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창과 방패로 만난 檢事들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16. 12. 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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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신문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최순실 게이트 박영수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주는 사진이 실렸다. 대통령이 특검 수사 대상이어서 총리가 대신 줬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좀 이상한 데가 있다. 둘이 악수하면서 서로 45도 각도로 머리를 숙였다. 보통은 임명장 주는 사람이 머리를 꼿꼿이 세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은 검찰 선후배 사이다. 박 특검(사시 20회)이 사법시험도 세 기수 빠르고 나이도 다섯 살 위다. 게다가 평소 형,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각별하다.

▶박 특검과 황 총리는 2003년 부산동부지청장과 차장검사로 일하면서 아주 가까워졌다. 당시 박 지청장은 후배들과 회식 자리에서 "황 차장은 검찰총장감"이라고 치켜세울 만큼 황 총리를 아꼈다고 한다. 둘만 있을 때면 몰라도 검사들 모인 자리에선 하기 힘든 말이다. 두 사람은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어느 카페에 갔다가 색소폰 연주를 듣고 반해 색소폰도 함께 배웠다. 나중에 황 총리는 색소폰 연주 CD까지 냈다. 그랬던 이들이 이번에 창과 방패로 만난 것이다.

▶박 특검은 특검 수사팀장으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영입했다. 현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가 좌천됐던 사람이다. 박 특검, 윤 팀장과 최재경 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함께 수사했다. 박 특검이 중수부장, 최 수석이 중수1과장, 윤 팀장이 소속 검사였다. 그랬던 셋 중 최 수석은 특검 수사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윤 팀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관계도 묘하다. 우 전 수석이 2009~2011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할 때 윤 팀장은 그 밑에서 범죄정보2담당관, 중수2과장을 지냈다. 우 전 수석이 자기보다 일곱 살 위지만 늦깎이로 사시에 합격한 윤 팀장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우 전 수석에 대해 윤 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윤 팀장이 최순실 게이트 묵인·방조 혐의로 우 전 수석에게 칼을 겨눠야 한다.

▶검사들은 같은 부서와 수사팀에서 근무하면서 이런저런 관계로 얽힌다. 그럼에도 최순실 특검을 둘러싸고 창과 방패로 만난 검사들 사이는 유독 끈끈해 보인다. "수사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박 특검은 "인연에 얽매여 수사를 잘못 한다면 검사가 아니다"고 했다. 특검 이후 이 인연들의 끝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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