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특혜' 후유증 앓는 이화여대

구민주 기자 입력 2016. 12. 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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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사상 처음 압수수색, 관계자 징계로 어수선한 분위기

벽마다 붙어 있던 대자보는 사라졌다. 굳게 닫혔던 본관도 다시 활짝 열렸다. 11월29일 찾은 이화여대 교정은 마치 지난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이화여대는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프라임 사업 결정에 반대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경찰력이 교내에 투입됐다. 이후 학생들은 그간 학교 운영에서 독단적 결정을 일삼은 최경희 총장의 사퇴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버티던 최 총장은 결국 개교 이래 첫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성은 86일 만에 마무리됐다.

이제 잠잠해지나 싶던 교정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그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130년 만에 총장실 등 2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교육부 감사가 진행됐다. 12월2일 이화여대는 정유라의 입학을 취소하고 퇴학 처분을 내렸다. 또한 남궁곤 전 입학처장 등 관계자 5명을 중징계했다.

겉으로 평온을 되찾은 듯하지만 여전히 이화여대는 사태 수습 중이다. 사진은 12월1일 이화여대 교정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학생 “정리되는 분위기”, 교수 “이제부터 시작”

해를 넘기기 전 뒤숭숭한 교내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내부 노력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학생 및 교직원을 위한 트라우마 상담이 무료로 제공되는가 하면, 교수와 학생 간의 간담회 자리가 마련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 시점을 바라보는 이화여대 구성원들의 온도차는 크다.

학생들은 대체로 학교 내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약학대학에 재학 중인 3학년 김아무개양(22)은 “지난여름에 비하면 학교가 안정을 되찾은 느낌”이라며 “학생들이 가장 강하게 주장했던 총장 사퇴가 관철된 후 서서히 정상모드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전 총장이 속한 사범대 4학년 학생은 “관련된 교내 사람들이 밝혀져 수사를 받게 된 만큼 사태가 곧 매듭지어질 것으로 본다”고 얘기했다. 이 학생은 핵심 관계자에 대한 교육부의 경징계 처리나 총학생회장의 검찰 송치 등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이 역시 머지않아 잘 마무리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태들을 겪으며 오히려 학생들 간의 부족했던 단합심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의 생각은 180도 달랐다. 교육부 감사가 이뤄진 후부터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11월11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소속 A 교수는 “교육부 감사 결과가 난 후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최일선에 있던 총장 및 일부 교수들에겐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처벌 대상자 중 억울한 면이 있는 교수도 여러 있다는 것이다. A 교수는 “학교에 평생을 바친 교수들에 대해 학교가 최소한의 해명의 장도 만들어주지 않고 방치한다”면서 “해당 교수가 교내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퇴직한 임아무개 교수는 “극히 일부 교수, 일부 학생에 의해 벌어진 일인데 학교 전체가 불명예스럽게 오르내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부서 간 온도차도 심했다. 이번 사태와 비교적 무관한 부서들은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스컴을 통해 압수수색 소식을 알게 된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중심에 있는 총장실, 입학처 등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현재 총장직은 최 전 총장 사퇴 후 한 달 넘게 송덕수 부총장이 맡고 있다.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는 최 전 총장은 수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태다. 빈 총장실을 지키고 있는 한 직원은 “전 총장과 현 총장대행과 관련해 그 어떤 것도 얘기해 줄 수 없다”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입학처 역시 대입 논술시험 채점으로 분주한 와중에도 검찰수사와 관련해 적잖이 신경 쓰는 모양새였다. 한 입학처 관계자는 부서 상황과 관련한 질문에 “우리가 더 궁금하다. 좀 알아봐 달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난주 이대 입학 논술시험을 봤다는 한 수험생은 “언론에 이대 이름이 불미스럽게 오르내리지만 대학 선택에 있어 고려사항은 전혀 아니었다”고 얘기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아무개씨 역시 “지금 아무리 시끄러워도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유라 입학 때부터 ‘정윤회 딸 승마로 입학, 수상하다’는 말 나돌았다”

- 최은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최은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 시사저널 고성준

이대가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프라임 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 추진 문제로 학교 측과 긴장관계가 계속됐다. 그때부터 최경희 총장 사퇴, 지금의 정유라 입학 특혜 의혹까지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다 보니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압수수색에 이어 교수 및 관계자 징계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경유착이란 말은 있어도 권학(權學)유착이란 말은 없었는데, 그 실체가 드러난 일이라 생각한다.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마땅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어디서든 벌어진다면 큰일이지 않나.

교육부 감사 발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애초에 학생들 사이에선 교육부 감사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재정지원이나 특혜 문제와 관련해서 교육부도 일부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 전 총장도 경징계에 그쳤고, 충분히 관련성이 의심되는 이사회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핵심을 비켜간 꼬리 자르기라고 생각한다.

특혜 당사자 정유라씨에 대한 조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입학 당시부터 ‘정윤회 딸이 승마로 입학했다. 수상하다’는 얘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런데 입학 후 학교에서 보이지 않으니 다들 ‘자퇴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드러나면서 다들 너무도 놀랐다. 한 사람으로 인해 선수생활과 학교생활을 힘겹게 병행하는 다른 체육 특기자 학생들의 피해가 크다.

일련의 사태를 통해 이대생들 사이 변화가 있다면.

이대가 학생들의 단체행동으로 언론에 조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부적으로 단합력을 끌어올린 계기가 된 것 같다. 매주 토요일, 학생들과 (촛불)집회에 나가면 이대생인 걸 알고 찾아와 칭찬해 주는 어르신들도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행동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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