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좀 찍겠다며 수리부엉이 괴롭히다가…사상 첫 처벌

입력 2016.12.06 (12:13) 수정 2016.12.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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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엄있는 자태, '밤의 제왕'으로 불리는 수리부엉이입니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겨울이면 절벽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웁니다. 이때가 수난의 계절입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를 누가 괴롭힐 수 있을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겠다며 밤마다 강한 조명을 터뜨립니다. 새끼가 있을 때는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잘 떠나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 겁니다. 검찰이 이런 촬영가들을 처음으로 처벌했습니다.

[연관 기사] ‘촬영’이 뭐기에…수리부엉이의 수난

 
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람들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람들

수원지검 형사2부는 안산 대부도에서 수리부엉이 둥지를 촬영한 강 모 씨 등 3명에 대해 각각 50만 원의 벌금형으로 지난 11월 30일 약식 기소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35조 1항 3호와 101조 3호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은 '허가 없이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포함)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법을 적용해 수리부엉이 야간 촬영을 처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촬영 현장의 수리부엉이 둥지. 촬영을 위해 주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냈다.촬영 현장의 수리부엉이 둥지. 촬영을 위해 주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냈다.

지난 3월, 피의자들이 조명을 터뜨렸던 수리부엉이 둥지입니다. 둥지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주변 나뭇가지들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이렇게 훤히 노출한 상태에서 밤에 강한 플래시를 터뜨렸던 겁니다. 나무를 자른 행위는 '둥지 훼손'으로 좀 더 엄격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검찰의 처벌에 '둥지 훼손'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들이 나무를 잘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둥지 아래 잘려나간 나무둥지 아래 잘려나간 나무

피의자들은 나무를 자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리부엉이도 촬영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실제로 검찰에 제출한 사진기에는 수리부엉이 사진이 없었습니다.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사진을 미리 지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튼, 증거가 없는 셈입니다. 유일한 증거는 야간에 조명을 밝힌 행위였습니다. 당시 둥지 주변에 조명이 터지는 것을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 씨가 미리 촬영했던 겁니다. 피의자들은 조명을 터뜨린 것에 대해서는 촬영 예비 동작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초점을 맞추고 밝기를 조절하는 등 촬영 준비였을 뿐 정작 수리부엉이는 촬영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피의자들이 사용한 야간 조명 촬영 장비피의자들이 사용한 야간 조명 촬영 장비

하지만 검찰은 둥지 주변에 조명을 밝힌 행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명 때문에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포기할 수도 있고, 먹이 활동도 방해를 받아 새끼들이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야간 조명 자체가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한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는 겁니다. 이선봉 수원지검 형사2부장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문화재보호법을 역시 적극적으로 해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수리부엉이수리부엉이

최근 DSLR 사진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야생 동물들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며 새들에게 접근해 날려 보내거나 둥지를 훼손하기 일쑤입니다. 사진 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의 둥지를 촬영한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야행성 조류를 밤에 강한 조명을 터뜨려 찍은 사진도 많습니다. 그동안 일부 촬영가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야생 동물을 괴롭혔습니다. 이번 검찰의 처벌을 계기로 '사진'에 앞서 '생명'을 존중하는 촬영 문화가 확산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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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좀 찍겠다며 수리부엉이 괴롭히다가…사상 첫 처벌
    • 입력 2016-12-06 12:13:08
    • 수정2016-12-14 11:21:13
    취재K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엄있는 자태, '밤의 제왕'으로 불리는 수리부엉이입니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겨울이면 절벽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웁니다. 이때가 수난의 계절입니다.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를 누가 괴롭힐 수 있을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겠다며 밤마다 강한 조명을 터뜨립니다. 새끼가 있을 때는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잘 떠나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 겁니다. 검찰이 이런 촬영가들을 처음으로 처벌했습니다.

[연관 기사] ‘촬영’이 뭐기에…수리부엉이의 수난

 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람들
수원지검 형사2부는 안산 대부도에서 수리부엉이 둥지를 촬영한 강 모 씨 등 3명에 대해 각각 50만 원의 벌금형으로 지난 11월 30일 약식 기소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35조 1항 3호와 101조 3호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은 '허가 없이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포함)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법을 적용해 수리부엉이 야간 촬영을 처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촬영 현장의 수리부엉이 둥지. 촬영을 위해 주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냈다.
지난 3월, 피의자들이 조명을 터뜨렸던 수리부엉이 둥지입니다. 둥지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주변 나뭇가지들을 모두 잘라냈습니다. 이렇게 훤히 노출한 상태에서 밤에 강한 플래시를 터뜨렸던 겁니다. 나무를 자른 행위는 '둥지 훼손'으로 좀 더 엄격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검찰의 처벌에 '둥지 훼손'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들이 나무를 잘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둥지 아래 잘려나간 나무
피의자들은 나무를 자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리부엉이도 촬영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실제로 검찰에 제출한 사진기에는 수리부엉이 사진이 없었습니다.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사진을 미리 지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튼, 증거가 없는 셈입니다. 유일한 증거는 야간에 조명을 밝힌 행위였습니다. 당시 둥지 주변에 조명이 터지는 것을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 씨가 미리 촬영했던 겁니다. 피의자들은 조명을 터뜨린 것에 대해서는 촬영 예비 동작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초점을 맞추고 밝기를 조절하는 등 촬영 준비였을 뿐 정작 수리부엉이는 촬영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피의자들이 사용한 야간 조명 촬영 장비
하지만 검찰은 둥지 주변에 조명을 밝힌 행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명 때문에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포기할 수도 있고, 먹이 활동도 방해를 받아 새끼들이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야간 조명 자체가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한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는 겁니다. 이선봉 수원지검 형사2부장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문화재보호법을 역시 적극적으로 해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수리부엉이
최근 DSLR 사진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야생 동물들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며 새들에게 접근해 날려 보내거나 둥지를 훼손하기 일쑤입니다. 사진 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의 둥지를 촬영한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야행성 조류를 밤에 강한 조명을 터뜨려 찍은 사진도 많습니다. 그동안 일부 촬영가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야생 동물을 괴롭혔습니다. 이번 검찰의 처벌을 계기로 '사진'에 앞서 '생명'을 존중하는 촬영 문화가 확산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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