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내 최대 조폭 범서방파는 왜 밤거리에서 사라졌나

권순완 기자 2016. 12.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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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폭은 돈이 '형님'.. 범서방파 재건 물 건너간 까닭
150명 vs 80명
부산서 올라온 칠성파와 강남에서 만 하루 대치
유혈 충돌은 막았지만 조직원 고스란히 드러나
의리 따윈 없었다
직계 간부에게만 충성
한 다리 건너뛰거나 계파 다르면 쉽게 불고
김태촌 숨지자 세 기울어
추적 피해 해외로
마카오서 도박장 열고 기업인들 도박판 주선
결국 경찰에 두목들 잡혀 자금줄 끊어지며 몰락

지난 11월 8일 경기북부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조직 폭력 단체 '범서방파' 조직원 81명을 검거하고 그중 1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이후 가장 큰 규모의 조폭 검거였다. 범서방파는 재작년에도 61명이 검거됐으며, 지난해엔 두목·부두목급 7명이 구속되는 등 조직이 와해 직전에 놓이게 됐다. 1977년 김태촌 주도로 결성된 서방파는 이후 1980년대 여러 조직을 흡수하면서 범서방파로 확대돼 국내 최대 폭력 조직이 됐으며 양은이파, OB파와 함께 '전국구 3대 패밀리'로 통했다. 범서방파는 왜 몰락의 길을 걷게 됐을까.

7년 전 강남 한복판 활극

사건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1월 초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 범서방파 부두목 정모(사망·당시 44세)씨와 부산 조폭 칠성파의 부두목 정모(당시 37세)씨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식 투자 문제로 생긴 수억원대의 채권·채무 관계에서 범서방파는 채권자, 칠성파는 채무자 측을 대리해 협상 테이블에 나온 자리였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범서방파 정씨는 "나이 어린놈이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욕설을 내뱉었다. 칠성파 정씨는 자리를 박차고 룸살롱을 나갔다.

수일 뒤인 11월 11일 오후 4시 범서방파 정씨가 서울 청담동의 한 고깃집을 다급히 찾았다. 고깃집 사장은 당시 범서방파 고문이자 김태촌의 후계자로 알려진 나모(50)씨였다. 정씨는 "칠성파 애들이 부산에서 잔뜩 몰려오고 있다. 나를 봐버리고(죽이고) 우리와 전쟁을 하려 한다"면서 나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같은 시각 정씨가 운영하는 강남의 한 유흥주점 앞에는 서울에 막 올라온 칠성파 선발대가 속속 도착했고, 후발대 수십명도 서울을 향해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씨는 우선 정씨와 논현동 Y호텔로 몸을 피했다. 그날 저녁 나씨는 "식구들을 다 모으라"고 지시했다. 총집결 지시를 내린 지 서너 시간 만인 그날 밤 10시쯤 나씨의 고깃집 주변에 '함평범서방파' '방배범서방파' '충장OB파' 등 직계·방계 조직원 150여명이 모였다. 대형 마트에서 회칼, 야구 방망이, 장갑을 47만원어치 구입하고 '전쟁 준비'를 마친 이들은 경찰 검문·검색을 피해 3~4개 팀으로 나눠 고깃집 반경 1㎞ 이내인 경기고교 앞, 한강공원 잠원지구, 학동사거리 등에 머물며 출동 명령을 기다렸다. 반면 그곳에서 2㎞ 떨어진 한 호텔 주변엔 각종 '연장'으로 무장한 칠성파 80여명이 검은 승용차에 나눠 타고 있었다. 여차하면 살육전이 벌어질 순간이었다.

다음날 새벽 나씨는 청담동 한 호텔에서 조직 간부들과 대책 회의를 열었다. 지금 전쟁을 벌이면 두 조직 모두 죽는다고 판단한 나씨는 원로급 조폭 A씨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A씨는 이때 칠성파 두목인 이강환(73) 측에 연락했고, 충돌 직전 양측은 극적으로 타협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날 오후 5시 30분 나씨가 대기 중이던 전 조직원에게 해산 명령을 내리면서 두 조직의 전쟁은 가까스로 무산됐다.

