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대목인데..문화계 빙하기

오신혜,김연주,김명환 입력 2016. 12. 4. 18:52 수정 2016. 12. 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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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대목에도 한산한 영화관(왼쪽)과 캐롤송 사라진 음반업계. [이승환 기자 / 한주형 기자]
문화계가 고대하던 '송년 대목'이 사라지고 있다. 연말 성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페라 공연장에선 예매 취소가 속출하고 있으며, 한파를 피해 극장으로 숨어들던 발길도 줄어들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 밀집한 대형 화랑은 주말이면 일찌감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캐럴 음반도 실종됐다. 연말 특수로 '김영란법' 파고를 넘어볼까 싶었던 기대감은 정국 불안 장기화와 촛불시위,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여파로 무참히 꺾이고 있다. "성수기가 빙하기가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우울한 수치와 함께 문화계를 뒤덮고 있다.

◆ 11월 영화 관객 전년대비 17% 감소
'연말 성수기' 옛말…김영란법·'최순실 정국'에 문화계 곳곳 속앓이

'건국 이래 최대 스캔들'. 정치 비리를 소재로 이달 말 개봉 예정인 영화 '마스터'는 당초 이렇게 정해둔 광고 카피를 급히 바꿨다. 웬만한 극보다 극적인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이라는 실제 정국에 묻힐 가능성이 제기된 탓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 달간 극장을 찾은 국내 관람객 수는 총 1268만명. 작년 11월의 1528만명, 재작년 11월의 1519만명에 비해 각각 17%가량 줄어든 수치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심각한 정국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게 업계 담당자들의 중론이다. 영화홍보마케팅사 퍼스트룩 관계자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준의 이슈에 국민의 관심이 온통 집중되면서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사그라드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배우 강동원이 주연한 영화 '가려진 시간'(지난달 16일 개봉)의 흥행 성적이 극장가 혹한기의 리트머스지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타파워는 물론 작품성 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은 이 작품은 3주간 관객 수 50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시기 개봉한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540만명), 올해 2월 개봉작 '검사외전'(970만명) 등과 딴판이다.

매 주말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자연히 극장을 찾는 발길도 줄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황수영 씨(31)는 "지난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가기 위해 당초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평일로 미뤘다"고 전했다.

암울한 시국에 피로감을 느낀 관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로 그나마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전형적 코미디물 '형'이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방학 시즌을 맞아 본격 성수기에 진입하는 12월까지 지금의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국내 영화 시장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연말 특수를 고대했던 공연계도 울상이다. 공연이 몰린 주말 많은 관객들이 집회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매주 토요일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 바로 앞 세종문화회관은 시국의 흐름을 직격타로 받았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같은 경우 단체 구매표를 포함해 취소표가 몰아쳐 손해가 억 단위인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4~27일 열린 오페라 '맥베드' 역시 토요일 공연 예매율이 가장 낮았다. 11월 26일 세종체임버홀에 예정됐던 공연은 대관기획사의 요청에 따라 12월로 날짜를 옮겼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중소극장들도 속앓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소극장 관계자는 "항상 만석인 토요일 공연의 관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공연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연말 특수를 기대하며 작품을 올렸는데 평일보다 주말 관객이 더 안 차 당황스럽다"며 "어려운 경제상황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는데, 무거운 시국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 시국가요에 밀려 사라진 캐럴
SM 등 3대 엔터사에서 발매예정 캐럴 달랑 2곡…공연관객은 20% 줄어

예년이었으면 상점가나 카페, 백화점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실종됐다고 할 정도로 대중문화계 역시 얼음장 상태에 빠져 있다.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소속 아티스트의 캐럴 발매가 전무한 실정이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크리스마스 앨범·팝 캐럴 컴필레이션 음반이 여러 장 나온 것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라 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불황이 이어진 데다가 대통령 퇴진이라는 시국과 맞물려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겁게 향유할 수 없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2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연예기획사에선 올 연말 캐럴 음원이나 음반을 내놓을 계획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SM만이 자사의 디지털 음원 공개 채널 SM스테이션을 통해 가수 '웬디'의 캐럴을 크리스마스 직전에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박봄과 이하이의 유닛 '봄&하이'로 캐럴 시장의 문을 두드린 YG는 최근 인기몰이를 하는 젝스키스의 컴백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YG 관계자는 "캐럴 음반보다는 겨울 분위기 시즌송 홍보에 힘을 싣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소속사 뮤지션 합동 캐럴을 내놓은 바 있는 JYP도 올해 캐럴은 1곡만 내놓을 예정이다. 소속 가수 백예린은 이날 0시 공식 SNS를 통해 크리스마스송 '러브유 온 크리스마스(Love you on Christmas)'를 7일 선보인다며 1차 티저이미지를 공개했다.

송년 시즌이 되면 가수는 물론 배우, 개그맨 등이 캐럴 음반을 준비했던 과거와는 큰 움직임이 없는 셈이다. 지난해만 해도 소녀시대의 핵심 유닛 태티서가 12월 초 '디어 산타(Dear Santa)'를 발매해 인기몰이를 했다. 캐럴 분위기로 시즌 영향이 큰 곡임에도 지난해 12월 멜론 월간차트 8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올해는 이런 시도조차 전무한 셈이다.

김연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보통 한 달 전부터 캐럴이 흘러나오며 축제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올해엔 '축제'의 역할을 시위가 가져갔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도 "공연계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시즌 공연의 관객이 20%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며 "캐럴 등이 먼저 연말 분위기를 잡아주는 선봉장 역할을 하는데 전혀 힘을 못 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길위에 버려지다' '걱정말아요, 그대' 같이 시국과 관련해 국민의 호응을 얻은 노래와 가수들이 인기의 수혜를 받는 경향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크리스마스용 앨범은 왕성히 발매되고 있다. R&B의 황제 알 켈리(R. Kelly),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 영화 '500일의 썸머'의 여주인공 주이 디샤넬이 속해 있는 쉬 & 힘(She & Him),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등이 캐럴 음반을 냈다.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음반까지 더하면 11월 한 달 동안 8개, 즉 주당 2개꼴로 음반이 공개됐다.

이에 대해 로엔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서구권에선 추수감사절 이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하기 때문에 11월부터 음반을 내는 경향이 강하다"며 "국내 뮤지션도 12월 초부터 캐럴 음악을 내놓는 편인데, 올해는 침체되다 보니 즐거운 분위기의 캐럴보다는 차분하거나 애잔한 겨울 시즌송을 선택해 내놓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오신혜 기자 / 김연주 기자 /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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