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315명 갇힌 사실 전화로 들었다

입력 2016. 12. 5. 16:58 수정 2017. 1. 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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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박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1시23분 전화로 보고받고도 2시간48분간 아무 지시 내리지 않아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300여 명 선체 잔류’ 사실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2시간48분 동안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조각조각 공개됐던 사실관계와 관련 문서를 <한겨레21>이 다시 종합 분석한 결과다.

2014년 10월28일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미구조된 인원들은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점에 대해 국가안보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11시23분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박 대통령과 대면 접촉하여 보고한 일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제1138호 ‘대통령 대면한 청와대 참모 0명’ 참조). 그렇다면 국가안보실의 보고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1시23분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게 한 보고는 ‘유선보고’, 즉 전화보고였다. 청와대는 지난 11월19일 홈페이지를 통해 그 시각 국가안보실이 박 대통령에게 유선보고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답변서와 청와대 해명을 종합하자면,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오전 11시23분에 이미 ‘미구조 인원들이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 높다’는 내용의 보고를 전화로 직접 들은 것이다.

‘미구조 인원’이 얼마나 많은지 대통령이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면, 참사 당일 오전 11시28분, 정무수석실은 대통령에게 ‘오전 11시15분 기준으로 구조 인원이 161명(미구조·실종 인원 315명)’이라고 서면보고한 바 있다.

다시 종합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무수석실의 서면보고와 국가안보실의 전화보고를 통해 오전 11시23분에 이미 세월호 탑승객 가운데 315명(전체 탑승객 476명)이 배 안에 갇힌 채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2014년 7월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회의록을 보면, 청와대 상황실은 오전 11시10분부터 해경 513함의 영상중계를 통해 참사 현장 상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있었다.

<한겨레21>, 보고 시각과 방식 첫 확인

그동안 청와대가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를 통해 국가안보실이 참사 당일 오전 10시52분~11시30분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구조 인원들이 실종 또는 선체 잔류 가능성 높다’는 보고를 올린 사실은 공개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각과 형태가 특정되지 않아, 박 대통령이 참사 현장 상황을 실제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논란거리였다. 그 실체가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11월19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의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이라며 책임 소재를 언론에 돌렸지만, 실제로는 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주요 참모들이 오보(첫 오보 시각 11시1분)와 무관하게 승객 대다수가 배 안에 갇힌 채 침몰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대응은 물론 최근 해명에 이르기까지 거짓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구조 인원 315명을 태운 채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시점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은 ‘315명의 선체 잔류 가능성 높다’는 내용의 보고(오전 11시23분)를 받고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다가, 그로부터 2시간48분이 지난 오후 2시11분에야 후속 지시를 내렸다. 게다가 청와대가 밝힌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구조 진행 상황 점검 및 현장 상황 파악’이다. 현장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든 통용될 만한 원론적 지시 내용이었다.

이 지시는 이날 참사와 관련한 네 번째 지시였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10시30분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린 뒤 첫 지시다.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해놓고, 불과 50여 분 뒤 315명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왜 3시간41분 만에야 ‘원론적이고 기계적인’ 지시를 내리는 데 그쳤을까.

이후 박 대통령은 오후 2시57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구조 인원 혼선에 대해 질책하고 통계를 재확인하라고 다섯 번째 지시를 내렸다. 7분 전, 국가안보실이 박 대통령에게 ‘(앞서 오후 1시13분에 한) 190명 추가 구조는 잘못된 보고였다’고 정정보고를 올린 데 대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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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한겨레21> 물음에 ‘답변 의사 없다’

오후 3시에야 박 대통령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 준비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제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박 대통령은 오후 5시15분 중대본에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갇혀 있으니까….

오전 11시23분 이미 전화로 국가안보실로부터 승객 대다수(315명)가 배 안에 갇힌 채 침몰한 사실을 보고받았고, 중대본 방문 전 구조 인원이 여전히 166명에 불과하단 사실을 정무수석실로부터 보고(오후 3시30분)받았는데도 이같은 발언이 왜 나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 더군다나 당일 해경이 오후 1시부터 착수한 수중수색 작업도 번번이 실패한 상황이었다.

국민 수백 명이 배에 갇힌 걸 알고도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2시11분까지 3시간41분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청와대는 11월19일 홈페이지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주로 관저에 있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첫 서면보고를 받은 시각(오전 10시)부터 중대본 방문(오후 5시15분) 시각 사이에 약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을 대면했다고 밝힌 청와대 참모는 아무도 없다.

여기에 더해 박 대통령이 오전 11시23분 이미 탑승객 대다수(315명)가 배 안에 갇힌 채 침몰한 사실을 전화로 들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중대본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박 대통령은 참사 현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의심을 살 만한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왜 다급한 현장 상황을 전화로 직접 보고받고도 2시간48분 동안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어떤 참모도 부르지 않고, 어떤 회의도 소집하지 않았을까. 박 대통령은 왜 뒤늦게 중대본에 방문해 불과 6시간 전 직접 들은 얘기도 까먹은 모습을 보였을까.

<한겨레21>은 참사 당일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 주중대사에게 12월1일 세 가지 질의를 보냈다. ‘오전 11시23분 유선보고를 대통령에게 직접 했는지’ ‘유선보고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사항은 무엇이었는지’ ‘당일 대면보고는 왜 하지 않았는지’였다. 하지만 김장수 대사는 같은 날 문자메시지를 통해 “답변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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