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탄핵, 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선 비박

2016. 12. 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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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생존전략 두고 내부 의견 갈려… 탄핵 찬성 후 비주류 중심 재편 가능성도

비박이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퇴진의 공을 국회에 넘기면서 새누리당 비박계의 거취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비박계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40명의 탄핵 찬성 의원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말 퇴진을 못박으면서 탄핵 표결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 비박계 내의 대세로 바뀐 것이다. 야3당과 무소속 의원을 더해 172명의 탄핵 찬성 의원이 있지만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28명 이상의 비박계 찬성표가 필요하다. 12월 9일 탄핵안 처리를 앞둔 상황에서 비박계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지만 그만큼 즉각적인 탄핵안 처리를 요구하는 촛불민심이 지켜보는 시선도 매서워진 상태다.

1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비박계의 입장은

새누리당 비박계 정치인들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의 입장은 3차 대국민담화 전후로 미묘하게 변했다. 박 대통령이 퇴진 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던 때만 해도 비박계에는 탄핵 찬성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국회에서의 합의가 있으면 그에 따라 퇴진하겠다고 밝히고,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에서 대통령의 4월 퇴진론을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비박계 역시 대통령의 내년 4월 말 퇴진을 새누리당 당론으로 정하는 데 동의하면서, 대통령 퇴진 일정이 확정되면 굳이 탄핵을 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비박계는 12월 2일 본회의에서의 탄핵안 처리가 무산된 후 야당이 12월 5일 탄핵 표결을 하자고 재차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에게 7일 오후 6시까지 ‘4월 퇴진’에 대한 확답을 요구했다. 비상시국위 간사 황영철 의원은 “예정대로 9일 탄핵 표결 일정을 잡고, 7일까지 최선을 다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탄핵 표결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기류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중심이 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정치인들이 11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 전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 비박계 내부의 탄핵을 둘러싼 견해 차는

비박계가 전반적으로 탄핵보다는 퇴진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내부에서도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고 있다. 비박계 내의 한 축은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퇴진을 약속하더라도 ‘여야가 퇴진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9일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대표적이다. 유승민 의원은 “저는 여야 협상이 안 되면 탄핵에 동참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은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4월 말 이전에 자진 사임하겠다고 하면 야당도 탄핵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져 협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야당이 탄핵안 표결을 강행할 것임을 고려하면 탄핵에 비교적 무게를 둔 입장 표명이다. 정병국 의원도 “여야 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탄핵안 표결에는 일단 응한다는 입장이지만 야당도 대화에 임할 수 있으니 우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 일부는 박 대통령이 퇴진 시점을 못 박으면 굳이 탄핵안을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실상 탄핵 철회 쪽에 가까워진 의견이다. 김 전 대표는 “가장 좋은 것은 여야 합의로 대통령의 내년 4월 말 퇴임을 못 박는 것이지만, 만약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새누리당 의총에서 4월 퇴임을 의결한 후 대통령의 답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당에 끌려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해 사실상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9일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탄핵 표결에 미온적인 비박계 의원들도 김 전 대표를 지지하며 탄핵 철회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체로 지역구 표심에 더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은 탄핵 표결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인 데 비해 영남권 의원들은 탄핵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고 말했다.

3 비박계 내부에서도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향후 비박계의 생존전략을 두고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탄핵 표결에서 가결시키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기 때문에 비박계 의원들의 몸값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탄핵안 처리 이후나 박 대통령의 퇴진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온 이후에는 입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박계 다수가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향후 시나리오는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진이 확정되면서 새누리당도 점차 국정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 지도부 대신 비박계 중심으로 현재까지 구겨진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방안이 최선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계획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분당과 중량감 있는 대선주자의 부재 등으로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것이 비박계로서는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개헌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는 의원들이 포진한 것은 개헌을 통해 내각제 등 국회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야권에 비해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주목받는 주자가 적기 때문에 개헌을 돌파구로 삼아 의회권력을 주도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한 영남권 비박계 의원은 “현재는 새누리당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지만 보수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점차 새누리당의 위치도 회복될 수 있다”며 “그때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인물은 비박계 외에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 비박계 의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새누리당 간판이 차기 정권을 잡는 데나 지역구 정치에서나 오히려 해가 될 소지가 있어 민감하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현재까지 새누리당을 탈당한 정치인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그 이유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용태 의원, 정두언·정태근·김상민 전 의원 등은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 수도권 비박계 의원은 “친박은 앞으로도 한동안 반박근혜 역풍에 시달릴 텐데, 거기에 같이 휩쓸릴 공산이 있으니 비주류는 탄핵에 찬성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며 “일단은 태풍을 피하고 탄핵 이후 새누리당을 비주류 중심으로 꾸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4 비박계의 향후 생존전략에는 분당도 포함될까

