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린' 건드린 트럼프 외교

워싱턴 | 박영환·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2016. 12. 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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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축하 전화도 못 받나”…단교 37년 만에 대만 총통과 통화
ㆍ미 “하나의 중국 불변” 진화…중 “원칙 변화 반대” 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가 단교 37년 만에 대만 총통과 통화한 이후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외정책 경험이 없는 데다 즉흥적 방식이 ‘외교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전부터 미국의 대외관계는 곳곳에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권인수위원회는 2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통화해 긴밀한 경제·정치·안보적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도 트위터를 통해 “대만 총통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부도 3일 성명에서 “양측이 국내 경기부양을 촉진하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대만 언론들은 트럼프가 중국이 ‘대만지역 지도자’라고 부르는 차이 총통을 ‘대만 총통’이라고 지칭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봉쇄로 국제무대에서 고립된 차이 총통으로선 이번 통화가 미·중 간의 빈틈을 노려 활로를 모색하려는 승부수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당선자인 트럼프가 미국 정상 신분으로 대만 총통과 통화한 것은 1979년 미국과 대만 간 수교가 끊어진 이후 37년 만이다.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 후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다. 7년 후 지미 카터 정부는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대만과의 단교했다. 동시에 그해 4월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대만에 무기 수출과 안보·경제지원을 계속해 왔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묵인하는 등 3국은 불안하고 모호한 삼각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만큼 트럼프의 통화는 이례적이고 나아가 3국의 역학구도를 깰 수 있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환영했다. 톰 코튼 상원의원은 “중국 땅에서 유일한 민주주의(대만)에 대한 우리의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통화가 얼마나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트럼프는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트위터에서 “미국이 대만에 수십억달러어치 군사 장비는 팔면서 나는 축하 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즉흥적인 통화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트럼프 인수위에 자문하고 있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안보부보좌관 스테판 예이츠는 “트럼프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존 헌즈맨은 뉴욕타임스에 “사업가인 트럼프는 관계에서 지렛대를 찾는 데 익숙한데 대만이 (미·중관계에서) 유용한 지렛대가 될 거라고 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외교적 파장보다는 사업적 이해를 우선시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두 사람의 통화는 대만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군용 장비 판매를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양국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도 엄중한 항의를 표하고 의미를 축소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3일 “대만이 일으킨 작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이미 형성된 ‘하나의 중국’ 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통화 논란은 트럼프 외교가 가져올 혼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복잡하고 민감한 외교를 다룰 규율과 지식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번 사례는 이런 관점을 증명해줬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 중 상당수를 뒤집을 태세다. 대만 문제뿐 아니라 미·중 ‘빅2’ 간의 통상마찰 등 갈등은 세계적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란 핵합의 파기,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 등도 예상된 진로다.

<워싱턴 | 박영환·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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