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마침내 실마리 드러난 '최태민 가계도'의 미스터리

2016. 12. 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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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안기부, 복잡한 가계도 도표로 작성… 최태민 묘비에 기록된 ‘금수저 패밀리’ 추적

“최태민 관계도 수사하겠다.” 12월 2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밝힌 ‘의지’다. 박영수 특검은 과거 오대양사건, 잡지 ‘현대종교’를 통해 ‘최태민’의 실체를 폭로한 탁명환씨 살해사건 등에서 활약한 ‘사이비 종교통’이다.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유사종교 관련된 부분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11월 27일, 기자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자리 잡은 최태민 묘역을 찾았다. 전날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최태민의 행적을 집중 조명해 방영했지만, 고속도로에 인접한 마을에 자리 잡은 최태민 묘역을 찾는 이는 기자 이외는 없었다. 최태민 묘소에 대한 보도는 ‘채널A’를 통해 처음 나왔다.

최태민씨가 어디에 매장되었냐는 그동안 이 사안을 추적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핵심 관심사였다. 이유는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가토 다쓰야(加藤 達也) 산케이신문 명예훼손 재판 당시 “박대통령이 정윤회, 최순실씨와 함께 최태민의 묘역을 방문했고, 일본 경시청 정보라인에서 그 동선을 확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1994년 5월 1일 사망한 최씨의 음력기일이 그 주 주말이었는데, 2014년은 20주기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대통령이 일정을 비우고 최태민씨의 묘소를 방문했다는 풍문이었다.

안기부가 1980년대 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태민 가계도. (※ 주간경향에 들어가면 큰 이미지 파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인 임선이 생몰일도 달라

“경기도 어디쯤으로 알고 있다.” 정윤회씨의 아버지 정관모씨는 “최태민씨의 묘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주간경향>에 말했다. 정관모씨의 답변은 위 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최태민 묘와 관련한 보도에서 새롭게 밝혀낸 사실은 최태민씨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과 묘비에 적힌 생년월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최씨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은 1912년 5월 5일인데, 묘비에 적힌 생년월일은 1918년 11월 5일생(음력·양력으로는 같은 해 12월 8일)이다. 묘비에 적힌 나이는 원래 알려진 나이보다 6살 어리다. 1912년생과 1918년생,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당연히 무덤 묘비에 적힌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 지금 대선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명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정확한 사주를 공개하지 않는다.” <주간경향>의 문의에 대한 한 역술인의 답변이다. 최태민의 묘에는 부인 임선이도 합장되어 있다. 최태민이 먼저 묻힌 뒤 2003년 개장해 합장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묘소 묘비를 통해 확인한 임선이의 사망일은 2003년 음력 1월 6일이다. 임선이의 나이도 주민등록상 나이와 달랐다. 묘비에 따르면 임씨의 생년월일은 음력 1920년 12월 20일인데, 이 역시 양력으로 치면 1921년 1월 28일로, 임선이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1920년 11월 20일)과도 다르다.

마을 인근 낮은 구릉 위 양지 바른 자리에 위치한 최씨 묘로 아래에서 바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최씨 묘소는 아래는 콘크리트로 씌워진 배수로가 둘러쳐져 있었다. 흔히 음택풍수에서 말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명당자리다.

기자가 굳이 방문한 까닭은 기존 보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임선이의 생몰연도 확인과 최태민 묘 구역에 있는 또 하나의 ‘의문의 무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최씨와 임씨 합장 묘 위에는 최씨의 부모 합장묘가 있는데, 무덤의 왼쪽 편에 최씨 일가가 등기한 땅에 또 하나의 무덤이 있는 것이 GPS 상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무덤의 축조방식이나 최씨 무덤과 비슷한 조화가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동일한 관리인이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무덤에는 묘비나 표지가 없다. 이 무덤의 주인은 과연 누굴까. 11월 23일자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묘지의 관리는 최태민씨의 셋째 아들 최재석씨가 하고 있다. 그는 최순득, 최순실씨 등과 배다른 형제다.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은 재석씨의 어머니일까.

최태민 부부 묘소 옆 ‘의문의 무덤’

최씨와 임씨 부부의 묘비 뒷면에는 언론들에 의해 ‘최씨 일가 금수저 패밀리 명단’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최씨 자손들이 나열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최태민씨와 임씨 사이의 자녀가 아닌 최순영씨가 언급되어 있는 점이다.

