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리에 있는 게 더 혼란""4월 퇴진 어떻게 믿나"

입력 2016. 12. 4. 19:46 수정 2016. 12. 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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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뷰] 광장에서 만난 시민 47명

6주째 이어진 촛불집회인데도 ‘처음 나왔다’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와 탄핵에 대한 새누리당 ‘비박계’의 입장번복은 묵묵히 사태를 지켜보던 ‘잠재적 시위자’들을 대거 광장으로 밀어냈다. 매주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정치권 덕에 광장은 새로운 용광로로 거듭 재탄생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전국 각지의 용광로에서 만난 47명은 ‘4월 퇴진론’을 꼼수로 규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원하고 있었다.
“나라가 걱정된다, 빨리 내려와 달라” 이송연(35·회사원)씨는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나 “박 대통령은 최순실 지시가 없어서 못 내려오는 건가. 이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퇴진뿐이다. 내려오는 게 국정 안정의 첫걸음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 시위에 직장 동료와 함께 온 이송연씨(왼쪽). 사진 고한솔 기자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이씨처럼 ‘나라를 걱정’했다. 최정식(47)씨는 “나라가 국내외적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정치적인 것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위험하다. 내년에 경제적으로 안 좋아질 텐데 이런 정국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해결 안 되면 이민 가자는 얘기까지 아내와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동(29·대학생)씨도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즉각 탄핵해야 한다. 국정 공백을 봉합하고 이 사태가 마무리되면 좋겠다. 미국 대통령 교체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신준철(34)씨는 “내년에 경제위기 올 수도 있다는데, 언제까지 국정 공백이어야 하나. 하루라도 빨리 새 정권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경(39·대구)씨는 “어차피 돌아가지 않는 정부, 빨리 정리하고 국정 정상화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 끄는 게 더 혼란스럽다”고 우려했다.

지난 3일 대학생 이규동씨가 박근혜 대통령 ‘즉각 탄핵’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고한솔 기자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회복할 수 없는 신뢰도 타격을 입은 듯했다. 많은 시민이 ‘4월 퇴진론’을 거부하는 이유로 ‘신뢰 부족’을 꼽았다. 이누리(25)씨는 “검찰 조사 응하겠다던 말도 안 지키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장경애(46)씨도 “검찰 조사 받는다고 했는데 약속 안 지켰다. 4월이 왔는데 약속 안 지키면 어떡하냐. 그때 가서 또 촛불 들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박현덕(52)씨도 “혹시나 합의했다 치더라도 4월에 퇴진 안 할 것이다. 만만한 반공 이슈로 시간 끌다가 두세달 지내면 어차피 임기 만료”라고 꼬집었다.

3일 신준철씨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 미온적인 정치인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 고한솔 기자

3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선 ‘그래도 새누리당을 믿었다’는 시민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서아무개(52·주부)씨는 “새누리당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비박계’는 그래도 국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기들 앞길만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은 맘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현덕(52)씨도 “김무성 의원을 믿었다. 그런데 실망이 크다. 자기 입으로 탄핵한다고 했는데 약속을 안 지킨다. 어떻게 보면 의리라도 있는 친박이 낫다 싶다. 김무성 등 비박계는 꽃놀이패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 나쁜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3일 이누리씨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 고한솔 기자

탄핵은 국민 믿고 하라 많은 시민이 ‘부결돼도 새누리당 책임이니 국민을 믿고 탄핵안 표결을 밀어붙이라’고 주문했다. 신준철(34)씨는 “정치인들은 빨리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라. 결과는 국민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중(50)씨도 “부결된다면 더 큰 촛불이 일어날 것이다. 정치권이 미리 걱정하지 마라. 부결 책임은 새누리당이 진다. 견디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경애(46)씨도 “부결되더라도 발의는 해야 한다. 부결되면 모든 화살은 새누리당에 간다. 야당은 두려워할 게 없다. 부결되면 비박계는 은퇴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홍성범(42)씨는 “박사모 빼고 우리 국민이 모두 한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아무개(32·회사원)씨도 “지금 부결이냐, 가결이냐를 고민하는 건 정치권이 고민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자세도 아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부결되면 부결 세력 밝혀내 응징하면 된다. 뭘 걱정하냐?”고 말했다.

탄핵안 표결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정식(47)씨는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며 “모든 것을 해보고 그다음에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과정 자체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만약 탄핵 안 된다고 해도 안 되는 이유를 정확히 규명하고 다시 시도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일 부인과 함께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새누리당 규탄 집회에 참석한 최정식씨(오른쪽). 사진 고한솔 기자

백아무개(28)씨는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렸다는, 승리의 경험을 뺏겨서는 안 된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제일 위험하다. 한국이 헬조선이 된 게 무기력 때문 아니냐. 승리의 사례를 하나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 부결에 대한 부담감을 이해는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윤선경(45)씨는 “박지원 의원이 ‘탄핵은 통과되는 게 목적이라서 투표를 미뤘다’고 했는데 일리는 있다. 하지만 스스로 내려오지 않겠다는 범죄자를 내려오게 하는 것은 탄핵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탄핵을 성공시키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동(29·대학생)씨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탄핵 목소리 높였다가 말 바꾸는 국민의당과 비박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훈(44·제주시·제주장애인인권포럼 회원)씨는 “탄핵 부결 후유증이 야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탄핵보다는 퇴진하는 쪽으로 추진해야 한다. 즉각 퇴진을 전제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과제는 이것 ‘박근혜 대통령 이후’에 대해 시민들은 공정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내놨다. 이규동(29·대학생)씨는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친일, 독재, 재벌부정들을 이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에도 유야무야되면 한국엔 희망이 없다. ‘정유라는 부모 덕에 좋은 대학 가는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지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장경애(46)씨는 “빈부 간 격차가 심하다. 법인세를 올리고 최저임금을 올려서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남희(40·회사원)씨는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 일반 회사원이지만 투명하기만 하다면 세금 더 낼 의향이 있다. 조세제도 개혁해서 선진국 대열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철(34)씨는 “법이 만인한테 평등한 게 아니라 기득권에만 유리하다. 법질서를 바로 세우면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은(23·대학생)씨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정유라씨 부정 입학에 가장 분노했다”고 말했다. 장누리(25)씨도 “노력한 만큼 보답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20대 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예전에는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너무나 많더라”고 말했다.

개헌 필요성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현덕(52)씨는 “지금은 적기가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대통령 중심제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나선미(51·광주)씨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런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통치체제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씨는 “왼팔로 오른팔을 조사할 수 있나. 외국처럼 독립적인 정부 감시기능이 있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고, 권희돈(71·청주대 명예교수)씨는 “삼권분립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니까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도 필요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했다.

세월호에서 숨진 단원고 2학년 3반 최윤민양의 언니 최윤아씨는 ‘민주주의 회복’을 바랐다. “잃어버린 권리를 찾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된 이후 먹고사느라 바빠서, 경쟁하느라 바빠서, 수많은 핑계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정치에도 무관심해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국회가 시민의 권리를 빼앗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민주주의가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수진 고한솔 기자, 전국종합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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