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임상 실패, 아밀로이드 가설 무너지나

원호섭 입력 2016. 12. 3. 06: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말랑말랑과학-126]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릴리의 '솔라네주맙'이 임상 3상 시험에서 최종 실패했다. 일라이릴리의 주가는 폭락했다. 곧바로 '베타아밀로이드 가설'도 근거를 잃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일까.

 지난 11월 23일(현지시간) 일라이릴리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솔라네주맙의 의약품 승인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100여 명의 경미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라이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지난 30여 년간 약 3조원의 엄청난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곧바로 학계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 힘을 잃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솔라네주맙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약물이었다.

 지난 20년간 학계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을 두 가지 가설로 설명했다. 첫 번째가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다.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여 엉켜 붙으면서 인지능력이 저하돼 알츠하이머 치매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1906년 독일 신경의사였던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는 학계에 새로운 질병을 보고했다. 기억력 감퇴, 언어장애, 기억상실 등의 증상을 보였던 환자의 뇌 속에서 끈끈하게 엉켜 있는 단백질 덩어리를 발견한 것이다.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 신경세포에 축적되면서 단백질 덩어리인 '플라그'가 생성됐고, 여기서 발생한 독성이 뇌기능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뇌에 존재하는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이어왔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사람의 뇌 속에 누구나 갖고 있는데, 이것이 어떤 이유에서 뭉쳐질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가 나타났다. 하지만 플라그 덩어리가 발견돼도 치매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례도 보고됐다.

 솔라네주맙은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에 근거한 약물이다. 혈액과 뇌에서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항체인 솔라네주맙은 초기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보이면서 기대를 모았다. 뇌 속 플라그 형성을 억제하며 일부 치매 환자들에게서 인지기능이 개선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임상 결과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으로 출시하기에 적절한 통계적 결과물을 얻지 못한 것이다. 존 레클라이터 일라이릴리 CEO는 기자회견을 열고 "치료제를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아밀로이드 가설을 비판하는 과학자들은 이번 임상 실패를 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지 페리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학술지 네이처와 인터뷰하면서 "아밀로이드 가설은 죽었다"며 "25년 전에 나온 단순한 가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피터 데이비스 페인스타인의학연구소 연구원도 "우리는 죽은 말 위에 올라가 있었다"며 "솔라네주맙의 결과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틀렸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크리스티안 하스 독일 신경퇴행질환센터 연구원은 "이번 실패는 아밀로이드 가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솔라네주맙에 관련된 것"이라며 "솔라네주맙이 표적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양한 초기임상과 동물 실험 결과 솔라네주맙처럼 베타아밀로이드를 겨냥한 약물들이 여전히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이 대표적이다. 조시 시머 파이퍼 제프리 애널리스트는 "아두카누맙의 임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밀로이드 가설을 검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아두카누맙의 임상 결과는 2020년께 나올 전망이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두 번째 가설은 타우 단백질이다. 마찬가지로 타우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서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신약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김영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개발 중인 많은 약들이 현재 아밀로이드를 파괴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며 "다른 신약들의 효과를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약회사가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실패한 결과를 발표한 만큼 향후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에 대한 투자나 의지가 위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과학기술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