얽히고 설킨 최씨 가족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있다. 안기부가 작성한 ‘최태민 가계도’(이하 ‘가계도’) 도표다. 도표에는 묘비에도 언급된 최순실씨 남편 정윤회나 딸 정유연(나중에 유라로 개명) 등은 거론되어 있지 않다. 두 사람의 결혼 전 자료이기 때문이다. 도표에는 최순득의 딸 장시호씨(장유진에서 시호로 개명)가 10살로 나오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작성시점은 1988년 내지는 1989년으로, 노태우 정부 당시 안전기획부가 육영재단 분규 이후에 대대적으로 최씨 일가 조사를 한 시점이다.

‘가계도’에서 최순영씨의 이름 아래는 조순영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위에는 ‘임선이 前父의 子’라고 적혀 있다. 최순영씨의 가계도에는 이른바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인 조순제씨가 ‘최순영의 실제 오빠’라며 주민번호와 행적이 함께 적혀 있다.

최태민의 본처 사이의 아들 장남 최광언(46년생)이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자녀들의 출생지는 두 곳이다. 장녀 최순영(47년생)과 2녀 최광숙(48년생), 2남 최광현(49년생), 4녀 최순득(52년생)이 태어난 곳은 경남 양산시 태상동이다. 반면 3녀 최광희(51년생), 3남 최재석(54년생), 5녀 최순실(56년생), 6녀 최순천(58년생)이 태어난 곳은 기록상으로 서울 마포구 아현동 50번지다. 기이한 것은 이들의 어머니가 모두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어머니를 기준으로 보면 최태민은 아현동의 집에서 셋째 처, 넷째 처, 다섯째 처와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뜻이 된다. 양산의 집에도 둘째 처와 다섯째 처 임선이와 살았다고 ‘가계도’는 기록하고 있다.

2012년에 발간된 최태민과 박정희 대통령 ‘큰영애’ 박근혜의 관계를 추적한 책 <태자마마와 유신공주>에는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1954년 43세의 나이에 그의 부인 김제복은 63세였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해 그는 간통혐의로 고소되자 경남 동래군 금화사로 도피, 삭발해 ‘최퇴운’이라는 이름으로 승려가 됐다.” 중정이 만든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김제복은 최태민의 여섯번째 처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가계도’에 따르면 최태민은 임선이와 1955년 5월 30일 결혼을 한다. 그런데 임선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최순득은 1952년생이다. 정식 결혼 3년 전부터 사실혼 관계였다는 이야기다.

앞의 최태민 묘비의 ‘금수저 패밀리 명단’의 또 다른 특징은 최씨 자녀 중 임선이가 관계된 딸들만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다. 묘지를 그의 배다른 아들인 최재석씨가 관리를 하지만, 그의 이름은 묘비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둘째 처가 낳은 2녀 최광숙도 거론되어 있지 않다. 결국 임선이와 관계된 딸들만 최씨 금수저 일가로 인정하는 셈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에 자리 잡은 최태민·임선이의 합장 묘. 위로는 최씨 아버지 묘가 조성되어 있다. / 정용인 기자

<주간경향>은 최태민이 사망하기 전까지 거주했던 서울 역삼동 689-25번지의 폐쇄등기부등본을 떼봤다. 그런데 폐쇄등기부등본 상에는 최태민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해당 땅은 1985년 4월 11일 임선이가 매매로 구입했고, 10년 뒤인 1995년에 정윤회와 최순실에 각각 공유지분 10분의 4, 10분의 6를 매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국에 산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동산의 상당수가 최태민이 아니라 부인 임선이 명의로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교주가 아닌 교주의 인척이나 핵심 추종자로 부동산이나 동산이 차명되어 있는 것 역시 유사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주간경향>의 정관모씨 인터뷰 이후 정윤회씨의 장모, 즉 임선이가 최씨 일가 돈 흐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다수 나왔다. 1998년 대구 보궐선거 당시 임선이가 박근혜 당시 후보의 집에 상주하며 여행가방에 가득 든 돈을 날랐다는 증언도 보도되었다.

비리 수감 김찬경, 알고 보니 최씨 일가?

