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고졸 부회장 조성진, 인생 바꾼 '도자기 불가마'

류정민 2016. 12. 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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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도전 후 40년 LG 인연..현장 중시 '꼼꼼 CEO', "LG브랜드 글로벌 1등 키울 것"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아버지는 이글거리는 가마와 피 말리는 씨름을 하셨다."

10대 막내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수백 시간 동안 공들여 구운 도자기를 주저 없이 망치로 깨부수는 장인(匠人)의 길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가업(家業)을 물려주려 한다. 막내아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글거리는 '도자기 불가마' 앞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까. 막내아들은 그러한 삶을 벗어나고자 했다.

타협점을 마련했다. 서울공고 요업과 진학.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도자기를 학문적으로 배워서 자신의 길을 뒤따르길 원했다. 하지만 막내아들은 용산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다. 아버지와의 약속과는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1년간 학교를 잘 다니는 듯 했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당장 불호령이 뒤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고향으로 내려와라." 아버지의 호통에 막내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불가마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LG전자 조성진 부회장


도자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한지, 제품 하나가 나오더라도 작은 흠결만 있으면 '와장창' 깨지는 신세가 된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제품의 완성도를 둘러싼 철학은 그 막내아들의 미래를 바꿔놓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 막내아들은 1일 LG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한 조성진이다. 중졸 도자기공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그는 글로벌 전자업체를 이끄는 CEO의 자리에 올랐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조성진, 하지만 오늘의 결과물을 만든 집념의 시간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그것이 바탕이 됐다.

1976년 9월 금성사(현 LG전자)에 고교 우수 장학생으로 입사했던 조성진 LG 부회장. 당시에는 선풍기와 밥솥이 이른바 대세 제품이었다. 당연히 그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어쩌면 선풍기 개발실을 선호하던 그때의 흐름과 역행했던 선택이 조성진 부회장의 인생을 바꾼 '묘수'가 됐는지도 모른다. 당시 세탁기 보급률은 0.1%도 안됐을 시기다. 지금은 모두가 세탁기로 빨래를 하지만 당시는 '빨래=손빨래'라는 개념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조성진 부회장은 세탁기가 언젠가는 대중화 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았다. 1976년부터 2012년 말까지 세탁기 연구에만 몰두했던 그의 모습을 보며 업계에서는 '세탁기 박사'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조성진 부회장은 당시 10여년 동안 150번이 넘게 일본을 드나들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최고 수준의 기술과 한국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연구에 나섰다. 회사에 침대와 주방시설을 마련해놓고 개발팀과 함께 밤샘 작업을 이어가며 기술 개발을 위해 힘을 쏟았다.

1998년 LG전자는 인버터 기술을 토대로 세계 최초로 세탁기에 상용화한 DD모터를 개발했다. 조성진 부회장은 DD모터 신화를 바탕으로 듀얼분사 스팀 드럼 세탁기 개발,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미니워시를 결합한 '트윈워시' 개발 등 세상을 놀라게 한 혁신 제품을 내놓으며 '세탁기 박사'의 명성을 증명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고졸 출신 최초의 사장, 최초의 부회장이라는 기록을 회사의 역사로 남겼다. 학벌이 경쟁력으로 통하는 한국사회, 고졸의 신분으로 대기업 CEO 자리에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LG 트윈타워


조성진 부회장 탄생은 LG그룹의 열린 경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개인의 부단한 노력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조성진 부회장은 2013년 HA(Home Appliance) 사업본부장으로 부임한 이후 '꼼꼼 CEO'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모든 사업의 중심은 제품이라는 확신을 지녔다. 좋은 제품을 내놓으려면 그만큼 많이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자신의 사업부서에서 내놓은 제품, 예를 들어 냉장고 등의 주요 제품을 일일이 분해하며 부품 하나하나를 쓰임새까지 확인하는 모습은 직원들에게 각인될만한 장면이었다.

조 부회장은 자택과 집무실에서 LG전자 신제품을 직접 테스트하면서 본인의 의견을 전달한다. 지난 4월에는 LG전자의 청소기 테스트를 위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 바닥의 카펫을 걷어내고 마룻바닥으로 바꾸기도 했다.

LG전자는 "물걸레 키트에 보조 걸레를 달아 바닥의 찌든 때를 닦아내는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에도 반영됐다"면서 "조 부회장이 직접 샘플까지 만들어 개발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이론과 실제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조성진 부회장은 "내 목표는 LG브랜드를 고객이 열망하는 글로벌 1등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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