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대통령의 국정농단 징벌할지 공멸할지 선택의 순간"

2016. 12. 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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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명림
“촛불 6주동안 국민들 진화
하야·탄핵, 구속·처벌까지
대통령 여당 혼쭐나야 교정될 것
박 대통령 용서받는 길은
즉시 청와대에서 나오는 것뿐
경호·의전 외 모든 권한 중단돼야
탄핵부결 땐 새누리당이 독박
야 대선주자들 대선전략 매몰땐
대선도 상황관리도 실패”

최태욱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조건부 퇴진한다니 분노 치솟아
탄핵 헌재 심리 넉달은 걸려
황교안 대행체제면 불행
야, 새 총리 지명압력 넣어야
야당, 대선셈법 달라 단일대오 어려움
탄핵 부결 대비 전략도 짜야
권력구조 개헌 필요하지만
위기모면 꼼수 돼선 안돼”

박명림(오른쪽) 연세대 교수와 최태욱 한림대 교수가 4일 오전 서울 마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 사람은 광화문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축제의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박명림 교수(연세대·정치학)는 “내가 여기(경찰) 있지 않았으면 저기(시위대) 가 있을 텐데”라는 전경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최태욱 교수(한림대·정치학)는 “촛불의 에너지를 정치혁신으로 이끌자”는 시민의 발언에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특별검사 수사, 국정조사 청문회, 그리고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까지. 대한민국 공동체의 운명을 가를 5일간의 숨가쁜 정치일정을 앞두고, 두 사람이 만났다. 탄핵 국면을 관통하고 있는 정치권이 어떤 전략과 설계도를 준비하고 제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3시간 가까이 뜨거운 대화가 오갔다. 대담은 4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퇴진’을 처음으로 입밖에 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는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야하라’는 구호는 ‘즉각 퇴진’으로 바뀌었고, ‘대통령 구속·체포’란 구호까지 서슴없이 터져나왔다. 국민들은 여전히 꿈쩍 않는데, 정치권은 탄핵대오에 균열을 일으키며 흔들렸다.

최태욱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잘못 없다고 버티는 데 대해 굉장히 화가 난 것 같다. 싹싹 빌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이렇게 계속 잘못 없다고 하니, 그럼 우리가 매주 이렇게 나오란 말이냐. 퇴진도 “국회가 방안 내놓으면 물러나겠다”는 ‘조건부 퇴진’을 걸고 나오니 분노가 더 치솟았다.

박명림 지난 6주 동안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국민들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하야, 퇴진을 요구하다가 탄핵으로 변했고, 이제는 구속, 처벌, 체포라는 단어까지 나온다. 국민들이 진화하고 있고 구호가 굉장히 발전하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촛불을 잠재울 수 없을 정도로 진실의 폭로가 계속되고 있고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의 정도가 점점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대통령이 일관되게 잘못을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지극히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사과에 그치고 있다는 거다. 셋째, 국민 분노가 점점 커져가는데도 대통령은 꼼수, 술수만 쓰고 있다. 총리를 제안했다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수사가 강도높게 전개되니까 검찰 조사를 안 받겠다고 했다. 차라리 탄핵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가 진짜 탄핵이 가결될 듯하니까 또 탄핵을 피하려고 한다.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과는 다른 차원에서 또 국민들을 완전히 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왜 저렇게 계속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떠나지 않는다.

최태욱 대통령의 태도에 일말의 합리성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하면, 결국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탄핵이 표결되면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하기 전인 1월말까지도 헌재 결정이 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건 너무 이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다 인정했음에도 헌재 결정까지 두달이 걸렸다. 판사들 얘기를 들어보니, 헌재 재판관들이 촛불 민심을 의식해 밤에 잠도 안 자고 집중심리를 한다고 해도 4개월은 걸리겠다고 하더라. 아무리 헌재가 ‘정치적 사법기관’이라 불리며 유연성을 발휘하더라도 추론으로만 판단할 순 없고 최소한 사실관계가 증명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계속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뇌물죄를 입증하기 어렵게 만든다면, 헌재 재판관들이 (최순실씨 등의) 형사재판 1심이라도 기다려보자, 이렇게 나올 수 있다. 헌재 재판관들이 일부러 결정일을 늦추려고 해서가 아니라 늦춰지는 게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박명림 대통령의 1~3차 담화에서 일관된 것은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럼에도 ‘나는 책임지지 않겠다’ 세가지다. 정치학에서 본다면 이는 ‘국왕 예외주의’, ‘왕족 예외주의’를 전형적으로 주장하는 거다. 국왕·왕족의 지위에서 보면 국가 전체를 마치 ‘물려받은 가산(家産)’처럼 간주하기 때문에 공(公)이 사(私)이고 사가 공이다. 국왕에게 ‘당신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개인과 왕족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자꾸 얘기해도 듣지 않으니까 결국 공화주의 혁명이 필요해졌다. 이 점을 대통령이 깨닫지 못하면 불행한 거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국민들로부터 굉장히 강도 높은 징치를 받기 전엔 교정이 안될 거라고 본다.

