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오디세이]성찰이 필요한 '생명공학의 질주'

김훈기 | 홍익대 교양과 교수 2016. 12. 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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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엇을 상상해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10년 전부터 세계 생명공학계에서 줄곧 들려온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생명공학 기법이 개발되고, 이를 적용한 실험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작업이 그 중심에 있다. 변형의 대상에 농산물과 가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작은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출범한 합성생물학 분야였다. 말 그대로 생명체를 합성하겠다는, 일반인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목표를 내세운 공학자들이 등장했다. 생명체의 기본 특성만을 갖추고 작동하는 무언가를 합성하려고 했다. 먹고 살 수 있는 대사 능력, 자손을 낳는 생식 능력, 그리고 변화되는 환경에 버티는 적응 능력 등을 갖춘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략 살아 움직이기만 한다면 여기에 인간이 원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갖가지 유전자를 넣으려는 의도였다. 가령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분해하는 동시에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를 합성하는 ‘미생물 공장’을 만들 수 있다. 많은 합성생물학자들은 이 흐름을 현실에서 막는 것은 오로지 인간 상상력의 한계일 뿐이라며 흥분했다.

2010년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 연구진은 미생물의 유전자 전체를 실험실에서 짜맞추고 이를 다른 미생물의 유전체와 바꿔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냈다. 이미 알려진 미생물의 유전체를 모방한 것이기에 진정한 합성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인간이 원하는 생명체를 마음대로 만들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3월 벤터 연구진이 이번에는 ‘최소 유전체’를 갖춘 미생물을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엔진, 기어, 브레이크, 핸들 등 운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춘 셈이다. 자동차에 추가로 들어갈 고급 부품에 해당하는 유전자의 장착 소식이 곧 들려올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은 인간이 합성했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좀처럼 느낌이 다가오지 않는다. 음식 재료인 농산물, 이보다는 식량이자 인류의 동반자인 가축의 유전자가 변형되면 좀 더 생생하게 실감이 난다. 21세기 생명공학계 최고의 기법으로 불리는 ‘유전체교정(편집)기술’이 발 빠르게 이를 실현하고 있다. 외래 유전자를 집어넣는 기존의 기술에 비해 유전자변형의 정확도는 매우 높아졌고, 부작용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이론대로라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머리에 뿔이 있고 날개가 달린 말처럼 희한한 동물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연구자들은 주로 지구에서 이미 발견된 돌연변이 형질을 유전체편집기술로 실현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상에 선보인 ‘뿔 없는 소’나 ‘근육이 강화된 개’, 또는 ‘털이 길어진 캐시미어 산양’ 등이 대표 사례이다. 원래는 우연한 돌연변이로 인해 또래 집단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개체들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자연의 우연을 인위적 필연으로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겉으로 보든 유전자를 검사해보든 자연산 변이체와 실험실산 변형체가 구분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최근 영국 너필드 생명윤리위원회는 유전체편집기술이 야기할 사회적, 제도적, 윤리적 문제를 정리해 발표했다. 기술의 적용이 가능한 여러 분야 가운데 시장에 막 나오고 있는 농산물과 가축에 우선적인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가 눈에 띈다.

가령 농산물에 기존과 달리 외래 유전자를 넣지 않았다 해서 무조건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것일까. 유전체편집기술로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만든 과일과 채소에 대해 어떤 안전성 검사가 필요할까. 생태계에는 별문제가 없을까. 연구자는 물론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따져보며 정리해야 할 사안이다.

가축에 대한 연구 경향을 보면 인간 중심의 사고가 얼마나 철저히 반영되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닭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암평아리만을 낳도록 유전자를 변형하는 사례가 그렇다. 소의 뿔 때문에 생기는 농장주의 손실을 없애려고 아예 뿔이 자라지 않게 변형했다는데, 향후 필요하다면 어떤 부위든 제거하려 하지 않을까. 과거보다 싸게 구매한 고급 캐시미어 의류가 유전자변형 산양의 털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어떨까.

최근에는 합성생물학과 유전체편집기술이 합쳐지고 있다. 연구자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모두 사회에 수용될 수는 없다. 상상력의 질주를 견제하는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김훈기 |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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