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박정우 감독, 추락하는 비행기 탄 대한민국을 그리다 [인터뷰]

황서연 기자 2016. 12. 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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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박정우 감독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비선 실세 의혹이 밝혀지며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4년 전 박정우 감독이 쓴 시나리오는 소름 끼치는 현실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판도라'의 개봉을 앞둔 지금, 박정우 감독의 이야기에는 후련함과 떨림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오는 7일 개봉을 앞둔 '판도라'(제작 CAC 엔터테인먼트)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폭발한 이후 도미노처럼 벌어지는 재난의 참상, 무능한 대통령의 모습과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뒤섞여 현실보다도 더 리얼한 픽션이 됐다.

'판도라'는 앞서 영화 '연가시'를 통해 재난 영화 장르의 대표적인 감독들 중 하나로 떠오른 박정우 감독의 4년 만의 신작이다. 그는 '연가시'를 작업하던 당시 지난 2011년 3월 진도 9.0을 기록한 동일본 대지진, 이로 인해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원전을 소재로 삼아 자료 조사를 하던 중 국내 원전의 노후된 시설과 재난 방지 시스템의 부재를 알게 됐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해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도라'는 지난해 7월 크랭크업 이후 1년이 지나도록 계속해 개봉 시기가 미뤄졌다. 혹자는 정부 비판적인 내용이 있어 외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지만, 박정우 감독은 "스트레스야 있을 수 있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외압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촬영을 준비하며 대관이 무산되는 수준의 '장애'는 있었지만 이를 외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제작 당시 사회 분위기가 경직돼 있었다. 대통령 희화화한 그림을 그렸다고 경찰 조사를 받는 시절이었으니, 제작진으로서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하지만 개봉이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그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박정우 감독은 시국이 이렇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공개 석상에서 나누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홍보 문구에 '원전'이라는 단어 대신 '휴먼 재난'이라는 문구를 내세우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 나나 배우들이 홍보용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발언을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불행한 현실이 이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어 박정우 감독은 "그렇다고 해서 이 시국이 '판도라'에게 호재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지 정권이나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 그는 "영화는 영화의 힘으로만 나아갔으면 하는 게 감독으로서의 바람"이라며 '판도라'가 시국에 의해 핍박당한 영화로 비치고, 관객들의 '의리 관람'을 조장하는 등의 상황은 원치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가 이처럼 자신 있게 '영화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여러 안전장치 덕분이라고. 박정우 감독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원전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기에 상업 영화라는 틀을 택했다"고 말했다.

"큰돈을 들인 상업 영화니까 수익의 안정성, 관객 수를 확보해야 했죠. '또 뻔한 재난 영화네'라고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시나리오 단계부터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틀을 따라가며 공감 코드를 더했어요. 형식적인 실험을 하거나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작가로서의 욕심이죠. 팀 전체를 이끄는 감독으로서는 '직무유기' 같더라고요."

때문에 더욱 스토리에 공을 들였다는 박정우 감독이다. "일찍이 한국 영화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높은 진폭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는 그는 "실제로 원전 사고가 벌어진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모든 것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다른 재난 영화처럼 남일처럼 보기 힘든 영화이기에 더욱 논리적인 시나리오를 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방사능 피폭을 당한 환자들, 무정부 사태나 다름없는 혼돈 속에서 아수라장이 된 전국의 모습은 관객의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를 위해 그는 면밀한 자료조사와 필리핀 원전 답사 등을 통해 용어, 피폭 수치 등을 모두 실제에 근거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촬영 역시 철저히 계산된 그림대로 진행됐다고. 현장에서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사실적으로,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실제와 똑같은 재난 상황을 구현하려 했고, 미술팀은 원전 등 거대한 세트를 직접 건설해 부수는 등 모든 공간을 직접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더욱 직접적이고 실감 나게 다가오는 영화 속 재난 현장은 공포의 연속이다.

이처럼 철저한 자료 조사와 촬영, 기나긴 편집 끝에 개봉이 눈앞인데, 박정우 감독은 현 시국과 시나리오 속 대한민국과 닮아가는 모습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같은 일이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각종 가능성을 산정해 시나리오를 썼지만 나라는 혼란에 휩싸였고, 경주 지진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여진에도 불구하고 세워진 원전들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활성 단층 위에 세워진 낡은 콘크리트 원전은 돌아가고,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원전 폐쇄를 결정해도 이를 이행하는데 10년의 세월이 걸린다. 영화 속 재난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욱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판도라'의 흥행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원전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키우는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속 삭제된 대통령의 대사 중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지금 기름이 떨어지는 비행기를 타고 계속 날고 있다. 착륭장도 없이 날고 있는데 승객들에게 '탈이 없으니 계속 비행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부터 논의가 이뤄져야 다음 세대가 본격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어요. '판도라'가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조혜인 기자]

박정우 감독 |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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