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현실 싱크로율 90%

입력 2016. 12. 5. 17: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소 밀집 지역 한국
원전 사고의 위험 그린 영화 <판도라>

영화 <판도라>는 한국에서 지진으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능한 상황을 그린 시뮬레이션과 같다. 영화는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국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부터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원전에 배신당한 보수층 지지자,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황폐해진 시민, 노후 원전이 보내온 경고를 미리 들었던 전문가까지. NEW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놈은 선물이 아니라 괴물이 될 겁니다.” 영화 <판도라>에서 노후한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우려한 평섭(정진영)이 경고했다. 경고는 경보음으로 바뀌었다. 지진으로 타격 입은 원전에 사이렌이 울렸다. 회색 분진이 발전소 일대를 뒤덮었다. 단시간에 강력한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피를 토했다. 살갗이 타올랐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맨몸으로 뛰쳐나와 피난길에 올랐다. 거대한 재앙 앞에 국가의 대응은 한심했다. 당장의 혼란을 덮기 위해 진실을 은폐했다.

원자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어떻게 될까? 영화 <판도라>는 상상하기 싫은 미래를 그린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월촌리에 원전이 들어섰다. 고기잡이하던 마을 사람들은 발전소 하청업체 직원이 되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원전도 그만큼 나이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판도라의 상자, 원자력발전소

원전이 노후화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원전이 언제까지나 깨끗하고 안전하게 마을을 먹여살릴 것이라는 쪽과 인근 바다에서 고기 한 마리 못 잡아먹는데 이것이 안전이냐고 말하는 쪽이 매일 싸운다. 이제는 생업을 원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마을 곳곳에서 펄럭이는 원전 반대 현수막이 서글프다.

이야기는 영화의 밖과 안을 오간다. 전체 줄거리는 상상과 허구이지만, 바탕은 철저히 현실과 밀착해 있다. 주민들의 한 축은 왜 노후 원전을 폐쇄하라고 소리칠까. 답은 영화 밖 현실에 있다. 알려졌다시피 원전 사고의 피해는 길고 집요하다. 1986년 4월 옛 소련 체르노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태로운 땅 위에 서 있는 원전의 위험성은 끊임없이 지적된다. 일본 반핵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는 저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에서 원자력이 안전하다는 신화는 여러 사실에 의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400기 넘은 원자로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1기당 1천 년에 한 번 대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400기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2.5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진자부로는 이론적 확률을 따지지 않더라도, 1950년대 이후 10년에 한 번꼴로 대사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좀더 가까운 현실을 살펴보자. 지난 9월12일 규모 5.1과 5.8의 경북 경주 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된 일대에 경고등이 켜졌다. 11월 초까지 500여 차례 이어졌다는 여진처럼, 공포는 지속되고 있다.

며칠 전 신문만 펼쳐봐도 영화 속 주민들의 목소리와 현실적 공포의 경계는 무너진다. 11월28일 20시57분, 경주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규모 2.4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이 발표한 9월 경주 지진 이후 이어진 500여 차례 여진 중 하나다.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2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원안위는 9월 경주 지진이 고리 2호기의 운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능한 정부 대응은 ‘2차 재앙’

비슷한 시점 정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등도 여기에 가세했다. 경주 지진 이후 가동을 멈춘 월성원전 1~4호기의 내진 성능 강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은 채 재가동 신청을 했다. 이 발전소들은 활성단층이 가장 많은 땅 위에 서 있다. 특히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훌쩍 넘었고, 잇단 고장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원전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어떤가. 끔찍하지만 영화 속 광경이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판도라>에서 정부는 노후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데 문제를 제기한 발전소 소장을 파직하고, 전문성이 전혀 없는 친정부적 인물을 자리에 앉힌다. 정부는 사고 발생 뒤에도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다. 무력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골든타임을 놓친다.

노후 발전소 곳곳이 부서지면서 냉각수가 새고 방사성물질이 마을에 퍼져나가는 것이 1차적 재앙이었다면, 정부가 지지부진 대응하는 사이 원전이 통째로 폭발할 수도 있는 2차적 재앙이 눈앞에 닥친다. 재난 상황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고, 정부는 혼돈에 빠진 시민사회를 다독일 능력이 없다. 대규모 재난의 대비책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우 감독은 11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현실성이 90%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는 이미 2년 전 위기 대응 능력 빵점인 ‘사라진 국가’를 경험했고, 무능력한 대통령은 현재진행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