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실패로 렌치 총리 사임.. 이탈리아도 '불확실성 시대'

이희경 입력 2016. 12. 5. 20:36 수정 2016. 12. 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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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반대 59%.. 최종 부결 / 개헌 외 기성 정치 심판 성격 강해 / 포퓰리즘 정당 득세 계기 가능성 / EU 탈퇴 기치 오성운동 집권 땐 '이탈렉시트' 현실화 될 수도
내년 유럽 각국 선거에 영향 예상

유럽연합(EU) 탈퇴를 선언한 영국(6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11월)에 이어 이탈리아마저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마테오 렌치(41) 이탈리아 총리는 자신이 제안한 개헌안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즉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는 단순히 개헌뿐만 아니라 렌치 정부로 상징되는 기성 정당에 대한 심판 성격을 띠었다. 향후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정치, 경제적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정부는 상원의원 축소 등을 묻는 개헌안 투표에 대해 반대가 59.1%, 찬성이 40.9%로 집계돼 최종 부결됐다고 밝혔다. 렌치 총리는 총리궁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나는 오늘 명백하게 패배했다”며 “내일 내각 회의를 소집한 뒤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앞서 렌치 총리는 상원 의석 수를 350명에서 100명으로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900명이 넘는 상하원 의원들이 동등한 권한을 가져 입법이 늦어지는 데다 70년 동안 63번 주인이 바뀔 정도로 중앙정부가 안정돼 있지 않은 현 정치체제가 경제 성장,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렌치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지난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이 0.4%(EU 전체 평균 4%)에 그치는 등 2014년 2월 집권 뒤 실정을 거듭한 렌치가 정부 권한만 키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 대표 베페 그릴로는 “2조유로(2250조원)의 천문학적인 빚을 안고 있는 나라를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10명 중 4명이 백수인 청년층을 자극했고, 극우 북부리그의 마테오 살비니는 정부의 난민 옹호 성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렌치를 압박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선거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렌치 총리의 퇴장으로 오성운동 등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 일대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로마, 토리노 시장 등을 배출하며 현재 30%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제1야당인 오성운동은 EU 탈퇴는 물론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체제도 반대하고 있다. 조만간 진행될 선거법 개정으로 오성운동이 과반 의석을 확보할 확률이 낮다는 지적도 일고 있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이번에 큰 타격을 입은 만큼 오성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인 ‘이탈렉시트’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 대선이 줄줄이 예정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반난민, 반EU 기치를 전면에 내건 포퓰리즘 정당들의 지지율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 마린 르펜은 20~30%의 안정적인 지지율로 내년 4~5월 열리는 대선 결선 진출이 유력하고, 독일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15%를 얻어 제3당 위치를 확고히 했다. 내년 3월 총선이 예정된 네덜란드에서도 극우 자유당이 11월 현재 18~21%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민투표 부결에 따른 경제적 충격파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유로화는 지난 20개월 기준 달러 대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유로당 1.0562달러)했고, 닛케이225 지수, 상하이종합지수 등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경제분석가 울프 리히터는 “국민투표 부결로 50억유로의 빚을 안고 있는 은행 방코몬테파스치 등 이탈리아 금융부문의 불안정성이 커졌고, 이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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