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가르침, 정보의 수평

홍세미 기자 2016. 12. 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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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배운 '글 쓰는 방법'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배운 '글 쓰는 방법']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통일 대박’, ‘우주의 기운’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말은 공적이기도 하지만 사적이기도 하다. 연설을 볼 때마다 조금 이상했지만 대통령이 썼다면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대면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노출을 꺼려한다고 여겼다. 연설문을 고치는 것을 외부에 보이고 싶지 않아 별도의 부속실을 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비선’이 연설문에 손을 댔다는 보도가 나왔다.

강원국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는 “대통령 연설문이 유출되고 심지어 최순실씨가 고치기까지 했다는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문서는 내보내도 대통령 연설문은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역린’을 건드린다고 표현했다. 강 교수는 연설문을 건드린 것은 ‘대통령의 입’을 움직인 것이라고 비유했다. 대통령의 말에 따라 국가 기조가 변한다. 비선이 국가를 운영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됐고 선출되지 않은 사람이 권력을 행사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국정농단 파문으로 강 교수가 집필한 <대통령의 글쓰기>가 인기몰이 중이다. 서점에서 ‘역주행’하더니 결국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 교수가 배운 것은 ‘정보의 공유’다. 노 전 대통령은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노 전 대통령은 강 교수에게 청와대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책을 집필하라고 주문했다. 두 대통령에게 글 쓰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혼자 ‘독점’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리더>는 지난 11월14일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강 교수를 만나 인기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의 글쓰기> 판매율 70%나 올랐다 ▶온 국민이 이 사태로 힘들어하는데 책이 잘 팔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다고 하자니 또 이상하다.

-책이 갑자기 주목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른바 '최순실 사태'는 연설문으로부터 비롯됐다. 사람들이 대통령 연설문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관심을 가진 계기다. 또 그동안 우리는 남이 글을 써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기업의 대표나 국회의원의 연설문을 비서나 보좌관이 써주는 것을 전혀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자기 글은 자기가 써야겠구나’라는 생각이 확산됐고 글을 어떻게 쓰는지 관심이 생긴 것 같다. 나름대로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번 일로 국민 자존심이 상했다. 심각할 정도로 상처 받았다. 대통령의 글쓰기에 등장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서 한때는 ‘우리나라에 이런 대통령도 있었구나’ 생각하며 치유를 받는다고 할까. 이런 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실용적으로 글 쓰는 법을 공부하기 위해 샀다가 마음을 치유 받는 것 같다. 서로 책을 권유하고 하면서 이상하게 많이 팔린 것 같다.

-연설비서관을 역임했는데 어떤 자리인가. 업무 강도가 세다고 알려졌다 ▶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망가고 싶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다는 중압감이 엄청나다. 특히 대통령이 지적 하는 것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불러서 지적을 할 때 길어지겠다 싶으면 (스트레스로) 배가 아팠다. ‘사고는 치지 말아야겠다’, ‘대통령에게 덜 혼나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연설 하나 끝나면 다음 연설 걱정할 틈이 길어 봤자 일주일이다. 글 쓰는 꿈을 꿀 정도로 시달렸다. 매일 선잠 자듯 지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강박증이 있어서 모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렇게 혼내던가 ▶(웃음)노 전 대통령이다. 글에 대해서 엄격했다. 기대하는 수준이 높았다. 연설문을 대할 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머릿속에 다 있는데, 손(쓰는 사람)이 안 따라주니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혼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계속 혼나다가 대통령이 직접 써준 것을 한번 보면서 ‘아 이래서 대통령이 날 혼냈구나’ 느낀 적 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연설문에서다. 이 정도로 쓰시는 분이 내 글을 봤으니 날 얼마나 혼냈을까 생각했다. 나중에는 그동안 내가 혼난 게 아니고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 날 가르쳐준 것이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연설 특징을 짚어준다면 ▶일단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방에서 행사가 있으면 연설팀 먼저 그 지역에 가서 언론이라든지, 민심을 듣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알아봤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주장하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렸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다. 전개 방식도 노 전 대통령은 두괄식이었다. 주장, 이유, 근거, 반론소개, 종합, 이런 틀이다. 그러니 주장이 맨 앞에 나온다. 지르는 스타일이다. 지르고 이유와 근거를 이야기하는 식이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설명하는 방식이다. 친절하게 조곤조곤. 첫 째, 둘 째, 셋 째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정리해주는 스타일이다. 마치 노(老)교수가 이야기하듯 해준다. 또 노 전 대통령은 단문을 선호했다면 김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문장이 길었다.

