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집 잃은 서민들, 이들이 트럼프 뽑았다

김환영 입력 2016. 12. 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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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노동자 가족, 소득 50% 집세 내
퇴거 면하기 위해 먹는 것도 줄여
집 문제 해결통한 '가난 해법' 제시
주택바우처 제공 대안으로 내세워
쫓겨난 사람들
매튜 데스몬드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540쪽, 2만5000원

프랑스 소설가·비평가 엑토르 말로(1830~1907)가 쓴 『집 없는 아이』(1878)의 원제는 ‘가족이 없는(Sans Famille)’이다. 한글판 제목이 원제보다 더 좋지는 않다 하더라도 일단 우리 정서에 팍팍 와 닿는다. 우리에게 집은 곧 가족이요 식구 아닌가. 최고의 설움은 집 없는 설움 아닐까.

『쫓겨난 사람들』은 저자가 가깝게 지낸 여덟 가정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집세를 못내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려낸다. 저자는 하버드대 사회학과 매튜 데스몬드 교수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한 연구를 위해 2008년, 2009년 밀워키 빈민가에서 살았다.

이동주택주차장(trailer park)에서 살 때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시청 직원이나 경찰이라는 의심을 샀다. 자신이 학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신이 쓴 책을 대출해 책 속지에 나오는 사진을 보여줬다. 사례 연구이지만 퇴거는 미국에서 전국적인 현상이다. 매년 퇴거 위험에 직면한 가구는 수백만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다. 하지만 미국에도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쫓겨난 사람들』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직업상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만. 퇴거 현장은 종종 폭력의 무대가 된다.
지겹도록 가난한 사람들이 끝없이 쫓겨나면서도 끝없이 살만한 월세 집을 찾아나서는 ‘가난의 풍경’을 저자는 현장으로 들어가 기록했다. [동녘]
방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문짝을 떼어내는 집주인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약물 중독, 장애, 정신질환, 낮은 교육 수준, 실업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헬지구(Earth is hell)”를 체험한다. 라마르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한달에 628달러를 번다. 집세는 550달러다. 하루에 2달러 19센트밖에 안 남는다. 의식주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빈곤층 세입자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식료품이나 전기는 포기해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의 버니 샌더스 돌풍, 도널드 트럼프 당선의 배경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 가족은 소득의 최소 50프로를 집세 내는 데 쓴다. 네 명 중 한 명은 집세 비율이 70프로까지 올라간다. 퇴거 명령은 젊은층과 노년층,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백인과 흑인을 따지지 않는다. 특히 흑인 여성이 가장 취약하다. 밀워키의 경우 흑인 여성의 20프로가 퇴거 경험이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집과 가난의 문제가 생각보다 밀접하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학계의 평가를 받았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집 문제 해결 없는 가난 문제 해결은 없다. 왜냐하면 퇴거는 가난의 한가지 현상이라기 보다는 가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한 번 퇴거 당하면 그 기록이 남는다. 퇴거 기록이 추가될 때마다 살 곳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아이가 있으면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자녀를 이유로 세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불법이다. 현실은 불법을 방치한다. 법원 기록 분석을 통해 데스몬드 교수가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유자녀 가정은 무자녀 가정보다 3배가량 더 빈번히 퇴거 판정을 받는다.

저자 데스몬드 교수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쫓겨난 사람들』을 쓰기 위해 10만 건의 퇴거 기록과 1000명의 집주인들을 설문 조사했다. 이 책은 찰스 라이트 밀스(1916~1962)가 말한 ‘사회학적 상상력’과 대중적인 글쓰기가 잘 배합했다. ‘소설처럼 읽힌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황성원은 ‘간신히’ 영문과를 졸업하고 학사편입해 지리학 학사·석사를 받았다. 그에게 번역은 ‘손노동’이다.

■임대주 '갑의 횡포' 막는 방법

「저자는 퇴거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퇴거에 노출된 취약계층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주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임대주 토빈은 131개의 트레일러를 빌려주고 매년 40만 달러를 번다. 사람 나름이지 모든 집주인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세입자와 임대주가 맺는 관계는 나쁘다. 정부의 방조 속에 양측 권력 관계가 일방적으로 임대주에게 유리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해결책으로 데스몬드 교수는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가정에 주택바우처를 제공하고 퇴거 대상자들에게 정부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돈이 드는 일이지만 미국은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모든 고통은 부끄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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