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보고, 맡아보는 것도 '본다'는 거잖아요"

천권필 2016. 12. 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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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사진가 김경식 씨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김경식씨는
“안 보이는 데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고요? 만져보고, 맡아보는 것도 ‘본다’는 거잖아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우리들의 눈 갤러리. 사진작가 김경식(55)씨는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13살 때부터 완전히 시력을 잃고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이날은 그가 사진작가로서 첫 번째 개인전시회인 ‘손등으로 느낀 빛, 그림자로 그린 세상’을 여는 날이다. 사진전을 개최한 건 1996년부터 맹학교에서 재능 기부를 통해 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비영리단체 ‘우리들의 눈’이다. 이 단체는 작가를 꿈꾸는 시각장애인을 지원하는 ‘가지 않는 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김씨를 선택했다. 갤러리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 5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4년간의 준비 끝에 마침내 데뷔 무대에 오른 그는 “설레면서도 내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할까 두렵기도 하다”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경식씨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김씨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2009년 사진을 처음 배울 때 선물 받아 지금까지 쓰고 있는 그의 보물 1호다. “상명대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사진 교실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찾아갔어요. 그때만 해도 자원봉사자가 가르쳐주는 대로 가서 셔터만 누르는 수준이었죠.”
김씨는 2012년 ‘가지 않는 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천안마수련원에서 교사로 일하는 그는 출·퇴근길과 주말을 이용해 매달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동네 화단에 핀 꽃과 강아지풀, 24시간 그를 따라다니는 안내견 풍요가 모델이 됐다. 그는 앞을 못 보는 대신 청각, 후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한참 동안 앉아 풀을 만지면서 냄새도 맡아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듣고…. 그렇게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마음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셔터를 눌렀죠.” 대부분의 사진이 접사(근접촬영)로 찍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항상 햇빛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손등에 느껴지는 온기로 빛의 방향을 잡고, 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려가듯 사진을 찍었어요.” 3년째 그의 멘토 역할을 맡고 있는 박병혁 사진작가는 “처음에는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를 점점 사진으로 구현해 가는 모습을 보고 사진작가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김경식씨가 찍은 강아지풀 사진 작품.
난관도 많았다. 무엇보다 시각장애인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는 사진을 찍으려고 풀밭으로 들어가는 데 한 어르신이 위험하다며 말리기에 제가 사진을 찍을 거라고 말했더니 황당하다는 듯이 웃고 가더라고요.” 그는 “시각의 예술로 불리는 사진을 감각의 예술, 도전의 예술로 바꾸고 싶었다”며 “나를 통해 많은 사람이 고정관념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15일까지 열리는 사진전의 모든 수익을 시각장애인의 예술활동 지원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치고 잘 찍었네’라는 평가보다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게 꿈”이라며 “앞으로도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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