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드 보복에 '악' 소리도 못하고 쓰러지는 중소기업

백주연 기자 입력 2016. 12. 7. 17:29 수정 2016. 12. 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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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파기, 상품 진열거부, 통관 지연.. 보복 경제제재에 중소기업 무방비, 기계부품·유아복 등 '금한령'에 수출 물거품, 없어 못팔던 화장품은 中 매장서 아예 빠져, 커지는 유동성 압박에 정부차원 대책 절실
춘제 연휴를 이용해 한국에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올 초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 화장품 코너에서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중견기업인 A사에서 홍보·마케팅팀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형신(가명·43)씨는 두 달 전 회사로부터 급작스럽게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신사업으로 2년 넘게 추진해온 중국 내 홈쇼핑·전자상거래 유통사업이 중국 측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막히면서 회사가 인력을 감축한 탓이었다. 김씨를 포함해 해외 영업팀과 홍보·마케팅팀의 30명 넘는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직원들은 충격이 크지만 회사의 사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회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회사는 중국 측과 업무협약을 맺은 뒤 중국어 능통자와 무역 전문가 등 실무진 인력을 채용하고 중국 사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중국 정부의 금한령(한류스타나 한국산 제품 규제)으로 계약이 갑자기 없던 일이 되면서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회사 재정상태가 나빠져 1만원을 넘었던 주가도 반 토막이 났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한류 규제가 홈쇼핑·전자상거래 등 전 산업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수출에 주력하던 국내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체계적인 영업망이 갖춰지지 않고 재고관리 시설도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2~3개월 사이에 중국에서 냉한 기류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국 수출 증감률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상품 유통을 맡고 있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홈쇼핑 방송에 한국 제품의 노출을 줄이고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 된다는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미 계약해놓은 상품들을 고스란히 창고에 쌓아놓아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홈쇼핑과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K뷰티’로 인기를 끌던 국내 화장품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태반 화장품과 미백·주름완화 제품 등 기능성 화장품으로 중국 내 구매율 1위를 기록하던 B업체는 최근 사실상 중국 시장을 포기했다. 매출의 80%가 중국 수출물량일 정도로 중국 시장의 비중이 컸지만 금한령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국 화장품 노출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B업체의 대표는 “아예 매대에 한국 화장품을 진열하지 않는 매장도 속속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부터는 한국 화장품 제품 유통 자체가 어려워질 것 같아 동남아 시장 등으로 수출지역을 변경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는데 영업환경이 갑자기 변하면서 K뷰티를 기반으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던 중소업체들이 하나둘씩 사업을 접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약 무산이나 상품노출 금지에 더해 세관 통관이 지연되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들의 현금흐름을 옥죄고 있어서다. 금속·건설 기계 부품을 수출하는 C기업은 중국 측과의 계약이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세관 통관이 2개월째 지연되면서 유동성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거래처 대금과 직원 월급 등을 지급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세관 통관이 지연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아 C기업 대표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의 무역보복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아복을 수출하는 한 업체의 대표는 “홈쇼핑·화장품·기계부품 등 업종과 상관없이 모든 부문에 걸쳐 중국의 경제재재에 따른 피해가 심각하지만 중소기업 자체적으로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탄핵 정국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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