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좋았겠네!".. 남성 성폭행 피해자도 울고 있다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오현영 입력 2016. 12. 7. 08:32 수정 2017. 2. 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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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사건이 급증하는 추세다. 군대, 직장 기숙사처럼 동성 간 단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분석'에 따르면 남성이 피해자인 성폭행 건수는 지난 2010년 702건에서 2014년 1375건으로 5년 동안 195%(673건)나 늘었다.

성폭력 피해 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가 공개한 자료에도 2013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전체 성폭력 피해자 수의 95% 이상이 여성이지만 5%는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남성 피해자들은 여성 피해자와는 다른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 피해자는 여성 피해자와는 또 다른 맥락의 고충을 겪는다. 예컨대 여성에게 당했을 경우 "너도 즐긴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남성에게 당했을 경우 "너도 게이냐" 등의 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동성 남교사 성추행 혐의, 직위 해제당한 초등학교 교감

지난 11월 21일, 울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A 초등학교는 10월 28일 경북 포항시로 1박 2일 교직원 워크숍을 떠났다. B 교감은 워크숍 첫날 교직원들과의 술자리 후 동료 남자 교사 C씨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가 거부 의사를 보였는데도 B 교감이 성추행을 이어가자 방에서 도망쳐 112에 신고했다고 시교육청은 밝혔다. C 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울산시교육청은 곧바로 직위 해제 조치했다.

동성 간병인 성추행 혐의, 입건된 칠성파 두목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부산 최대 폭력 조직 칠성파 두목 이강환 씨를 남성 간병인 성추행 혐의로 지난 11월 6일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6월 초부터 7월 17일까지 부산 남구에 있는 자신의 집 화장실이나 호텔 사우나 등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남성 간병인 A 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자신을 양팔로 안고 변기에 앉혀주려는 A 씨에게 "× 한번 만져보자, 가까이 와봐라"며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이 씨는 A 씨가 싫은 내색을 하면 "나는 칠성파 두목이다.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마라. (네가) 어디에 있든 잡아올 수 있다"며 협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범죄

A 하사는 같은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B 중사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B 중사는 2013년 3월부터 강원도 소재 육군 부대에서 A 하사와 함께 근무하던 직속상관이었다. B 중사는 부대 회식이 끝나고 자신이 사는 독신자 숙소나 민박집 등으로 A 하사를 불러 다섯 차례 성폭행(강간)했다. 견디다 못한 A 하사는 군 상담전화로 성폭행당한 사실을 신고했다. 군 검찰은 2014년 11월, B 중사를 구속하고 재판에 넘겼다.

지난 2013년, 해병대 C 상병은 후임 병사 3명과 야간 경계초소 근무를 나갔다가 후임병들을 성추행했다. C 상병은 초소 안에서 후임들 몸을 더듬고, 유사성행위를 요구하는 등 20여 차례에 걸쳐 추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고등법원은 C 상병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과 신상정보 2년 공개를 명령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군대 내 남성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피해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당했다(74.7%)고 생각한 반면 가해자(72.9%)와 목격자(76.8%)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태도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남성 피해자들이 2차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면제 먹여 내연남과 성관계 시도

"간밤에 평소 알고 지냈던 여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남성 진술에 따르면, 두 사람은 4년 전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났고 곧 내연 관계를 맺었다. 여성은 이혼한 상태였고 남성은 유부남이었다. 남성이 최근 "그만 만나자"고 하자 여성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며 남성을 집으로 불렀다. 사건을 맡은 박재순 형사는 "여성이 졸피뎀이라는 수면유도제를 음료수에 타서 먹였고, 잠든 남성의 손과 발을 묶은 뒤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남성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피했고, 여성은 실제 성관계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 "같이 죽자"며 둔기를 휘두른 건 이때 벌어진 일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철희)는 2015년 4월 3일, 흉기로 사람을 다치게 한 혐의와 함께 '강간미수' 혐의로 여성 A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여성이 강간 관련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가 됐다.

※ 강간죄 관련 헌법 개정

국내에서 여성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는 기반은 2012년 말 만들어졌다. 국회는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만삭 주부 성폭행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자 '아동·여성 대상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그해 11월 형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3년 시행된 개정 형법은 강간 피해자 범주를 '부녀(婦女)'에서 '사람'으로 넓혔다. 이전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 여성이 남성을 강간하는 경우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처벌해야만 했다. 강제추행죄는 처벌 수준이 강간죄에 비해 낮다.

법 개정을 주도했던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도 강해지는 사회 변화상을 감안할 때, 여성의 남성 강간 사건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당시 형법 개정안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선진국가들이 이런 법 조항을 갖고 있고, 실제 처벌 사례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 조항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성폭행한다는 건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1996년만 해도 법조계에선 남성이 수술로 여성이 된 성전환자를 '부녀'로 볼 수 없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2009년 부산지법은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D 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만큼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또, 군대 등에서 남성이 남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점도 '남성도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그 결과 피해자를 '사람'으로 확대한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남성에 의한 남성 강간도 처벌이 강화됐다.

"별거중인 아내에게 성폭행 당했다"

2015년 5월, A 씨는 오랫동안 별거했던 아내 B 씨 집에 들렀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B 씨가 자신의 몸을 청테이프로 묶은 뒤 유혹했고, 강제로 성관계했다는 주장이었다. B 씨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그해 10월 B 씨를 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개그우먼, 남성 아이돌 그룹 성추행 논란

개그우먼 이세영이 지난 11월 26일 공개된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비하인드 영상에서 B1A4 멤버들의 중요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듯한 행동을 한 뒤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이세영이 인피니트, 블락비 등 다른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결국 성추행 행위를 불쾌하게 느낀 팬들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세영을 고발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인식의 문제가 크다

성폭력 피해 남성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수준

이처럼 성인 남성의 성폭력 피해 사례가 점점 늘면서 2015년 12월,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성인 남성들의 성폭력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성인 남성 성폭력 피해 지원 안내서'를 전국 36개 해바라기센터에 배포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 남성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성인 남성은 2013년 65명, 2014년 72명, 2015년 54명 등으로 전체 남성 치료자의 10% 미만에 머물렀다. 피해를 당하였을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0명 중 9.5명이었으며, 도움을 청하더라도 경찰 등 전문가보다 이웃·친구에게 요청하는 경향이 많았다.

피해 남성들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불안(70.3%) 등을 주로 호소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 안내서 발간은 '성인 남성'에 초점을 두고 남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 시도"라고 했다.

남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를 당한 후 주변으로부터 성적 정체성을 의심받거나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 2차 피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사회적 인식에 얽매여 수치심이나 고립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신고를 꺼리기도 한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도 여성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호소한다. 피해 남성의 70%가 '타인에 대한 혐오'를, 17.3%가 '신변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3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

우리 사회는 넘쳐나는 성범죄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지 오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남성이 피해자가 되는 성범죄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해자는 분명 존재하고, 그 피해자들은 어마어마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임을 알고 잘못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처벌 강화와 피해자 구제 제도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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