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허울 뿐인 블라인드 면접

고재석 기자 2016. 12. 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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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대학‧토익점수 묻는 면접관.."블라인드 면접 왜 홍보하나"
CJ는 2010년부터 ‘탈스펙’을 강조하며 학교, 어학, 자격증 정보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홍보해왔다. 면접자가 전하는 풍경은 이와 크게 달랐다. / 사진=뉴스1

“OO(특정 광역시)면 OO대학교(특정 국립대) 나왔나?” “어학점수 몇 점이죠?”

 

올해 하반기 CJ그룹 공채 과정에서 면접관이 두 면접자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CJ는 2010년부터 ‘탈스펙’을 강조하며 학교, 어학, 자격증 정보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홍보해왔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어학성적 지원자격 제한도 폐지했다고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기자와 만난 면접자가 전하는 풍경은 이와 크게 달랐다.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센터 인근 한 호텔에서 ‘CJ그룹 하반기 공채 1차면접’이 진행됐다. 서류전형과 인적성검사를 거쳐 추려진 지원자들이 면접에 응했다. 1차면접은 크게 심층면접과 직무면접으로 나뉘어 이뤄졌다.

 

CJ가 공채전형에 앞서 ‘CJ 채용페스티벌 보이는 채용라디오’를 통해 내세운 설명에 따르면 심층면접은 회사에서의 보고형식을 빌려 진행된다. 4~6인이 팀을 이뤄 토론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직무면접은 직무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도와 관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설명에 따르면 면접위원 2명이 평가하고 소요시간은 40~50분이다.

 

직접 경험한 제보자가 전하는 면접장 분위기는 설명과 크게 달랐다. 

 

CJ의 식자재, 단체급식 관련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에 지원한 A씨는 “직무면접에 임하니 면접위원 2명이 앉아 있었다. 나와 다른 면접자 B씨 2명이 들어가 2대 2로 진행됐다. 면접은 15분 만에 끝났다. 자기소개서에 대한 질문은 한 가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15분 간 공통으로 4개 남짓한 질문을 받았다.

 

구체적인 질문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는 더 도드라진다. A씨는 블라인드 면접이라는 말에 어학점수를 기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높은 점수가 있었지만 만료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A씨는 “CJ는 어학점수 유무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서 걱정 없이 그렇게 했다”고 전했다. 공채 전형 발표 직후 기자와 만났던 한 CJ그룹 부장급 직원도 “입사과정에서 어학점수가 없어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A씨는 면접관이 “(A씨가 공부한) OO고시는 △△고시처럼 어학점수가 필요없나”라고 노골적으로 물었다고 전했다. 사실상 어학점수 유무를 겨냥한 질문인 셈이다.

 

이에 A씨가 “만료기간이 지나서 CJ 공채에는 쓰지 않았다”고 말하자 면접관이 “몇 점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에 A씨가 답하니 “상당히 높은데 왜 안 적느냐”고 훈계까지 했다. 이어 “기업은 그런 거 상관없는데 왜 안 썼냐. 다음부터 꼭 써라”고 덧붙였다.

 

 

이에 A씨는 기자에게 “어학 점수 유무가 면접관에게 제공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점수 안 쓴 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간 CJ그룹은 자기소개서 중심으로 지원자를 평가한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A씨는 “두 면접자가 들어갔는데 공통질문으로 4개만 나왔을 뿐, 자기소개서 관련 질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자소서에는 어학이나 출신학교 얘기도 못 쓰게 돼 있지 않나. 이력서만 보고 계속 질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A씨와 면접자리에 함께 들어간 B씨가 받은 질문은 이런 혐의를 더 짙게 만든다.

 

A씨에 따르면 면접관은 B씨에게 “OO(특정 광역시)이면 OO대(특정 국립대) 나왔나”라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에 B씨는 “△△대도 있는데 저는 OO대 나왔습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이 면접관은 한 국가공인 시험을 언급하며 B씨에게 “왜 그 시험을 보지 않나. 그거 아깝지 않나. (국립대면) 학비도 싼데 다른 데 비하면 돈도 굳은 거 아닌가”라고도 말했다. 면접자가 나온 특정 대학과 신상 질문을 연이어 던진 셈이다.

 

A씨는 면접 직후 함께 나온 B씨가 “면접 여러 차례 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학교를 물어보는 경우는 생전 처음이다. 내가 시험을 그만둔다고 하는데 그걸 강요하듯이 질문하는 것도 불쾌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A씨 역시 “면접관은 ‘갑’이라서 원칙과 상관없이 묻고 싶은 거 다 묻고 을에게 ‘일단 내 말을 들어라’라고 한 거 아니냐. 이럴 거면 블라인드 면접이라고 왜 홍보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CJ가 유명 아나운서를 진행자로 섭외해 유튜브(YOUTUBE)에 생중계까지 한 ‘CJ 채용페스티벌 보이는 채용라디오’ 내용은 이 같은 현실과는 동 떨어진 내용이다.

 

진행자인 아나운서가 “블라인드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요”라고 묻자 CJ 인사 담당자는 “여러분들의 지원 회사와 직무만 표현되고 자기소개서는 텍스트만 나와 있다. 텍스트에 대해서만 오롯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직무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가 필요하다. 해당 부서 팀장 등 직무전문가가 와서 자기소개서를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홍보했었다.

 

이에 진행자가 “이름, 주소, 출신학교가 (안나와있다는 거군요). 전공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이라고 말하자 인사 담당자는 “전공도 나와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놀란 진행자는 “정말 클리어하게 사람의 소개로 자기 얘기를 듣고 평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인사 담당자는 “맞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었다. 이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일 A씨와 B씨가 임한 계열사 직무 면접에 응한 면접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취재결과 이 면접관이 심사한 면접에 응한 이는 9명이었다. A씨는 기자에게 다른 면접자 C씨와의 메신저 내용도 보여줬다. C씨 역시 직무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밝혔듯 A씨와 B씨는 직무면접에서 대부분 ‘신상관련 질문’을 받았다.

 

CJ 면접 하루 전인 지난달 16일 취업포털 사람인은 구직자 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채용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경험’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답변자 중 76.6%가 ‘그런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불공정한 채용을 경험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구직자는 무려 92.2%였다.

 

응답자 상당수는 문제 개선을 위해 ‘채용 심사기준 공개’와 ‘블라인드 채용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작 블라인드를 내세운 대기업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모양새다.

 

기자는 관련 사실을 면접 당일이던 지난달 17일 당사자를 통해 입수했다. 하지만 이달 2일로 예정된 면접결과 발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 때문에 그간 보도하지 않았다. 당사자 동의를 얻어 익명으로 관련 사실을 보도한다.

한편 5일 보도 직후 여러 차례 본지에 접촉해 온 CJ 측은 8일 오전 기자와 만나 “CJ는 면접이 블라인드라고 홍보한 적이 없다. 채용공고와 Q&A에는 기재 못했지만 채용설명회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서류전형을 블라인드로 진행한다고 알렸었다. 앞으로 지원할 지원자들께는 이력서가 면접관에게 제공된다고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그럼 실효성이 없으니 서류전형도 블라인드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묻자 CJ 측은 “그건 아니다. ‘스펙’을 이유로 면접 볼 기회도 갖지 못할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다”​면서 “​면접에서도 학교와 어학 점수를 묻는 건 지양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CJ 측은 “이번 사건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상처 받은 지원자들께 사과드리고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고재석 기자 jayk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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