하지만 만 하루 동안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대치극으로 범서방파는 조직이 고스란히 외부에 드러나고 말았다. 한 조폭 전문 수사관은 "당시 경찰이 파악하고 있던 범서방파 조직원은 모두 12명에 불과했으나 이 사건 이후 범서방파에 대한 대규모 검거 작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 서울·경기 경찰에 적발된 범서방파 150여명 중 100명 이상은 당시 강남 대치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 대치극 이후 조직원 대거 노출

경찰이 강남 대치 사건에 대한 내사에 나서자 범서방파 조직원들은 다시 잠행(潛行)에 들어갔다. 나씨는 고깃집 운영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부두목 정씨는 역삼동 룸살롱으로 돌아가 평소와 같이 가게를 운영했다. 다른 조직원들도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이권 다툼에만 주로 개입했다. 집단 대치 현장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4조에 규정된 '범죄 단체 활동'에 걸려 간부급은 무기 또는 7년 이상, 일반 조직원도 2년 이상 징역형을 받기 때문이었다.

서울경찰청 광수대가 범서방파를 본격 수사한 것은 그 이듬해인 2010년부터였다. 대포 차량 불법 대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한 사채업자로부터 범서방파와 칠성파의 강남 대치극 전모를 듣게 됐다. 그러나 1년 전 그날의 현장을 담은 CCTV 영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은 이미 신원이 파악된 조직원들의 통화 내역을 뽑아보고 기지국 위치를 파악해 "왜 그날 한꺼번에 거기에 있었느냐"고 조직원들을 추궁해 들어갔다. 당시 강남을 배회하며 자기 신용카드로 흉기를 산 조직원도 수사망에 걸렸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조폭 하면 의리를 생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직계 간부에 대해선 쉽게 입을 열지 않지만 한 다리를 건너뛰거나 계파가 다르면 누가 조직원인지 아닌지 쉽게 진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두목인 나씨도 직계가 아닌 방계 부하의 진술로 꼬리가 잡혔다. 나씨는 경찰에서 "친한 동생의 부탁을 받고 아는 형님에게 싸움을 말려 달라고 한 게 전부"라며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검경은 현재 나씨를 범서방파 두목으로 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두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범서방파의 두목이자 상징적 존재였던 김태촌이 2013년 1월 병으로 숨진 것도 조직이 기우는 큰 요인이 됐다. 2010년 이후 김씨는 조직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범서방파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김태촌 사후 나씨가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왕년 김태촌이 보여주던 조직 장악력과 대외적 위상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나씨는 김씨 사망 직후인 2013년 2월 다른 조폭 조직원들에게 납치·폭행당했는데, 만약 나씨가 아니라 김태촌이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여직원 폰에서 나온 도박왕 목소리

일부 범서방파 조직원들은 추적을 피해 해외 도박판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다. 작년 11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마카오에서 고급 원정 도박장(일명 '정켓방')을 운영한 혐의로 조폭 조직원 33명을 검거했는데, 그중 7명이 범서방파였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조폭들은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등 여러 기업인이 정켓방에서 총 500억원 판돈의 바카라 도박을 할 수 있게끔 주선했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괜찮은 돈줄만 물면 가만히 앉아서 수억원을 편히 벌 수 있는 매력적인 '뽀찌(중간에서 챙기는 돈)' 통로였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태촌의 양아들이라 불리는 범서방파 행동대장 김모(43)씨를 협박·횡령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원정 도박 수사의 단초를 얻게 됐다. 김씨의 부하 여직원 B씨의 휴대폰에서 수십개의 수상한 녹음 파일을 발견한 것이다. B씨가 김씨의 지시로 마카오에 가서 현지 브로커들에게 정켓방의 운영 방식과 현장 분위기를 배울 때 복잡한 설명을 한 번에 이해할 자신이 없어 복습용으로 녹음해 놓은 것이었다. 이 녹음을 하나하나 듣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조폭 조직원들에게 녹음을 들려주며 추궁하니 업계에서 '정켓방의 대부'로 통하며 마카오 최대의 원정 도박장인 '경성방'을 운영하고 있던 이모(40)씨였다. 이씨 역시 범서방파 간부로 강남 대치 사건 이듬해인 2010년부터 마카오에서 도박판을 벌여온 곳으로 파악됐다.

수사 과정에서 두목으로 지목된 나씨가 상습 도박꾼으로 재작년 마카오에 가서 2억4000만원을 탕진한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조직이 위기에 빠졌지만 그 두목은 노름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한편 조폭들이 2000년대 이후 기업 M&A, 주류 유통, 다단계 판매업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조폭 내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개인주의 현상도 심화됐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조폭계 관계자는 "돈이 곧 '오야(우두머리)'고, 돈이 곧 형님인 시대가 됐다"면서 "자금줄이 끊기고 조직원이 대부분 노출된 범서방파는 재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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