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원 매직' KGC인삼공사를 180도 바꿔놓다

남정훈 입력 2016. 12.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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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시즌 간 여자 프로배구 최하위로 처진 KGC인삼공사. 올 시즌을 앞두고 서남원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히며 체질 개선을 꾀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왼쪽 측면의 터주대감이었던 백목화, 이연주와의 FA 협상이 결렬되면서 전력은 더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년 연속 최하위로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데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위기에 빠진 서남원 감독.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했던가. 서 감독은 과감하게 포지션 변경을 꾀하며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강서브로 일찌감치 펀치력을 인정받은 데다 신장도 1m82로 컸던 세터 한수지에게 센터를 제안했다. 그리고 고교 시절만 해도 레프트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 입단 이후 주로 센터로 뛰던 장영은(1m82)를 레프트로 돌렸다. 사이드 블로킹과 공격력 강화가 목적이었다. 여기에 원포인트 서버와 리베로를 오가던 최수빈,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뒤 뚜렷하게 기회를 못 얻었던 김진희, 올 시즌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 유망주 지민경까지. 레프트 두 자리를 두고 4명의 선수가 경쟁하게 했다.

비시즌 동안 어느 선수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정하게 기회를 부여했다. 연습 경기 때 레프트 두 자리를 결정하기 위한 서 감독의 방법은 단순했다. 바로 가위바위보였다. 이긴 둘이 먼저 들어가고, 흔들리면 다른 선수가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누구든 열심히 하면 주전을 꿰찰 수 있다는 희망을 제기했다. 감독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선수 하나하나에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서 감독은 패배감에 젖어있던 선수단에게 ‘승리의 맛’을 보여줌으로써 이기는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주변 중고교 팀들과의 연습 경기. 대전 용산고 여자배구부와 연습경기를 했고, 심지어 천안 쌍용중 남자배구부, 안양 평촌고 남자배구부와도 연습 경기를 했단다. 서 감독은 “쌍용중과의 첫 경기에서 져서 난감했다. 그래도 두 번째 경기부터는 이겨 면서 자신감을 되찾더라”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연속된 승리로 사기가 오른 KGC인삼공사는 본격적으로 프로팀들과 연습 경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건설, GS칼텍스와 만나 압도적으로 패했다고. 서 감독은 “기껏 만들어놓은 팀 분위기가 헝클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V-리그에서도 저렇게 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선수단이 ‘역시 안 되는구나’라고 자책감이 빠질 무렵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2016 리우 올림픽 때문에 평소보다 2달이나 미뤄져서 치러진 2016 청주·KOVO컵이었다. 조별예선에서 IBK기업은행에게 1-3으로 패했지만, 도로공사를 3-2로 누르고 가까스로 준결승에 진출한 KGC인삼공사는 지난 시즌 V-리그 챔피언 현대건설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비록 결승에선 수비의 핵 김해란의 부상으로 급격히 조직력이 흔들리며 IBK기업은행에 0-3으로 패했지만, KOVO컵 준우승은 KGC인삼공사 선수단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야심차게 2016~17 V-리그를 맞이했지만, 1라운드엔 1승4패로 부진했다. KOVO컵 결승 때 당한 부상 여파로 김해란의 컨디션이 좋지 못했고, 서 감독의 ‘히든카드’였던 장영은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센터 한수지가 레프트까지 보는 상황이 생기기까지 했다.

2라운드 들어 서 감독이 당초 그렸던 그림의 조각들이 속속 맞춰지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장영은과 최수빈을 축으로 지민경, 김진희가 레프트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신장 1m90의 3년차 문명화를 벤치로 밀어낸 한수지와 유희옥이 지키는 센터진도 든든해졌다. 한수지는 세트당 0.842개의 블로킹으로 이 부문 2위에 오르며 원래 센터였던 것처럼 활약해주고 있다. 미들본의 대체선수로 KGC인삼공사 유니폼을 입은 알레나는 득점 1위(303점), 공격종합 1위(44.61%)에 오르며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떠올랐다. 몸 상태로 올라온 김해란은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답게 코트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전매특허인 ‘플라잉 디그’는 물론 경험이 부족한 레프트 후배들의 리시브 불안을 상쇄시켜주고 있다. 톱니바퀴가 착착 잘 돌아가기 시작한 KGC인삼공사는 더 이상 ‘승점자판기’가 아니다. 


달라진 KGC인삼공사의 면모는 2일 인천 흥국생명전에서 잘 드러났다. 경기 전만 해도 서 감독은 2라운드 전승행진을 달리던 흥국생명의 강한 기세를 의식하며 “다들 흥국생명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실텐데, 우리의 목표는 세트 하나라도 따는 것”이라고 몸을 낮추면서도 “흥국생명이 자랑하는 쌍포인 러브나 이재영의 공격 성공률을 떨어뜨린다면 해볼만 하다”고 승리에 대한 의지를 은근히 내비쳤다.

KGC인삼공사는 블로킹 득점에선 9-8 근소한 리드를 보였으나 유효블로킹에서 23-13으로 10개나 더 앞섰다. 러브와 이재영의 공격이 바운드되면 그 자리엔 어김없이 KGC인삼공사 선수들이 있었다. 이날 그들이 솎아낸 디그는 무려 85개. 디그 시도 87개였으니 선수들의 손에만 닿기만 하면 무조건 다음 동작으로 연결된 셈이다. 김해란이 20개, 수비형 레프트 최수빈이 16개, 세터 이재은 15개, 알레나까지 10개의 디그를 성공시켰다. 결국 러브는 15점을 올리긴 했지만 공격 성공률은 29.55%에 그쳤고, 이재영(9점)은 18.52%로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러브와 이재영 둘 다 묶인 것은 올 시즌 처음인 것 같다”며 KGC인삼공사의 수비력에 혀를 내둘렀다.

알레는 혼자 33점(공격 성공률 52.38%)을 몰아치며 러브와의 외국인 선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여기에 1세트 초반 흔들리던 장영은을 대신해 들어간 지민경이 알토란 같은 6득점을 보탰고, 최수빈도 코트 후방을 든든히 지키면서도 9점을 올렸다. 한수지는 블로킹 부문 2위답게 블로킹 5개를 잡아냈다.

주전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한 KGC인삼공사는 흥국생명을 3-0(28-26 25-17 25-20)으로 잡고 1라운드 때 당한 0-3 완패를 완벽히 설욕했다. 승점 3을 챙긴 KGC인삼공사는 승점 14(5승5패)로 3위 현대건설(승점 14, 5승5패)과 동률을 이루며 2라운드를 마쳤다.

2라운드를 4승1패로 마침과 동시에 흥국생명의 2라운드 전승을 저지한 서 감독은 “누가 이기든 3-0 경기는 아니라고 봤는데, 완승을 거둬 만족스럽다”고 입을 뗀 뒤 “시즌 전 생각한 구성원이 다 돌아왔으니 이제는 해볼만 하다. 무엇보다 패배의식을 완벽히 털어낸 것 같아 그 부분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어 “3라운드부터 알레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을 보완하고, 블로킹과 서브가 꾸준하게 터져준다면 앞으로도 해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감독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180도 달라진 KGC인삼공사. 3라운드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여자부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까. 시즌 중반으로 접어드는 여자부의 최대 관전포인트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 제공= 발리볼코리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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