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 4년이 지나자 픽션은 논픽션이 되었다

2016. 12. 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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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0℃]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 개봉까지

한국 최초의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베일을 벗는다. ‘탈핵’ 메시지를 담아 150억원을 들여 만든 <판도라>는 한때 외압으로 개봉이 미뤄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근혜 정권 문화검열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판도라>의 숨은 제작기부터, 7일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영화 내용, 앞으로의 전망까지 두루 살펴본다.

‘변호인’ 배급 뒤 세무조사 받은 ‘뉴’
대표 고집으로 우여곡절 끝에 투자
“현 정부 말기에나 개봉” 예상 깨고
최순실 게이트덕 상영관 확보 가능

폭발 골든타임 놓친 무능한 대통령
대책보다 통제 몰입한 정부 ‘복제판’
“전형적 재난영화 신파” 비난있지만
“울고 싶은 시대속 공감대 형성될 것”

■ 제작에서 개봉까지 <판도라>는 2014년 투자사 3곳을 거쳐 하필 영화 <변호인> 배급 이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던 회사 뉴로 넘어갔다. 전체 직원 투표를 거쳐 제작 여부를 결정하게 됐는데 이때도 찬반이 반씩 갈렸지만 “영화 밥을 계속 먹을 거면 이런 영화를 피할 수 있겠느냐”는 김우택 대표의 고집으로 투자가 성사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기금이 출자된 모태펀드 투자가 철회되면서 영화의 운명도 다시 깜깜해졌다. 박정우 감독은 “2015년 3월 영화 촬영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는데 왁자하기는커녕 숙연한 분위기였다. 제작사 대표가 덜덜 떨면서 축문을 읽었다”고 회상한다.

투자부터 캐스팅, 장소까지 거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한 원전 마을을 모델로 한 영화는 결국 강원도 고성에서 7월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 가능성은 여전히 깜깜했다. 모두가 정권 말기에나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영화의 개봉을 앞당긴 사건은 9월 경주 지진이었고, 대형 영화들이 찾아오는 12월 개봉관을 늘려준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 현실이 BGM이 된 영화 영화 초반 10분 영화는 원전을 이고 사는 마을의 풍경을 그린다. 그동안 관객들은 실제로 겪었던 지진의 기운을 느끼며 불안해질 터이다.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 갑자기 자연재해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경험했던 그 막막함과 두려움이 영화의 배경음악이자 효과음이 된다.

가장 중요한 재난대책 사령탑인 청와대와 정부의 무능과 무심도 현실 복제판이다. 영화에서 대통령(김명민)과 총리(이경영)는 권력 다툼을 하거나 원전 비용을 따지느라 몇번의 골든타임을 놓친다. 원자로 건물의 이상을 알리는 백색경보,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소개령을 내려야 했던 시간이 모두 지나버린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 처음부터 붕괴된 원자로에서 도망갈 수 있는 곳, 퇴로란 존재하지도 않았음이 드러난다.

영화는 “인근 5개 마을 주민 1만7000명이 10㎞ 떨어진 대피소로 이동중이지만 왕복 2차선인 31번 국도가 유일한 대피로라서 심각한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거나 “우리나라는 인구 밀집지역에 원전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수준의 사고가 났을 때는 부산, 대구를 비롯해 150만명이 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되고, 남한 면적의 11%가 죽은 땅이 된다”는 등의 사실을 전하느라 숨이 찬데, 이는 제작진이 직접 현실 원전 주변의 도로와 인구 상황을 확인해 얻어낸 결과라고 한다.

대책보다 통제에 능한 정부는 퇴로를 마련할 능력이 없으며 우리 사회엔 재난에 대한 퇴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현실에 가까운 대목이다. <판도라> 시나리오가 쓰인 시기는 2012년. 당시만 해도 모든 이야기는 픽션이고 가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경주 지진에 이어 권력 심층부의 대지진까지 일어났다. <판도라> 제작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처음에 대통령을 압도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총리는 비서실장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외압’으로 총리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만약 처음 시나리오대로 찍기까지 했다면 영화는 좀더 현실에 가까운 복사판이 됐을 것이다.

■ 독특한 가족 재난영화 영화 전반부가 한국의 현실을 연상시키며 긴장감을 부여한다면, 후반부는 일본 후쿠시마의 기억을 되살리며 슬픔과 절망을 안긴다. 후쿠시마 원자로 사고 당시 복구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후쿠시마 전사’라고 불렀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본의 무사정신을 계승하는 이들로 추앙받았지만 나중에 이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곳으로 불려가야 했던 정황들이 폭로되기도 했다.

김영애가 연기하는 재혁의 어머니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신봉함으로써 젊은 세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세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제공

<판도라>는 현실과 판타지를 반씩 짊어진다. “높으신 분들이 저지른 일을 왜 우리가 수습해야 하냐고!” 원전노동자들은 절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돌아간다. 가족이 아직도 안전지대로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국적 수습 방식이, 한국식 신파가 시작된다. 주인공 재혁(김남길)의 어머니(김영애)는 “원전은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는 밥솥,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믿음을 신봉하고 있는 과거 세대를 상징한다. 그는 결국 아들과 손주를 위험에 빠트리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도 가족을 위해 위험한 일을 해낸다는 한국적 블록버스터의 줄거리는 반복되지만, 원전 사고에 어떤 낙관이 가능할 것인가. 영화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언제까지 살아 있었을까? <판도라>는 불길한 해피엔딩을 택한다.

■ ‘해운대’? ‘연평해전’? <익스트림 무비> 정민아 편집위원은 “탈핵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시의적절하게 개봉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택했다”면서도, 관객들의 정서, 시장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흥행 가능성은 밝다고 전망했다. 김형호 영화마켓 분석가도 “갈수록 성수기에 관객이 몰리는 경향과 그것이 신파성일지언정 울고 싶은 정황과 맞아떨어져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을 꼽으며 “600만~700만 관객은 모으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 관객은 재난 극복 영화를 좋아하지 재난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서 1000만까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사고난 원자로를 복구할 사람은 결국 노동자들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최후의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하는 <판도라> 속 복구 노동자들의 모습. 뉴 제공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원전 사고가 나면 도망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영화의 무게를 더한다. 뉴 제공

<해운대>는 최초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로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연평해전>은 보수층의 정파적 감성을 자극하며 600만 관객을 모았다. <판도라>는 과연 재난형과 이념형 어느 영화의 길을 갈까? 한순호 영화 마케터는 “신파라기보다는 재난영화 공식에 충실한 영화라고 본다. 게다가 12월 성수기 첫 주자라는 장점이 있다”며 재난영화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만약 이 영화를 이념형으로 보는 흐름이 형성된다면 그것은 다른 우파 쪽 영화와는 달리 일단 영화를 본 관객들의 깨달음과 자발적인 흐름 덕이라서 영화의 확장성을 부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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