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씨의 #오늘도_출근]회사 '익게'의 배신? 내 얘긴 아닌 줄 알았는데?

정수현 기자 입력 2016. 12. 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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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어제 익게(익명게시판)에 뜬 글 봤어? 와! 나 그 사람 얼굴 보고 싶네”

“누구요?”

“왜~ 그 489번째 글 있잖아. 제목 ‘여러분도 아시나요?’ 이거 말이야”

“아···뭐지?(오옷!! 이번엔 누구지?? 빨리 찾아봐야지!!)”

아...궁금해...이것만 하고 당장 익게 보러 달려가야지
입사를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사실 회사에 ‘익명 게시판’이 있다는 소식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익명게시판? 에이··· 초딩 중딩도 아니고 ㅋㅋㅋ 어른이 뒤에서 무슨 말장난이야?’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회사 인트라넷 가입과 동시에 내 눈은 익게를 부리나케 찾기 시작했다.

구성원 보이스, 전사적 경영 공지, 품의서 쓰는 법, 익명 게시판(new)···.

저기 있다!! 익. 명. 게. 시. 판.

글쓴이의 이름이 공개되는 다른 게시판들과는 달리 익게에는 늘 ‘NEW’라는 빨간색 글씨가 반짝였다.

활발한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_+좋았어)

회사 익명게시판을 대하는 자세
바로 옆 부서 대리님이 다가 왔다.(아···.또 온다···.이 분은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어···ㅠㅠ)

“오~ 서경씨. 뭘 좀 아는구만? 가입하자마자 익게를 들어가네?”

“아···네 ㅋㅋ 여기 보물창고라고 하던데요??(이 정도면 가십을 어느 정도 즐길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신입으로 보이겠지?)”

“어제도 한 건 누가 올려서 그거 신변잡기 하느라고 댓글이 막 100개 넘게 달리고~ 그거 읽느라 재밌어서 혼났네”

“아······네·········(오! 누구지?? 궁금궁금~~)”

그렇게 난 익게 게시물을 하나씩 하나씩 검색해 내려갔다.

수많은 회사의 과거 썰(소문)들이 있었다.

공포(와···!!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이야?? 완전 드라마다! 이건!!)’와 ‘기대(나도 앞으로 힘든 일은 여기 털어놓을 수 있겠다 ㅋㅋㅋ)’ 속에서 일주일에 걸친 사내 탐방을 끝냈다.

오~~ 이렇게 하면 안되는 거구나! 앗! 저런 행동은 당연히 욕을 먹을만 하지!
이제 익게를 애용한 지도 만 4년을 넘었다!!

회사의 웬만한 사건(?) 대부분에 능통한(?) 대리가 됐고 “우리 팀 대리님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만 봐도 누가 주인공인지 딱 감이 왔다.(오홋!!! 대단한 경지~~)

대부분 익게에 올라오는 글은 이 전부터 쭉 문제가 있다고 들어오던 게 대부분이다.(그래도 익게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순기능을 한다는 사실...)

오늘 올라온 글.

“1,329번. <우리팀 대리님을 고발합니다> 게시자: 보고그만좀

아···.정말 짜증 나 죽겠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분들이 이 정도 밖에 못하는 사람들인가요? 정말 이런 사람을 뽑은 회사의 인사 시스템도 의심할 정도입니다.

저는 사업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보통 보고서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내는데 정말 매번 보고할 때마다 미치겠습니다. 원래 과장님이 대면 보고를 하고 제가 그 PPT 작업을 하는데 초반엔 같이 회의하고 의논이라는 걸 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그냥 아무 대책도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어요. 부장한테 가끔 잔소리를 듣는 것 같긴 한데 전혀 바뀌는 게 없습니다ㅠㅠ 몇 번이나 질문하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도 ‘야 대충 해~ 어차피 회사 생활 열심히 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라고만 합니다. 도돌이표 상황에 늘 스트레스를 받는 제가 이상한 건가요?

