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장 스트레스, 2030 세대와 4070 세대 다르다는데..

송혜진 기자 2016. 12.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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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소비 세대별 양극화
중장년 소비 줄어드는데 김치냉장고는 큰 것 장만
젊은세대, 직접 안만들고 사먹는 포장김치류 선호

부산 민락동에 사는 박순명(62)씨는 매년 11월 말이면 남편 김명철(70)씨와 부부싸움을 한다. 결혼한 딸 둘과 아들 둘에게 나눠줄 몫까지 해마다 배추 100포기씩 김장을 하는데 남편이 이때마다 골프 핑계를 대고 집을 비우기 때문이다. 박씨는 "내가 만든 김치가 아니면 남편과 자식들이 먹지 않는데 회사 다니는 딸과 며느리는 모두 바쁘니 도와달라고 할 수 없다"며 "그래서 남편과 둘이 김장하려 하는데, 꼭 이맘때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무래도 일부러 그런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신정동에 사는 양연주(45)씨는 매년 "평일에 김장하자"는 시어머니 문자 메시지를 보며 한숨 쉬는 경우다. 이날은 무조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시댁에서 김장을 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씨는 "맞벌이이다 보니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많지 않아 김치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휴가까지 내고 김장을 하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사먹자고 할 용기도 없다. 부모님과 남편이 김치 사서 먹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대가 지나도 '김장 스트레스'는 희미해지지 않는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1996년에 '김장 스트레스'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가 몇 건이나 되는지 찾아봤더니 88건이었다. 2016년에는 73건이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비슷한 수치다. '김장 스트레스 줄이는 법' '김장 증후군 치료법' '김장 후유증 달래는 법' 같은 기사가 등장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반면 그사이 김치 소비량은 현격하게 줄었다. 세계김치연구소가 발표한 2015년 김치 산업 동향에 따르면 1인당 연간 김치 소비량은 25.3㎏, 일일 약 62.9g이었다.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71.4g에서 11% 감소한 수치다. 김치를 먹는 양은 줄었는데 김장 스트레스는 거의 그대로라는 얘기인 셈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문인영씨는 "한국 사회에서 김치가 워낙 특수한 음식이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김치만큼은 집에서 담가 먹어야 제맛이라고 믿어요. 아무리 입맛이 서구화됐다고 해도 김치만큼은 딱 한 젓가락 먹어도 집 김치가 간절해지는 거죠. 문제는 김치가 워낙 노동 집약적인 음식인데 그 짐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주로 지워지다 보니, 이 '딱 한 젓가락'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여전한 것이고요."

온라인 커뮤니티 '결시친(결혼·시집·친정)' 게시판에서 '김장'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게시물 5497건이 뜬다. 대부분 김장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글이다. '김장 빠지는 법' 같은 조언도 등장한다. '시댁 가기 한 시간 전에 애가 열이 나서 아프다고 말한다' '출장 잡혔다고 한다' '위궤양 걸려 김치 못 먹게 됐다고 한다'고 핑계를 대라는 식이다. 여성학자 조은주씨는 "명절 음식만큼이나 김장은 가사 노동의 핵심 쟁점"이라고 했다.

남자들이라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니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박사가 2013년 발표한 '한국 김장문화의 역사, 의미, 전개 양상'이라는 내용에 따르면 이덕무(1741~1793), 박윤묵(1771~1849) 같은 조선 시대 남성 문인들조차 김장 걱정을 했고 김장이 끝나면 안도하는 내용의 시문(詩文)을 썼다. 김장이 그만큼 노동과 재료비가 들고, 남녀 불문 모두에게 부담이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치 소비 방식에도 점점 양극화가 심해진다. 특히 40~70대와 20~30대 사이에서 차이가 크다. 중장년층은 김치 소비가 줄어드는데도 해가 갈수록 김치냉장고를 점점 더 큰 것으로 장만하는 추세다. LG전자에 따르면 스탠드형 김치냉장고 판매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성장했다. "소비자 조사를 해보면 중장년층일수록 대용량 김치냉장고를 선호한다. 자식들에게 김치 나눠줄 것을 생각해 넣어둘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는 설명이다. 반면 20~30대는 힘들게 만들지 않고 사먹는 포장김치류를 더 선호한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매년 10월 말~11월 말 김장 재료(배추·절임배추·건고추·고춧가루·액젓·천일염)의 판매는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포장김치 판매는 계속 늘고 있다. 올해 포장김치 판매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 늘었다. G마켓 측은 "포장김치를 구입하는 층이 대개 20~30대"라고 설명했다.

'직접 담근 김치'에 대한 갈증을 누그러뜨리면서 김장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상품도 등장했다. 한 김치회사는 최근 '김장 투어'라는 상품을 내놨다. 8만5000원을 내고 이 회사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김치 공장에 가면 김치 재료와 양념까지 모두 준비돼 있다. 준비된 양념을 버무려 간단하게 만든 김치 1㎏을 담아 집에 돌아오는 식이다. 이 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힘들이지 않고 엄마 김치를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해 준비한 상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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