이 저조한 데다 경영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되면 경영진단팀이 해당 계열사에 파견돼 최고경영진을 조사한다. 감사 결과가 좋지 않아 임원진 전원이 한꺼번에 물갈이된 적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로마 황제에 비견된다고 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처럼 걸출한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섯 가지 자질인 지성·설득력·지구력·자제력·불굴의 의지를 모두 갖춘 흔치 않은 인물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력과 인내력에 통합력까지 갖춘 불세출의 지도자이다. 매력적인 외모와 지중해를 담을 수 있는 포용력까지 갖췄다. 무엇보다도 이 두 지도자는 자기 역량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 후광을 업고 온갖 편법으로 총수 자리에 오른 이 부회장이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는 없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알려진 바와 같이 젊은 시절 독일 아우토반에서 스피드를 즐기다 차량 전복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 이후 몸이 크게 불편해졌다. 더욱이 10년 전에는 ‘폐암’으로 병고를 치렀다. 따라서 재발 위험이 높아 지나치게 몸을 혹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미래전략실의 권능이 막강해졌다. 우선 건강이 온전치 않은 최고 경영진의 두뇌를 지탱하기 위해 25만 명 삼성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이들 100명을 뽑아 미래전략실을 구성했다. 미래전략실 체제(과거 구조조정본부)는 위기 극복이나 사업 재편 과정에서 놀랄만한 효율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비슷하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하체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탓에 걸을 때마다 절뚝 걸리기도 했다. 그는 이전 황제와 달리 강철 같은 체력을 갖추지 못해 해방노예로 구성된 비서관들에게 크게 의존해 제국을 통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48세다. 아버지와 달리 상당히 건강하다. 해방노예 같은 비서관들 도움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공개 망신을 당하게 만든 미래전략실이 괘씸할 듯하다. 황제를 보필하는데 실패한 조직은 늘 그렇듯이 하루아침에 해체된다. 미래전략실은 이제 그 소용이 다한 듯하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이건희 회장이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운이 좋아 2세는 어떻게 탁월했다고 치자. 과연 그 운이 3세까지 이어질까? 세습으로 황위에 오른 로마 황제치고 제국을 위기로 몰아가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자기 힘이 아니라 선황이 미리 정하거나 세습으로 황위에 오른 대표 사례가 칼리굴라, 네로, 콤모두스이다. 티베리우스는 선황 아우구스투스 유지를 받들어 칼리굴라에게 황위를 물려줬으나 칼리쿨라는 제국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다 친위대 손에 죽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친자로 황위를 이어 받은 네로는 ‘악명 높은 황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현제 이전 로마 역사에서 손에 꼽는 악제(惡帝)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자인 콤모두스 역시 로마 제국을 멸망의 길로 이끈 것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칼리굴라나 네로처럼 형편없는 지도자가 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 못지않은 최고경영자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 그에게 삼성을 맡긴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그 도박의 위험이나 부담은 단지 삼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청문회에 증인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은 어눌했다. 질문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고 동문서답하기 일쑤였다. 과연 25만명 삼성인을 이끌 수 있는 그릇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총자산 645조원, 총매출 2백72조원, 고용인원 25만 명, 한국 총수출량 25%가 넘는 거대 기업집단이 리더 한명 잘못 만나 망가지기라도 하면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 국민이 삼성그룹의 경영지배구조나 세습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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