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최고가 되지만 좌절한 여류 화가 안 발라이에 코스테

미술사학자 2016. 12. 4. 23: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화와 조각과 건축의 상징들, 안 발라이에 코스테(1744~1818)
안 발라이에 코스테

오늘 소개해 드리는 그림은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들만 모아놓고 그린 정물화죠. 이 자리에서 정물화를 소개해 드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물화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이런 것도 그릴 수 있다거나, 이런 것을 그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뭔가 의미를 담아 그려졌다고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작가는 안 발라이에 코스테입니다. 미술사 전체에서도 정말 찾기 힘든 여류 화가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프랑스의 격동기인 대혁명 시절이죠.

“18세기라는 시대에는 성공해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예술가로서의 직업을 유지하는 것조차 여성 화가들에게는 힘들고 드문 일이었다. 이 시기에 여성 화가들은 역사화 부분을 그리거나 주문받을 수도 없었고, 마이너 그림에 해당하는 장르화에 만족해야 하는 형편이었다는 상황을 이해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혁명을 전후한 시기를 역사학자들은 계몽시대라고 부릅니다. 계몽시대는 이전 어떤 시대보다 더 넓게 지혜와 사상이 퍼져갔던 때입니다. 그런 변화는 예술계에도 영향을 끼쳐 여류 화가들도 드디어 조금씩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금기나 편견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루브르가 설명하듯이 여성 화가들은 역사화를 그리지는 못했습니다. 근대가 오기 이전에 회화 부분은 종교화·초상화·풍경화 중에서 역사화를 가장 훌륭하고 높이 치고 있었죠. 역사화를 따라서 아무나 그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부탁하는 측도, 그리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대작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여류 화가들은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여류 화가들은 여성과 어린아이의 초상화나 아니면 정물화에 제한되거나 아주 가끔 장르화라고 불리는 그림, 한국으로 따지면 신윤복·김홍도의 작품처럼 일반 서민들의 풍속을 그리는 주제들만 허용돼 있었습니다. 안 발라이에는 바로 거기에 도전적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녀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혈기왕성한 때에 그녀의 도전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모든 디테일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도면과 콤파스 그리고 자와 직각자 등은 건축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팔레트와 붓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졌으며, 유명한 고대 토르소의 모형은 조각을 상징하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림인 역사화를 그리기 위해서, 건축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원근법이 사용된 유적지의 그림을 배경으로, 폐허에 가득한 조각들이 그려지고 그 속에 이야기를 담은 인간들이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그림은 안 발라이에 자신이 역사화를 그릴 자신감과 실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줄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여성의 머리 조각상을 보자. 현재 작가 발라이에 코스테의 초상화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명상적으로 보이는 이 여성의 얼굴에서 우리는 작가 스스로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훗날 화가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가이자 동시에 궁정의 전문 초상화 화가 자리에 오른 것이죠. 그것은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는 정도의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이 담긴 이 그림의 의욕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미니어처·정물화·초상화로만 작업을 남기는, 도전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좌절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