?처음엔 야당이 ‘질서있는 퇴진’을 외치다가 이젠 여당의 주장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도 ‘조기 퇴진’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태욱 박 대통령이 퇴진을 얘기한 건 나름대로 촛불 민심이 얻어낸 성과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박 대통령은 국회가 총리를 합의해 오라고 한다. 새누리당 친박이 얘기하는 ‘질서있는 퇴진’과 다른 의미에서, 야당이 추천한 총리가 과도내각을 구성해 국정을 수습하도록 하는 게 ‘질서있는 퇴진’의 요체라고 본다. 또 그게 ‘질서있는 이행’이기도 하다. 9일 탄핵안이 가결되든 부결되든 야당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급선무로 총리를 임명하도록 하는 게 시민들에게도 유리하고 정치발전에 더 기여할 수 있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면, 또다른 불행이 시작될 것이다. 경제·외교·안보 모두 살벌한 상황인데 황교안 대행체제에 계속 국정을 맡겨놔도 될까? 탄핵이 가결돼서 헌재가 6개월 이내에 결론을 낸다고 해도 선거까지는 8개월이나 남았다. 황 총리가 잘못하면 또 탄핵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너무 소극적이다. 야당은 탄핵은 탄핵대로 추진하되, 빨리 총리 후보를 합의해서 지명하라고 압력을 넣어야 한다. 콘클라베식(교황 선출방식)이든, 원로5인회의든 맡겨서 후임 총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질서있는 퇴진은 박 대통령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

박명림 지금 질서있는 퇴진이 여당의 주장으로 바뀐 거 자체가, 국민들의 요구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당이 처음에 질서있는 퇴진을 요구할 때 대통령이 2선 후퇴와 중립내각을 받아들였더라면, 그 당시엔 국민들 요구가 이렇게까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농단의 실상도 이처럼 전면적으로 폭로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이를 간과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는 지킨 채 임기를 보장받고 총리 역할을 약간 확대하는 정도로 넘어가려고 해서 질서있는 퇴진이 어려워진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아비뇽의 유폐’처럼 ‘청와대 유폐’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질서있는 퇴진의 길은 남아있다고 본다. 지금 국민들은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4월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나는 퇴진 시기를 조정하자면 임기가 4년이 되는 2월말로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에 앞서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된 과도내각 총리에게 사실상의 국정통할권을 넘기고 대통령은 직무정지에 준하는, 2선 후퇴보다 강력한 국정 후퇴를 해야 한다. 또 반드시 필요한 상징적 조처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주기 위해 지금 즉시 청와대에서 나와야 한다. 경호·의전을 제외하곤 모든 대통령 권한이 중단돼야 한다. 국민에게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내년 2월25일까지 대통령직은 유지하더라도, 지금 바로 청와대에서 스스로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이는 거다. 현재 청와대에 유폐된 대통령은 육체만 청와대에 있는 것이다. 육체를 자유롭게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박 대통령에게도 낫다. 그게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탄핵은 부결 가능성이 있어도 계속 진행해야 하나?