친박과 비박을 넘어서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진을 추진하는 쪽으로 오랜만에 의견 일치가 된 상황은 그간 지속적으로 나오던 분당 전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위시한 당 지도부를 불신하는 비박계의 정서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당내 갈등이 봉합된 것은 아니다. 비박계로서는 분당을 고려하기엔 의석수의 부족이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현재 128석인 새누리당 의석 중 비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많게는 50명에 육박하지만, 이 가운데 따로 당을 꾸릴 경우 적극적으로 신당에 참여할 의원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석을 넘길지조차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비박계 내의 유력 정치인들이 현재로서는 대부분 탈당이나 분당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분당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비박계가 탄핵안 표결 여부를 현재 카드로 쥐고 있으면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서도 친박계와 상당한 의견일치를 본 점도 분당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 이유다. 공식기구는 아니지만 친박계와 비박계가 같은 수로 참여한 6인 중진협의체가 중심이 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이며, 비박계에서 위원장을 추천하는 데까지는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되고 비상대책위마저 친박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비박계의 이탈은 급속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 소용돌이치고 있는 탄핵정국의 결과에 따라 탈당파를 중심으로 신당을 꾸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론대로 내년 4월 대통령이 퇴진하는 대신 탄핵 여론이 더욱 거세져서 결국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상황까지 겹치게 되면 그땐 난파선에서 탈출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비박계와 청와대 회동이 성사돼서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에 따라 시국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5 야권의 계속된 비박계 탄핵 공조 요구가 먹힐 수 있을까

야권의 탄핵 공조 요구는 12월 9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비박이 당초 약속과 달리 탄핵 대열에서 이탈한다면 가혹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탄핵 의결에 비박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분들을 탄핵 대열에 나서게 만드는 것은 정치적 협정이나 설득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즉각적인 탄핵을 요구하는 민심을 거론하며 비박계의 탄핵 동참을 요구한 것이다.

비박계 일부 의원들은 박 대통령 퇴진일정에 관한 여야 간 합의가 없으면 탄핵 표결에 참여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야권은 9일까지 아무런 협상 없이 탄핵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이 경우 비박계 일부는 탄핵 표결에는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박계 일부가 탄핵 표결에 나서더라도 탄핵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 내에 탄핵에 찬성하는 숨은 표가 있다는 주장과 ‘4월 퇴진론’ 이후 숨은 표는 사라졌다는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6 비박계의 불참으로 탄핵 표결이 부결될 경우 역풍에 대비하고 있는가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탄핵 표결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탄핵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카드는 당내 친박계를 압박하는 역할도 하지만, 탄핵 부결로 불어올 역풍을 비박계가 고스란히 맞을 수도 있어 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박과 비박을 막론하고 최대 규모로 타오른 전국의 촛불민심이 사그라지는 한편, 박 대통령 3차 담화 이후 조금씩 보수 지지세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정세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내년 4월까지 퇴진하겠다는 의사만 밝히면 탄핵 요구 여론도 서서히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야당이 오히려 분열 등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박계 의원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탄핵 표결에 참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린 의원은 없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유승민 의원은 “늦어도 4월 말 이전에 자진 사임을 하는 동시에 즉각 2선 후퇴하고 총리한테 권한을 이양하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분명한 말이 없으면 탄핵 일정을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내년 4월까지 퇴진하겠다고 나오더라도 현재의 대통령 권한을 유지하겠다고 하거나 책임총리 등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여전히 반대여론이 거셀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비박계 의원도 “일단 표결은 할 예정이니까, 최대한 그전에 대통령이 책임지게 만들지 못하면 우리가 고스란히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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