그냥 일만 답답하게 굴면 몰라요. 가끔 옆에서 보면 모니터에 늘 주식, 게임, 사진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저 사람 때문에 우리 팀 전체 이미지가 별로 안 좋다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익명게시판이 있으니까 오늘도 한소리하고 갑니다... 시원하네요. 꾸벅”

뭐 늘 봐왔던 비슷한 글이다.

회사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냐..

자뻑에 취한 대리가 있는데 남들 다 무시하는 데 본인만 모른다···이 사람을 어찌 해야 하냐··· 대화할 때마다 불쾌하게 말하는데 그 자리 좀 바꿔줄 수 없냐.. 등등 어느 조직에나 있는 아메바에 대한 하소연이다.

‘아니 왜 늘 똑같은 잘못을 인지하면서 계속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는거지??ㅋㅋ’
그런데 이번 글에 댓글이 무수히 많이 달려있다.

‘이상하다? 그냥 평범한 글인데?’

뭔가 본능적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걸 직감한 나는 빠르게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저 그 과장님 누군지 알아요. 예전에 같이 일했었는데 저도 정말···..너무 힘들었어요 ㅠㅠ”

“힘내세요! 원래 다 그런 거죠. 그런 사람 겪고 제대로 된 상사 만나면 진짜 감사함을 느낀다니까요?”

“아···그 과장님 근데 집에 잘 안 들어가요. 뭐 다른 팀에 만나는 대리가 있다고 그러던데···?”

“저도 그 얘기 들었음”

“혹시 B팀에 그 여자 대리???”

“그 여자 대리 지금 솔로인데 그 과장이랑 월요일 아침마다 웃으면서 카페 가는 거 몇 번 봤음”

점점 익게는 신변잡기로 넘어갔다.

누군지 모호했던 사람들도 댓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점차 머릿속에 뚜렷해졌다.

‘헉 예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인사했던 사람들?? 대박’

댓글들은 마녀사냥으로 번져갔다.

“그 대리 다른 남자랑도 아침마다 카페 가던데??”

“그 여자 대리가 예전에 만났던 남자가~ C팀이래요”

“여자가 주식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맨날 그 과장한테 메신저로 물어봐서 그 과장이 주식창을 들고 산다던데??”

무소식에 궁금해하지말기. 그거슨 바로 희소식.
계속 보다가는 모든 썰들을 사실로 믿을 것만 같았다.(이건 아니지 ㅠㅠ 이건 아니야 ㅠㅠ)

예전 같았으면 ‘아니 저런 사람이 회사를 다녀?? 인사팀은 조사 안 하고 뭐하는 거지??’라며 이를 아득바득 갈았을 터다.

그런데 회사를 3년 넘게 다니다 보니 왠만한 사건들은 ‘그럴 수 있지 뭐···’란 생각이 자주 든다.

그리고 오늘처럼 신변잡기로 번지는 글들을 보면 사실이든 아니든 당사자가 조금 불쌍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그런 건 각자 그냥 알아서 풀지···)

익게가 스트레스 풀고 자기 검열을 하는 장점도 있지만 이렇게 신변잡기로 밑도 끝도 없이 퍼지면 ‘읽고 재미있어하는 내가 뭐하는 건가’하는 씁쓸한 기분이 밀려온다.

안 읽자니 찜찜하고···

읽자니 괜히 어줍지 않은 정보만 알아서 일하기 껄끄러운 사람들만 늘어나고···

하지만 매번 고민을 하면서도 또 다시 인트라넷에 들어간다.

오늘은 무슨 또 누가 무슨 글을 올렸을까??

내가 아는 사람인가??

이 놈의 회사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아??

오늘도 출근 후 또 익게를 들어간다.

“경영 환경을 개선을 위한 고민 상담, 솔직한 수다창고. 익명 게시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갑자기 들리는 ‘까톡까톡’!)“야! 서경아! 익게에 너에 대한 글 올라온 것 같은데? 빨랑 들어가서 읽어봐!!!”

웅??? 요건 또 뭐지????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오늘도_출근’은 가상인물인 32살 싱글녀 이서경 대리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우리 모두의 직장 생활 이야기입니다.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언제든 메일로 제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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