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은 성폭력 전 단계..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박보희 기자 입력 2016. 12. 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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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인물포커스]배수진 서울변회 성희롱구제센터장 "성희롱 '방관'한 회사도 책임져야죠"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the L][인물포커스]배수진 서울변회 성희롱구제센터장 "성희롱 '방관'한 회사도 책임져야죠"]

사진=배수진 변호사

"오늘은 치마입고 왔네. 남자친구랑 밤에 좋은데 가나?" "오늘 피부 화장이 잘먹은 거보니까 어제 밤에 애인이랑 좋았나봐?" "바지가 몸에 쫙 달라붙으니까 몸매가 드러나서 예쁘네."

이런 얘기를 듣고 기분이 나쁘면 예민한 걸까? 예쁘다는 얘기니 오히려 칭찬인걸까? 친근함의 표현이니 웃으며 넘어가야 하는 걸까? 가슴을 만진 것도 아니고 강간을 한 것도 아닌데, 사소한 말 한마디에 '발끈'하는 것은 '오버'하는 건가?

성희롱. 언론에는 강간, 성폭행 사건들이 연일 오르내린다. 이런 강력 사건들과 비교해 성희롱 사건들은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다수가 실제로 겪는 일은 사소해 보이는 성희롱이다. 사소해보여서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하지만, 그래서 문제제기 하는 이들이 오히려 '예민'하다는 핀잔을 받기 일쑤지만, 성희롱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지속적인 직장 내 성희롱은 결국 퇴사로 이어지기도 하고, 평생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서울지방변호사회 성희롱구제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는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성희롱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적 방안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센터장을 맡은 배수진 변호사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성희롱이 사소한 문제라고요? 절대 아니에요"

20대 A씨는 11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50대 직장 상사 때문이었다. 그는 A씨를 볼 때마다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를 묻고, 몸매를 평가했다. 무릎이 살짝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온 날은 옷차림을 지적하며 바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기도 했고, A씨 자리를 지나갈 때면 귓볼이나 손목, 머리카락을 건드리기도 했다.

참다못한 A씨는 "이런 행동은 불편하니 하지 말아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별 것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희롱을 계속됐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던 A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상사를 고소했다. 법정에 선 상사는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며느리 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피해자는 노이로제에 걸려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데, 주변에서는 예민하게 군다고 오히려 소외시켜요. 가해자는 '딸 같아서, 친근함의 표현이었다'고 말해요. 정말 딸 같으면 그렇게 했을까요? 성희롱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성희롱도 범죄라는 인식조차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죠."

◇직장 내 성희롱에 회사는 방관자…회사에게도 책임 물을 것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은 심각하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매일 마주칠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사일 가능성이 크고,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주변에 문제제기를 해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길 바라는 이들이 다수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회사를 그만둘 각오가 아니면 문제제기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유다.

"생계가 관련된 문제니까요. 문제화해도 결국 '네가 예민한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요. 결국 참다못해 피해자가 퇴사까지 하게 되는 거죠.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그만둬야 하죠? 왜 피해자가 생계를 걱정해야 하나요? 그런데도 성희롱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세요?"

배 변호사는 가해자도 문제지만,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드는 회사도 문제라고 봤다. 피해자들이 실업 등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주변의 방관도 문제라는 것. 센터가 만들어진 이유다. 센터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서 피해자들이 위자료나 손해배상 등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가해자 뿐 아니라 회사까지 소송 대상으로 한다.

"회사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죠.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니는거였어요. 그런데 회사에 말해도 가해자와 계속 같이 일하게 되거나, 오히려 괜한 분란을 일으켰다며 피해자를 소외시키거나, 회사 내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러니 회사에도 책임을 물어야죠. 사실 소송까지 원하는 피해자는 많지 않아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건 결국 직장을 잃는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소송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하는 거죠."

◇성희롱이 성폭행으로 진화…'성희롱=범죄' 공감대 만드는 것이 목표

배 변호사가 성희롱에 주목하는 이유는 '성범죄는 진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4년 전 처음으로 성범죄 사건을 맡은 이후 지금껏 지켜본 결과 강력 성범죄는 작은 '성희롱'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 변호사는 성희롱이 성폭행으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성희롱 단계에서부터 '범죄'라는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범죄는 진화하는 범죄에요. 사건들을 보면 성희롱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몸매가 어쩌네 같은 야한 농담에서 시작하다가 별 것 아니라고 넘기다보면 성폭행이 되고 강간이 되는거죠. 초반부터 막아야 더 심각한 범죄도 막을 수 있어요."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희롱도 범죄'라는 공감대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적절한 처벌을, 피해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결국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공론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배 변호사의 생각이다.

"사실 성희롱으로 위자료나 손해배상을 받아도 금액은 크지 않아요. 그래서 억울해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피해자들이 많은 거에요. 힘은 드는데 대가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범죄라는 인식, 불법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 가능한 많이 소송을 내고 문제제기를 하려고 해요. 회사 입장에서도 가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것 역시 범죄라는 인식이 생기겠죠."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면 '단호히 말하고 증거를 수집하라'"

배 변호사는 자신이 성희롱 가해자이면서 그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 혼자 즐거운 것은 장난이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성희롱이 뭐냐고요?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 친하다면서 어깨를 만지는 것, 머리를 쓰다듬는 것 모두 다 성희롱입니다. 당신이 친하다면서 하는 성적 농담, 스킨십은 대부분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하는 것은 아니하고요? 아니요 성희롱이에요. 우리는 정말 친하다고요? 혼자서 친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에요."

배 변호사는 또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사소한 일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나 고민이 되세요? 아니요 사소한 일 아니에요. 가해자에게 '이러면 내가 불편하고 싫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세요. 만약 지속적으로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고,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면, 증거를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죠. 가해자에게 직접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친구나 지인에게 피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해놓는 것도 소송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시민단체 등에 상담을 한 기록이 있다면 역시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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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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