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만 촛불]분노는 뜨거웠고 구호는 싸늘했다
[경향신문] ㆍ포승줄에 쇠창살…“퇴진 꽃마차는 없다”
전국에서 232만명이 촛불을 든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은 횃불로 타올랐다. 비폭력 기조는 유지됐지만 극에 달한 시민들의 분노가 다양한 구호와 몸짓으로 표출됐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모인 시민들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본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와 불과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로 행진했다. 횃불을 든 300여명이 선두에 서고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박 대통령의 등신대를 든 시민들이 뒤따랐다.
횃불은 춘천, 울산 등 지역에서도 타올랐다.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다 꺼진다”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분노한 춘천 시민들은 김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횃불을 들었다. 광주 금남로와 울산 삼산동에는 주최 측이 제작한 가로 3m, 높이 2m 크기의 ‘쇠창살 감옥’이 등장했다. 광주 시민들은 감옥 앞에 박 대통령, 최순실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가면을 쓰고 포승줄에 묶인 이들이 차례로 등장하자 “당장 하옥하라”고 외쳤다. 울산 시민들은 박 대통령과 최씨 가면을 쓴 두 명이 쇠창살 안에서 발버둥치자 모래주머니를 던지면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충북 청주 충북도청 앞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허수아비 조형물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조형예술가 손영익씨(63)는 “민중을 무시하고 4%의 지지자들에게 기대는 대통령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부산 서면에서는 박 대통령을 잡겠다는 의미의 잠자리채인 ‘근혜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주시청에서는 한 도민이 ‘더러운 세상을 갈아치울 커피’라는 의미의 ‘더치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날 시민들의 구호는 “박근혜는 퇴진하라”에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지금 당장 물러나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특정 시점을 정해 물러나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의미다. 시민들은 “박근혜에게 꽃마차는 없다” “꺼져라” “버티면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 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용수씨(77)는 “토요일마다 나오는데 입에 물집이 다 생겼다. 박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했더니 이제는 탄핵해야 할 판이다. 당장 끌어내야 한다. 국회가 못 끌어내리면 우리가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 꺼져주는 게 좋은 대통령” 등 손팻말 속 표현도 거칠어졌다. 경찰버스에는 ‘사악한 박근혜 정권. 국민들만 개고생’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참 나쁜 이 정권’ ‘범죄자 구속하고 국민을 보호하라’라고 쓴 종이가 여러 장 붙었다. 시민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이정현 대표의 얼굴이 그려진 공을 발로 차며 광장을 누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흉으로 김 전 실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남 거제에서 온 한 시민은 효자치안센터 앞 자유발언대에 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김기춘이 거제도 사람”이라며 “너무 창피해 삭발까지 했다. 김기춘은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로 박근혜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이명박이 부정선거로 박근혜를 당선시키면서 4대강 등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편하게 먹고살고 있다”며 “이명박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전국에서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고 시민들은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00m 앞 지점까지 행진했다. 그런데도 경찰과 시민 사이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자 시민들은 “너희들이 죽였다” “복종은 끝났다” “우리가 심판한다”고 외치며 국화꽃을 던졌다.
<노도현·이유진·백승목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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