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와 만납시다] 우리의 겨울이 '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김동환 2016. 12.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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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인 30대 직장인 양씨는 겨울만 되면 추억에 젖는다.

집안이 귤 농사를 지어 매년 겨울마다 손바닥이 노래지도록 열심히 귤 까먹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 깔고 엎드린 채 귤 먹으며 만화책 봤던 시절이 그는 아련하기만 하다.

언제까지나 귤 농사만 지을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수입 과일이 많이 들어오면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바뀌어서다. 겨울철 대표 간식으로 여겨지던 귤 판매량의 감소는 양씨 부모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양씨는 “아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내신 뒤 부모님께서 ‘귤 농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농지를 모두 정리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귤 팔면 돈 많이 번다는 말이 있었다”며 “부모님께서 농사를 정리하실 때쯤 귤값이 대폭 하락하면서 예전만큼 수익이 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한라봉, 천혜향 그리고 레드향 등 개량종이 많이 나온 것도 이쯤부터라고 양씨는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에서 열린 '감귤 데이' 행사에 선보인 감귤들.


세계일보가 2일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로부터 받은 ‘최근 3개년 제주 감귤 출하량’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제주본부가 처리한 지역 감귤 생산량은 55만4007톤이었다.

이중 상품용으로 생산한 게 37만4860톤으로 약 68%를 차지했다. 수출용은 3695톤, 군납과 가공용으로 내보낸 귤은 9만3659톤이었다. 같은해 도내 소비를 포함한 기타 처리 감귤은 8만1793톤이었다.

이듬해 57만3442톤으로 약 2만톤 증가한 감귤 처리량은 작년에 다시 51만9243톤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2013년보다도 약 4만톤 가까이 감소한 양이다.

들쑥날쑥한 감귤 처리량 속 상품용과 수출용으로 처리한 감귤은 양이 꾸준히 줄었다. 수입 과일이나 먹거리 다양화 같은 측면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3개년 제주 감귤 유통처리 현황 / 사진=농협제주지역본부 제공



앞선 1일, 제주도와 농협제주지역본부 그리고 제주감귤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 광장에서 개최한 ‘감귤데이’ 행사는 제주 감귤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2012년부터 제주 감귤이 5회 연속 국가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해 세 단체가 손잡고 지난해 12월1일을 ‘감귤데이’로 지정했다. 겨울철 시작 12월과 1등 간식이 되라는 뜻으로 이날이 감귤데이로 정해졌으며, ‘당도 12브릭스 이상, 산도 1% 이하의 고품질 감귤’을 생산하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행사는 내내 밝은 분위기였지만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행사 내면에는 감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주도에서 날아온 농민들의 소망과 바람 등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수입 과일과의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농민들의 고군분투가 녹아있었다.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에서 열린 '감귤 데이' 행사에서 탐스럽게 감귤들이 익어가고 있다.



제주도에서 16년째 무농약 귤을 재배하고 있다는 오송미(46·여)씨는 “(귤을) 생산하면 제대로 판매가 되어야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먹거리가 많아지다 보니 아무래도 귤을 파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오씨는 귤로 만든 잼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친환경 귤을 재배해온 자부심이 있지만, 현실은 그를 잼까지 만들게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주 농민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이다.

오씨는 “가공품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며 “수입 비중이 높지는 않다”고 밝혔다. 그는 “대략 생과와 가공품의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순수한 귤이 80%, 가공품이 20% 정도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가공품 생산에 농민들이 뛰어드는 현실. 오씨는 “단순 귤 생산만으로는 (농민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며 “생산과 가공, 유통 등을 결합해 또 다른 산업을 만드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키위,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등으로 작목 전환하는 사람도 많다”며 “농가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에서 열린 '감귤 데이' 행사에서 주렁주렁 열린 감귤들.



서울로 오면서 오씨는 귤이 ‘온 국민의 비타민C’라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그는 “제주 감귤은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다 알지 않느냐”며 “자기가 먹는 음식은 이제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의 삶은 ‘귤’이 되어야 한다는 뜻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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