-주장하는 바나 근거 같은 것들은 대통령이 직접 썼나 ▶물론이다. 노 전 대통령은 주장하는 바를, 김 전 대통령은 첫 째, 둘 째, 셋 째 이야기할 근거를 모두 직접 써줬다. 두 대통령은 그런 것(대신 작성하는 것) 용납 못했다.

-초안을 주고 어떤 방식으로 글을 수정하나 ▶김 전 대통령은 초안을 받으면 빨간 펜으로 고쳤다. 그렇게 고치다가 모자라면 페이지를 더 늘려서 적어줬다. 우리가 헷갈리지 않도록 친절하게 알려줬다. 초안을 올리면 거의 일이 끝났다고 보면 됐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초안을 올리면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구술로 알려줬는데 직접 불러서 “이렇게 써라”라고 알려줬다. 초안 검토가 끝나면 3차에는 완성본이 나온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부처장관들과 연설문을 검토한다. 그렇게 대통령주재 회의에서 최종안이 만들어진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두 분의 연설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달변가’라고도 불리는데 ▶‘달변가’라는 게 두 대통령에게 좋은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말과 글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말 많으면 공산당’, ‘침묵이 금이다’,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라’처럼. 말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아직도 기억난다. DJ때는 여당과 보수언론에서 ‘거짓말’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느냐. 거짓말로 선동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소위 ‘고졸의 막말’, 품위 없다는 프레임을 씌었다.

-그런 언변(言辯)이 다시 재평가 될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특히 이번 사태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체가 변했으면 좋겠다. 회사조직에서도 ‘말 많은 조직원’이 돼야 한다. 토론이 자주 이뤄져야 발전하는 것이다. 지시와 보고만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발전할 수 없다. 박 대통령에게도 누가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했다면 사태는 조기에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청와대에서는 사실상 대통령 말을 듣고 받아쓰기밖에 안 했다. 그런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강 교수가 몸담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자주 토론이 이뤄졌나 ▶당연하다. 특히 참여정부는 굉장히 수평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 초안을 누가 쓸 것인지 묻고 만약 담당 과장이 쓴다고 하면 직접 면담했다. 직급 관계없이 직접 쓰는 사람과 이야기했다. 보통은 대통령이 비서실장에게 말하고 수석에게 이야기한다. 그럴 때는 중요한 내용은 빼고 알려준다. 정보로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이것을 깨버렸다. 대통령이 행정관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누가 장난질 할 수 없다. 과장이 이야기했는데 내가 연설비서관이라고 소위 으스대지 못한다. ‘정보의 수평’이 철저하게 이뤄졌다. 노 전 대통령은 늘 ‘정보의 수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의 진보는 소수가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는 것”이라면서 “혼자 누리는 것을 국민이 누리면 진보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아는 정보라면 국민이 알아도 된다고 말했다. 내게도 “청와대에서 배운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특권을 누린 것”이라고 하면서 책을 쓰길 권유했다. 재임 중에는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못 썼다. 한참 후에 쓸 수 있었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그럼 대통령의 가르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 달라. 글 잘 쓰는 비법은 무엇인가 ▶사실 글쓰기 책으로는 배울 수 없다. 사기에 가깝다고 할까. 글은 써야 한다. 글쓰기 책을 읽고 ‘이분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썼구나’, ‘글을 잘 쓰려고 노력했구나’ 이런 마음을 배우는 데는 효과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많이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다. 대통령이 썼다고 해서 정답은 아니다. 모범도 아니다. 두 대통령의 방식이지 내 방식은 아니다. 따라 할 필요도 없다. 글 쓰는 것에 관심 갖고 동기부여하는 취지로 읽는 게 맞다.

-대통령에게 ‘연설’은 무엇일까 ▶말은 대통령의 생각이다. 말하지 않는 것은 불통이다. 말이 많은 것은 생각이 있고 소통하려는 의지로 봐야 한다. 선동이라든가,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던 과거가 잘못됐다. 우리 사회 지배층은 말 많은걸 싫어한다. 불편하다. 시키는 대로 하고 불러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데 이의 있다고 하면 불편해한다. 말없는 사회를 원했고 그들이 돌아온 사회가 이번 사태를 빚은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한번이라도 대통령의 연설이 어떻게 고쳐졌는지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이 사태까지 안 왔다. 문제를 제기 하지 않는 참모들 모두의 문제고 언론도 떳떳했느냐. 전반적으로 돌아봐야 되지 않나 싶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또 한단계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유럽이나 미국이라고 해도 정치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일부다.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 대단히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소통을 잘하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고서는 국정을 끌고 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역대 대통령 자서전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회고록이다. 도입부터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부터 나온다. 그런 분을 누가 이기겠느냐.

강원국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1962년 7월8일 출생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제너시스템즈 경영전략부문장
–KG그룹 상무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홍세미 기자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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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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