다시 최태민의 묘로 돌아가보자. 해당 묘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최씨 일가 금수저 패밀리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공동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땅 주인은 김모씨로 되어 있는데, 묘비에 기록되어 있는 ‘금수저 패밀리’ 남매인 최순영·순득·순천·순실씨 이외에도 하선희(55년생), 박상순(64년생) 등이 가등기 형태로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련해서 기존 언론 보도를 보면 “하선희씨는 미래저축은행 사기사건으로 복역 중인 김찬경 전 회장의 부인이며, 박상순씨는 동서”라는 설명이 나온다. 11월 23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찬경 전 회장의 지인은 “김 전 회장이 순득씨의 남편인 장석칠씨와 친구 사이로, 1994년 최태민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지자 친척인 김씨의 용인 땅에 매장할 수 있도록 주선했고 이후 함께 매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주간경향>의 취재 결과, 김 전 회장은 장석칠씨와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장시호씨의 아버지인 장석칠씨는 최순실씨의 언니 순득씨의 남편이다. 이들이 소유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45-12번지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1988년 매매의 형태로 순득씨의 어머니 임선이가 약 3분의 1의 지분을 취득한 것이 나온다.

그런데 2003년 사망한 임선이의 지분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할 수 없다. <주간경향>의 요청으로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김경율 회계사는 “등기부등본을 검토하면 임선이 매매 부분은 그 후 장석칠, 최순득이 명의신탁된 것으로 주장해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시 이 등본에서 특이한 부분은 2001년 서울가정법원의 가압류 결정에 따라 ‘임정이’라는 제3의 인물이 채권자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김 회계사는 “등본상의 관계를 보면 제3의 인물인 정모씨가 임정이씨가 장씨와 최씨 부부에게 받을 것이 있다고 가압류를 건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등장한 임정이씨는 임선이씨와 남매 관계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까지 최태민 일가와 관련해 전혀 거론되지 않은 제3의 인물이다.(안기부의 ‘가계도’에는 임선이씨가 경남 동래군 사상면 임객범의 장녀로 기록되어 있다.)

임정이씨가 가압류를 걸 당시의 주소를 확인해보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홍실아파트인데, 다시 홍실아파트의 해당 지번 등기부등본을 떼서 임씨가 거주한 당시의 거주자를 확인하면 66년생 박선순이라는 소유자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최태민 묘비에 기록된 공동지분 소유자 박상순(64년생)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두 박씨의 어머니가 임정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박상순씨는 김찬경 전 회장의 동서라고 주변 지인들은 증언했다. 언론 보도에서 김찬경 전 회장 지인들은 “김찬경 전 회장이 장석칠, 최순득 부부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 인척관계로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일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저축은행으로 자수성가한 뒤 수백억을 횡령하고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잡힌 김 전 회장의 파란만장한 스토리 뒤의 밑바탕에는 최씨 ‘금수저 패밀리’라는 뒷배경이 마지막 퍼즐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들(최씨 일가)이 영남대학이나 육영재단에서 전횡을 저지를 때 보이는 공통점은 사돈의 팔촌까지 다 동원해서 돈을 빼돌려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박근령씨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말이다. 신 총재는 최씨 일가뿐만 아니라 최순실씨 어머니 임선이의 사돈에 팔촌까지 다 동원되어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최태민 가계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신원조회를 해서 재산형성 과정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디스패치>는 ‘별다른 직업이 없으면서도 청담동 일대에서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생일파티에 1000만원씩 쓰는’ 최태민가 3세의 실상에 대해 보도했다. 안기부 ‘가계도’에서 최순영씨의 첫째 아들 이병헌(12)으로 기록되어 있는 병헌씨는 최순실씨의 귀국 후 비밀수행을 담당했고, 국정농단 태블릿PC의 주인 이한수 행정관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둘째 아들 이병준씨는 최순실씨의 또 다른 이권개입 기관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K아트센터의 대표다. 검찰의 최순실씨 공소장을 보면 최순영씨와 그 자녀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특검이 최씨 일가의 전횡을 살펴보려면 최태민의 유사종교 관계만 살펴봐선 안 된다. 40년에 걸친 최씨 일가의 부의 축적, 돈의 흐름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최태민·최순실뿐 아니라 주변 친인척들로 조사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980년대 후반 안기부 ‘가계도’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시점의 ‘업그레이드 확장판’을 만들어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주간경향>이 지난 일주일간 최태민 ‘금수저 패밀리’를 추적한 결론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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