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戰 전사' 18세 美軍, 65년만에 고향품으로

이미숙 기자 입력 2016. 12.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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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 참전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전사한 미 육군 대니얼 헌트(사진) 일병의 유해가 65년 만에 고향 애리조나에 안장됐다. 헌트 일병의 장례식은 지난 2일 고향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 국립묘지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헌트 일병은 1951년 9월 27일 한국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단장의 능선 전투’(미국에서는 Battle of Heartbreak Ridge로 불림)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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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헌트 일병 장례식

애리조나 국립묘지에 안장

한국전에 참전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전사한 미 육군 대니얼 헌트(사진) 일병의 유해가 65년 만에 고향 애리조나에 안장됐다. 헌트 일병의 장례식은 지난 2일 고향인 애리조나 주 피닉스 국립묘지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장례식에서는 군목의 헌트 일병 소개, 이기철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의 ‘평화의 사도메달’과 추모패 수여, 이 총영사의 조사, 명예 부상장 수여, 가족 추모사, 미 2사단기(旗) 증정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헌트 일병은 1951년 9월 27일 한국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단장의 능선 전투’(미국에서는 Battle of Heartbreak Ridge로 불림)에서 전사했다. 이 전투는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13일∼10월 13일 사이 강원도 양구·인제 일대에서 일어났다. 유엔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유리한 전세를 차지했으나, 유엔군 3700여 명과 북한·중공군 2만5000여 명이 전사했다. 헌트 일병은 그동안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실종 상태로 있었으나, 올해 초 헌트 일병의 DNA가 확인돼 지난달 30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애리조나 지역 언론에 따르면 장례식에 참석한 헌트 일병의 조카 로리 헌트는 “아저씨가 유해로나마 고향으로 오게 돼 감개무량하다”면서 “늘 아저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트 일병의 형제들은 모두 한국전에 참전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헌트 일병은 동생 존과 함께 1951년 참전했으며, 형 찰스도 이후 한국전에 참여했다. 동생 존은 수년 전 미국에서 사망할 때까지 형인 대니얼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데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이미숙 기자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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