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압박하는 중국의 사드 보복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6. 12. 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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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롯데 세무조사에 이어.. 홈쇼핑·전자상거래에도 "한류 모델 쓰지 말고 제품 노출 줄여라"
- 무역 마찰 피해서 기업 옥죄기
통관 기준 높이고 반덤핑 조사.. 중소·중견기업까지 영업 타격
정부 개입 증거없어 속앓이만
- 시진핑 "중화문화 창조성 키워라"
한류 줄이면서 자국 산업 육성.. 한국내 反사드 여론 확산도 기대

중국 홈쇼핑과 전자상거래 부문에도 한한령(限韓令·한류 스타나 한국산 제품을 규제하는 것)이 내려진 사실이 확인됐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연예 부문에서 시작된 한류(韓流) 규제가 이제는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전방위적 세무조사를 비롯해 한국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쪽으로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베이징(北京)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지난달 중순 베이징 등 주요 도시 홈쇼핑 업체에 "한국 제품 편성을 줄이고 방송에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 된다. 한국에서 제작된 자료 화면도 내보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홈쇼핑에서 한국 제품 판매 방송을 중단하라는 얘기"라며 "중국 토종 홈쇼핑 업체뿐 아니라 외국 자본과 합작한 업체에도 이런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홈쇼핑 업체는 한국 제품 편성 비중을 낮추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한한령이 떨어졌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京東)닷컴은 최근 한국 상품 판매몰 운영자들에게 '한국 스타를 판촉 활동에 등장시키지 말라'는 내용 등이 담긴 지침을 배포했다. 이 지침은 "한류 스타를 내세운 판촉 활동에는 한한령이 적용된다"며 "제품 포장은 상관없지만 판촉 행사를 알리는 게시물이나 웹 페이지의 눈에 잘 띄는 곳에는 한류 스타가 등장하는 상품을 드러내지 말라"는 내용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1위 업체인 알리바바도 지난 11일 '광군제(光棍節)' 때 한류 스타를 내세운 업체들을 자사 쇼핑몰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아예 없던 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무역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같은 영업망도 없고 마케팅 예산도 많지 않은 중소기업들엔 홈쇼핑·전자상거래를 대신할 마케팅 창구가 마땅치 않다"며 "이번 조치로 한국 중소기업들의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월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한 이후 중국은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전방위로 높이고 있다. 9월 한국산 설탕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사, 10월 한국산 폴리아세탈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 11월 한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반덤핑 재조사에 잇따라 착수했다. 올 들어 8월까지 한국 대상 반덤핑·세이프가드 조사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사드 관련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에는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시작됐고,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충족하기 어려운 새로운 생산 능력 인증 기준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의 한국산 식품·화장품 통관 불허 건수가 148건으로 지난해 전체 건수(130건)를 이미 넘어서는 등 비(非)관세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한류에도 족쇄를 채우고 있다. '한류 연예인의 드라마·예능 출연과 중국 현지 공연을 제한하고 한국산 제품의 TV 광고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한한령이 대표적이다. 공식 문서 대신 구두로 지침을 내린 뒤 불만이 제기되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의식해 중국 업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방식으로 한류를 옥죄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롯데 조사나 홈쇼핑·전자상거래 한한령의 사례를 보면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중국 정부는 이런 조치가 사드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아도 손해 볼 일이 없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증이 없어 부인하면 그만이고, 보도가 되면 한국 증시가 출렁이고 경제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 내 반(反)사드 여론이 고조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는 자국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베이징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드라마·예능 분야에서 30% 수준이던 중국의 자체 제작 비중이 최근 70%로 뛰었다"며 "한한령은 한류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중국 내 지속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지난 30일 중국의 영화·연극·음악 등 예능 분야 등의 종사자 3300명을 불러 "중화(中華) 문화에 자신감을 갖고 창조적 작품을 만들라"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2일 '한·중 통상 관계 점검 회의'를 열고 우리 기업에 대한 중국의 다양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조치에는 WTO와 한·중FTA 규정을 활용해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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