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만 촛불]분노는 뜨거웠고 구호는 싸늘했다

노도현·이유진·백승목 기자 입력 2016. 12. 4. 18:27 수정 2016. 12. 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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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포승줄에 쇠창살…“퇴진 꽃마차는 없다”

전국에서 232만명이 촛불을 든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은 횃불로 타올랐다. 비폭력 기조는 유지됐지만 극에 달한 시민들의 분노가 다양한 구호와 몸짓으로 표출됐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모인 시민들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본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와 불과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했다. 횃불을 든 300여명이 선두에 서고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박 대통령의 등신대를 든 시민들이 뒤따랐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9시30분까지 서울에 170만명, 전국적으로는 232만명이 운집했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 일대를 출발해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행진을 마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횃불은 춘천, 울산 등 지역에서도 타올랐다.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진다”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분노한 춘천 시민들은 김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횃불을 들었다. 광주 금남로와 울산 삼산동에는 주최 측이 제작한 가로 3m, 높이 2m 크기의 ‘쇠창살 감옥’이 등장했다. 광주 시민들은 감옥 앞에 박 대통령, 최순실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가면을 쓰고 포승줄에 묶인 이들이 차례로 등장하자 “당장 하옥하라”고 외쳤다. 울산 시민들은 박 대통령과 최씨 가면을 쓴 두 명이 쇠창살 안에서 발버둥치자 모래주머니를 던지면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충북 청주 충북도청 앞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허수아비 조형물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조형예술가 손영익씨(63)는 “민중을 무시하고 4%의 지지자들에게 기대는 대통령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부산 서면에서는 박 대통령을 잡겠다는 의미의 잠자리채인 ‘근혜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주시청에서는 한 도민이 ‘더러운 세상을 갈아치울 커피’라는 의미의 ‘더치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횃불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 일대를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정지윤기자

이날 시민들의 구호는 “박근혜는 퇴진하라”에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지금 당장 물러나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특정 시점을 정해 물러나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의미다. 시민들은 “박근혜에게 꽃마차는 없다” “꺼져라” “버티면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 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용수씨(77)는 “토요일마다 나오는데 입에 물집이 다 생겼다. 박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했더니 이제는 탄핵해야 할 판이다. 당장 끌어내야 한다. 국회가 못 끌어내리면 우리가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 꺼져주는 게 좋은 대통령” 등 손팻말 속 표현도 거칠어졌다. 경찰버스에는 ‘사악한 박근혜 정권. 국민들만 개고생’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참 나쁜 이 정권’ ‘범죄자 구속하고 국민을 보호하라’라고 쓴 종이가 여러 장 붙었다. 시민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이정현 대표의 얼굴이 그려진 공을 발로 차며 광장을 누볐다.

이유진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흉으로 김 전 실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남 거제에서 온 한 시민은 효자치안센터 앞 자유발언대에 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김기춘이 거제도 사람”이라며 “너무 창피해 삭발까지 했다. 김기춘은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로 박근혜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이명박이 부정선거로 박근혜를 당선시키면서 4대강 등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편하게 먹고살고 있다”며 “이명박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진무 기자
3일 광주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감옥’을 앞에 두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강현석 기자

이날 전국에서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고 시민들은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 지점까지 행진했다. 그런데도 경찰과 시민 사이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자 시민들은 “너희들이 죽였다” “복종은 끝났다” “우리가 심판한다”고 외치며 국화꽃을 던졌다.

<노도현·이유진·백승목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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