최태욱 탄핵은 흔들림없이 가야 한다. 국민의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한사람 한사람 설득하고 배려해야 한다. 탄핵 추진이 오히려 이처럼 질서있는 퇴진의 협상력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부결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심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팩트’로 인정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박명림 정치학자가 아니라 이성적 시민의 입장으로 봐도 국법질서의 최종 수호자가 이렇게까지 국법을 농단하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소추 절차는 진행돼야 한다. 탄핵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박 대통령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도 드러내고, 동시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확인을 해야 한다. 또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묻는 단계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국민들의 분노가 절정인 상황에서 탄핵이 부결될 경우엔, 박 대통령 개인의 진퇴 문제를 떠나 새누리당 전체로 국민들의 분노가 옮겨갈 것이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국정농단, 헌법유린을 징벌하고 국정을 수습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공멸하며 국가를 점점 수렁에 빠뜨릴 것인지, 국민과 역사 앞에 심판받는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 야당이 단일한 대오를 유지하지 못하는 등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최태욱 결국 야당들이 대선 셈법이 다르니까 그런 거 같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계속 1등을 유지하고 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문 전 대표에게 좀 밀린 상태이니, 친문 세력 입장에선 빨리 진행되는 게 좋을 거다. 빠른 탄핵과 조기 퇴진, 조기 대선을 해야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 시기와 과정, 질서있는 퇴진 방법도 보는 게 다른 거 같다. 빨리 대선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선 과도정부가 상당기간 존재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도정부 기간 동안 정치지형이 변화할 수도 있고 새로운 주자가 탄생하는 등 돌발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지지율이 1·2위가 아니라서 정치적 기반을 더 갖춰야 하거나 연대가 필요한 국민의당 주류의 입장에선 급하게 가는 게 불리하다. 새누리당 비박계도 상당한 시간이 보장되는 질서있는 퇴진이 더 유리할 거다. 또 일부 야당 세력 중엔, 대선 자체보다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천정배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선과 관계없이 이참에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대선 주자감은 아닐 수 있지만 이번 기회를 체제 변화의 계기로 본다. 이 때문에 과도정부의 영향력, 선거 시기 등을 놓고 혼선이 오는 것 같다.

박명림 이번 사건은 87년 체제하에서 초유의 사태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정한 시행착오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소 시차는 있지만 크게 보면 야권은 광장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다. 시민사회와 의회(야당)의 거리는 지금 상당히 좁혀져 있다. 야권이 이견을 보이는 건 세가지 차원이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일단, 박 대통령의 실정을 과연 어떤 방법과 절차를 통해 징벌하고 극복할 것인가. 두번째는 차기 정부 구성과 대선 문제다. 모든 언론은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건 역설적인 건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과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분리하고 민심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수록, 민심도 얻고 대선 승리 가능성도 더 보이는 거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지금 상황에 대처하려다 보면 대선도 실패하고 상황 관리에도 실패한다. 세번째는 87년 이래 보수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최저점인 이 취약한 시기에, 박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넘어서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정당·재벌·노동·복지·교육·문화·사법 등 모든 공동체를 농단한 것에 주목해 개헌을 포함한 체제개편까지 바라보는 시각이다. 개혁적인 대선 주자들이라면 국정농단 사태에 엄정하게 대응하고 대선과 거리를 두라는 광장의 압력을 보다 더 유념하면서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세번째 문제인 대안 모색 대목은 가장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제3지대론이나 비패권연대 같은 논의는, 힘이 분명히 광장으로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이 힘의 실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유신 때 이철승 신민당 당수의 중도통합론, 전두환체제 말기의 ‘이민우 구상’, 노무현 대선 후보 시절 후보단일화론 등은 정치적 이합집산과 봉합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였다. 비록 내가 오래전부터 87년 체제 극복을 얘기해왔지만, 지금 이 국면에서 개헌을 얘기하는 사람들, 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고 광장의 분노가 불타오르니 개헌을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같은 사람들, 이런 세력은 분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광장에서 분출된 에너지를 헌정질서의 변화 또는 새로운 정치제도의 틀로 어떻게 전환시켜야 할까?

