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앞 오는데 2년 8개월"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

김보영 2016. 12. 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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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 앞까지 나아간 일부 시민들이 행진허용 시간을 넘겼음에도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따금 시민과 경찰 사이에 언쟁이 오갔지만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그러자 다른 참가자들이 "경찰도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서 있는 시민"이라며 제지했다. 한 시민이 "추운 곳에서 고생하는 경찰에게 박수칩시다"라고 말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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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허용 시간 이후 자리지켜·경찰, 강제해산 시도 안 해
시민들 "경찰도 시민이다" 배려·박수도 보내
세월호 유가족 "2년 8개월 만에야 청와대 앞 왔다"
3일 오후 8시 30분쯤 청와대 외벽으로부터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민들이 “경찰들도 시민이다”·“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이데일리 고준혁 김보영 기자]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 앞까지 나아간 일부 시민들이 행진허용 시간을 넘겼음에도 철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따금 시민과 경찰 사이에 언쟁이 오갔지만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단원고 학생 250명의 얼굴이 새겨진 노란 망토를 입고 횃불을 든 채 자리를 지켰다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의 본 집회에 앞서 오후 4시부터 약 50만명의 시위대는 서울 효자동 치안센터 등 앞까지 사전행진을 진행했다. 법원이 청와대 100m 앞 행진을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가자 상당수는 집회 및 행진 허용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이 되자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 등 시민 1000명 가량은 이후에도 계속 머물렀다. 이들은 차벽을 뚫으려 하거나 경찰과의 충돌을 시도하지 않고 대부분 자리에 앉은 채 평화롭게 집회를 이어나갔다.

경찰 역시 산발적으로 해산 방송을 내보낼 뿐 강제적인 물리력 행사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한번만 만나달라고 그렇게 사정했는데도 100m앞까지 오는데 2년 8개월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세월호 진실 인양’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새누리당 해체하라”·“재벌들도 공범이다”·“박근혜는 퇴진하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가자는 경찰에게 거칠게 항의하거나 몸으로 밀치기도 했다. 그러자 다른 참가자들이 “경찰도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서 있는 시민”이라며 제지했다.

한 시민이 “추운 곳에서 고생하는 경찰에게 박수칩시다”라고 말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주최 측은 “밤 10시 50분까지 이곳에서 계속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청운동 일대에만 50개 중대 4000여명의 경비병력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3일 오후 8시쯤 청와대로부터 100m 앞인 서울 효자동 치안센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의 얼굴과 ‘왜 안 구했는지 알고 싶다!’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 망토를 몸에 두른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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