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영화 '300'의 주인공들을 담은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미술사학자 2016. 12. 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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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자크 루이 다비드, 1814 년, 395×531㎝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시대의 질문과 답을 동시에 접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역사가 주는 질문에 답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1814년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곁에서 서서히 제국의 몰락을 지켜보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자신들이 옳다고 믿은 가치인 민주주의, 그리고 전제왕권에 대한 도전 등이 반동세력에 의해 점점 기울어져 갔다고 판단했고, 이 그림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애국심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바깥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제 프랑스를 침략국으로 판단하고 강력하게 저항을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죠.

역사는 이렇게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그려집니다. 오늘의 그림은 수년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300>에서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스파르타의 영웅적 전투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스파르타!”라는 갈라진 고함 소리로 인상 깊은) 레오니다스 왕이 자신들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장에 선 모습이죠.

“기원전 481년 페르세우스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엄청난 대군을 몰고 그리스를 침략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그리스의 전위부대 300명은 그리스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내기 위한 전투를 준비한다. 300명의 용사와 함께 영웅적인 전쟁을 벌이다 끝내 모두 전사한 이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를 1814년 다비드는 그림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스페인에서 격렬한 반발에 직면하고, 러시아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의 몰락을 다비드는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이 그림 역시 그렇게 의도된 해석이겠지요.

“이 그림의 한가운데 있는 레오니다스는 어쩐지 평안하지 않은 모습이다. 자신들의 희생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차가운 다비드 특유의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의 모든 인물들의 전사로 끝나는 비극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 그림에서 전해지는 비장함과 이후 벌어질 잔인한 전쟁에 대한 상념에 붙잡히게 된다. 이 그림은 동지애와 애국주의에 대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변명’이란 잘못에 대한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유럽에 등장하고 나서 프랑스가 아닌 다른 국가들은 프랑스가 공화국을 건설하고 기득권을 청산하려는 노력을 (비록 폭력적인 실행이 동반됐다고는 해도) 지켜봤고, 그 혁명의 근거와 논리를 앞다퉈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문에 단시간 동안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던 것이죠. 하지만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침략군이었고, 그들 사회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전해준다고 믿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프랑스 외의 나라들은 점령군을 몰아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항한 것이 아니고 말이죠. 바로 그 부분에서 이 그림이 가지는 반어가 우리에게 이 그림을 바라볼 때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서로 자신들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지점.

“어깨에 창을 걸친 무장한 레오니다스를 보자. 그리고 주변에서 전투 준비를 하는 어수선함을 따라가 보자. 그 옛날 전투에서 마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는, 그들이 목숨을 바친 전투가 벌어진 그리스의 테르모필레에는 그것을 기려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그 동상의 모델은 가운데 앉은 레오니다스의 모습을 딴 철학적인 전사가 아니라 왼편에서 창을 들고 던지려는 것 같은 자세의 스파르타인이다.”

실제로 그리스에는 스파르타인의 용맹함을 표시하는 ‘창을 든 모습의 군인’ 동상이 자주 눈에 띕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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