최태욱 87년 항쟁 때는 국민들의 요구가 대통령 직선제로 간단하게 귀결됐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복잡하다. 국민들도 박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고 해서 일단락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정치 교체를 위해선 지금 이 시기에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개헌을 논의할 때 권력구조 개편만 얘기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정치체제는 선거제도·정당체계·권력구조가 맞물리는 것이다. 지금 개헌론에선 권력구조만 부각되는데, 이는 새누리당이 국면을 전환시켜 ‘면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선 욕심이 있지만 선거에서 못 이길 거 같으니까 권력에 참여하기 위해 개헌을 꺼내든 것이다. 지금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일지라도 정당이 바로 서 있으면 이 지경까진 안 갔을 거다. 만약에 지역 기반의 정당 체계를 그대로 두고 권력구조만 의원내각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꾼다면, 영남당·호남당·충청당이 국회 의석에 비례한 힘을 바탕으로 수상 뽑고 장관 뽑는 것을 ‘딜’하게 되는 거다. 지역 감정을 활용하면 이런 지역 정당은 금세 만들어진다. 우리나라가 경제민주화·복지국가가 안 되는 건 소상공인·비정규직·청년·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유력 정당이 없기 때문인데, 지역정당 보스끼리 권력 나눠먹고, 공천으로 줄세우기하면 명백히 개악이다. 정당체계를 바로 세우려면 지금과 같은 소선거구 1위 대표제로는 안된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같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박명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모두 선거권이 18살부터 주어지는데 우리나라만 19살이다. 우리도 17살이나 18살로 낮춰야 한다. 이번에 광화문에 나가보니, 광장의 자유발언 때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명연설은 다 학생들이 하더라. 사태도 정확히 보고 명민하며 애국심·공공의식이 있었다. 또 개헌 시기는 대선 전인 20대 국회 전반기, 또는 대선 이후 20대 국회 후반기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시기에 개헌해야 하느냐는 국민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대선 전에 개헌하는 것은, 보수가 가장 취약한 시기에 개혁세력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바로 대선 출마할 사람들이 자신의 당락과 집권 후 권한 여부를 놓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줄다리기할 가능성이 있어 어렵다. 또 대선 후 개헌하는 것의 문제점은 새로운 세력이 집권한 이후 추진해야 할 복지·노동·교육·실업 분야의 사회개혁 이슈와 헌법 개정 논의가 중첩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회경제적 개혁이 이념·체제 논쟁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혁 이슈와 개헌 두가지를 분리하는 게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내가 광장에서 100명 넘게 인터뷰해봤더니, 이들 모두 개헌에 대단히 부정적이더라.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개헌을 하냐는 것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의 탄핵과 징벌에 집중하고 이후 개혁 과제들을 모아서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나는 장기적으로는 국회의원 숫자와 동수로 시민대표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은 1503개 단체가 가입해있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을 포함해 시민사회 각 분야에서 토론·숙의가 대폭발하는 이 시기를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여성·노동·인권·환경·농민·지역·교육·사법 등 중요한 개혁과제를 나누고 그 분야의 시민단체·전문가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토론해서 시민대표들을 뽑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 시민대표들이 국회의원과 동수로 헌법개혁특위에 참여하면 어떨까. 입법 조문권은 의회가 갖지만 조문화 직전 단계까지의 입법권은 주권자도 얼마든지 제안할 수 있다.

최태욱 시민들에 의한 정치개혁 사례는 네덜란드·캐나다 주정부 차원에서 네댓번씩 실험한 것이 있다. 가령 나이·지역·성별 반영해서 무작위로 300명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의원’으로 뽑아 매주 모이게 한다. 시민의회는 6개월가량 지속됐는데 첫 2개월은 시민의원들에게 선거제도와 관련한 학습을 시킨다. 중간 2개월은 주요 사회경제집단으로부터 정치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하게 한다. 나머지 2개월은 시민의원들끼리 토론을 하게 한다. 네덜란드에선 이 토론을 생중계까지 하더라. 그런데 이 과정에는 이들 300명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종 매체에 자기네 돈 들여 의견 광고도 싣는다. 당연히 선거제도 개혁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이 과정에서 온 사회가 공감대를 모으게 된다. 마지막엔 최종 토론 결과를 주의회에 넘기게 된다. 이런 방식을 차용해, 과도정부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의회를 만들어 이걸로 초안을 만든 뒤 대선 주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대선 주자들이 이 초안을 중심으로 보완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내용의 공약을 만들어 제시하면 선거제도 개혁을 이슈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박명림 우리가 앞으로 꼭 경계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덧붙이고 싶다. 지금은 헌법 대 반헌법, 정의 대 불의, 공공 대 사익의 구도로 가지만, 보수진영은 어떻게든 이 구도를 보수-진보, 종북-반북의 균열 구도로 재정렬하면서 보수 진영의 재생·회복을 통해 이 수렁을 빠져나가려고 할 거다. ‘광화문정신’은 유권자가 주권자로, 개인이 시민으로 거듭난 계기임이 확실하다. 이 의제를 놓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진행·정리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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