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m의 러시안 룰렛' 승부차기를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

김희선 2016. 12.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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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김희선]

11m 거리에서 펼쳐지는 러시안룰렛.

아마도 승부차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승부차기는 무승부가 허용되지 않는 토너먼트 대결에서 90분 정규 시간은 물론 연장전까지 치르고도 비겼을 경우, 승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는 규칙이다. 규칙 자체는 단순하다. 양 팀 선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페널티킥과 같은 방법으로 공을 차고 많이 넣은 쪽이 이긴다. 수비수도 없는 노마크 상황, 11m 거리의 골대를 지키는 건 골키퍼 혼자다. 키커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키커로 나서는 선수들에게는 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른다.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이겨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승부차기에선 생각보다 실축도 많이 나온다.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경기에서도 승부차기로 승부가 갈렸다. 1, 2차전 각각 90분에 연장 30분까지 더해 총 210분의 경기를 펼쳤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한 수원 삼성과 FC 서울은 승부차기에 나섰다. 단 한 차례의 양보도 없는 피 말리는 접전이 이어졌고, 9-9 동점 상황에서 양 팀 골키퍼가 키커로 나섰다. 공을 막아야 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슈팅을 날렸고 아이러니하게도 두 골키퍼의 대결에서 우승팀이 결정됐다. 잘 막고도 못 넣은 유상훈(27) 서울 골키퍼는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았고 실수 없이 침착하게 슈팅을 성공시킨 양형모(25) 수원 골키퍼는 두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공 하나로 두 골키퍼와 팀의 운명이 바뀌었다. 잔인하지만 흥미진진한 승부차기의 마법이다.

◇ 승부차기의 역사

한국인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승부차기의 기억은 2002 한일월드컵 8강 스페인전일 것이다. 거스 히딩크(70)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대표팀은 0-0 무승부를 거둔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해 사상 첫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렸다. 황선홍(48) 현 서울 감독이 1번 키커로 나섰고 그 뒤 순서대로 박지성(35)-설기현(37)-안정환(40)-홍명보(47)가 연달아 나서 모두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반면 스페인은 페르난도 이에로(48)-루벤 바라하(41)-사비 에르난데스(36)가 모두 성공했으나 4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35)가 실축하면서 한국에 승리를 내줬다. 아시아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승부차기를 치른 건 이때 한국이 최초였다.

한국이 최초였던 데는 이유가 있다. 승부차기 역사 자체가 생각만큼 길지 않기 때문이다.

승부차기가 국제 대회서 제대로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건 197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제5회 유럽선수권대회(유로)부터다. 그전까지 경기에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동전 던지기로 결과를 결정하거나 재경기를 치렀는데, 196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3회 유로 4강전을 계기로 승부차기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소련(현 러시아)이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 혈투를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동전 던지기로 결승 진출팀을 가렸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전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유고슬라비아와 연장전 끝에 비겼고 재경기를 치러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무승부였지만 동전 던지기와 재경기라는 두 가지 방식이 혼용되면서 보다 공정하게 승패를 결정짓자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승부차기가 도입됐다. 이후 승부차기는 1978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공식 도입돼 1982 멕시코월드컵 때 처음으로 경기에 사용됐다.

◇ 승부차기가 낳은 진기록

'팀 스포츠인 축구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개인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이다' 등 여러 가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승부차기는 처음 도입된 이후 꾸준히 이어졌으며 수많은 재미있는 기록을 함께 탄생시켰다.

'기록'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기네스북'에도 승부차기 관련 기록이 있다. 기네스 공인 역대 세계 최다 승부차기 기록은 2005 나미비아컵에서 KK팰리스가 시빅스를 승부차기 끝에 17-16으로 꺾은 경기다. 스코어는 17-16이지만 실축한 선수가 많아 이날 경기에 나선 승부차기 키커는 양 팀 합쳐 모두 48명이었다. 이 말은 곧 실축한 선수가 15명이나 된다는 얘기고 심지어 세 번이나 키커로 나선 선수도 있었다.

아마추어리그에서 나온 경기라 기네스북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6월 체코에서 열린 SK 바토프와 FC 프라이스타크의 경기에서도 놀라운 승부차기 기록이 나왔다. 체코 5부리그에 속한 두 팀은 정규 시간 90분 동안 3-3으로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 나섰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두 팀은 총 52차례의 슈팅 기회를 주고받은 끝에 바토프가 22-21로 승리를 차지했다.

단순히 계산해도 모든 선수가 최소 두 번씩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셈이다. 피 말리는 승부차기에 두 번씩이나 키커로 나서야 했던 선수들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프라이스타크의 미드필더 얀 레바카는 지역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만 집에 가고 싶었다"며 괴로웠던 심정을 표현했다.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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