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이영희 입력 2016. 12. 5. 01:02 수정 2016. 12. 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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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합니다. 다짜고짜 이렇게 말해도 “왜?”라고 반문하는 분은 많지 않겠지요. 2016년의 마지막 칼럼을 쓰기 위해 지난 한 달을 돌아보니 도무지 뭘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영화관 한번 가지 못했고, 만화책도 전혀 읽지 않았네요. 주말, 김은숙 작가가 쓴 화제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 전혀 몰랐네”라고 답했으니, 그야말로 ‘천 삽 뜨고 허리 펴기’스러운 나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올해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책을 한 권 꺼내듭니다. 지난봄에 사서 아껴두었던 미국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사진)라는 책입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의 책에서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가슴 아리게 전달했던 저자는 2015년 8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책엔 그가 암 재발 통보를 받은 후 삶을 정리하며 쓴 짧은 에세이 네 편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엄격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동성애자였고, 젊은 시절엔 약물중독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80여 년 삶이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합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고 적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절망 가운데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그는 “잘못된 취급을 받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환자들”에게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것을 집요하게 추구했습니다.

과학자답게 원소 주기율표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지점에선 웃음이 큭큭 터집니다. 80세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80번 원소인 수은을 선물하자 친구는 이런 답장을 보냅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네.” 84번째 원소인 폴로늄 생일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강하고 살인적인 방사성을 띤 폴로늄을 주변에 놓아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새해 같은 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해 봅니다. 열정적이며 사려 깊고 따뜻하고도 유머러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고단함 속에서도 계속 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요.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우리는 지금, 인간에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 앞에 서 있는 건 아닐까요.

이영희 피플앤이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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