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투견의 눈물

신지혜 입력 2016. 12.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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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 지난 8월 말 늦은 밤 충남 서산시의 폐창고에서 투견 도박 현장이 적발됐다. 창고안은 개들의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싸워라 싸워”, “이러다가 지겠네” 개들의 고통스러운 절규에 무관심한 채 자신이 베팅한 판돈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산경찰서는 도박장을 연 A(38)씨를 포함해 총 55명을 도박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개를 싸움에 붙여 돈 내기를 하는 ‘투견 도박’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지난 3월 충북 음성에서는 19명, 지난해 8월 경남 함안의 야산에서는 29명이 개싸움에 돈을 걸어 붙잡혔다.

투견 도박이 주로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알려지지 않은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투견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투견은 개와 개가 싸우는 경기를 의미하거나 싸움을 시키기 위해 기르는 개를 뜻한다. 과거에는 투견을 단순한 스포츠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돈이 오가는 도박의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경기의 룰은 간단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상처를 낸 개가 이긴다. 만약 큰 상처를 입고 꼬리를 내리거나 숨이 끊어지면 제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경기가 끝난다.

두 마리의 개들은 서로를 물어뜯고 짓밟아 어느 한 쪽이 이길 때까지 맹렬히 싸운다.

실제 투견 싸움에서 패배한 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거나 보신탕 집으로 팔려가게 된다. 인간의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 철저히 개가 이용당하는 것이다.

■ 투견 근절을 위해서 ‘법안 강화’ 필요

하지만 투견 행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투견도박이 적발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1천 만원 이하의 벌금만이 부과된다.

단속 기준도 허술하다. 단속될 당시 실제 링 안에서 싸우고 있던 동물의 주인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개 주인은 도박방조의 혐의만 가볍게 적용된다.

투견 도박을 개장하는 프로모터, 판돈을 관리하고 승패에 따라 나눠주는 수금원, 승패를 판단하는 심판 등으로 주도면밀하게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

특히 투견 도박 예비행위에 대한 법적인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이 심각하다. 투견 도박을 위해 개를 사육하는 것은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

투견으로 쓰이다 구조된 개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현행법상 다시 투견꾼 주인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학대행위자로부터 동물의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이종배 의원은 투견도박을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투견 목적으로 개를 키우는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동물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는 교육이나 조련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동물학대 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2천 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하는 개정안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투견 훈련 행위를 처벌하고 형량을 늘리는 개정안이 한차례 발의된 바 있지만 법안통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투견을 구경만 해도 징역형에 처한다. 하와이 주는 투견 도박으로 개를 다치게 하면 최대 징역 20년을 구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투견을 위해 태어난 개가 있다?

투견옹호자들은 투견이 태어나서부터 본능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들의 자발성에 의해 경기가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견 과정에서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 개들을 자극시키고, 투견 도박을 위해 품종전환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격력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멧돼지 우리에 넣어 살아남게 하거나 끊임없이 싸움을 붙이는 잔혹한 훈련까지 시킨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개는 무장이 잘 된 동물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어 함부로 싸우지 않는다”며 “투견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개의 이익과 상관없는 싸움을 시키는 잔인한 행위가 맞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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