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주의 교훈, 대표팀 문이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이유

이준목 입력 2016. 12. 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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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에 필요한 건 공정한 기회

[오마이뉴스이준목 기자]

전북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지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경기후 우승팀 전북 선수들 못지않게 국내 팬들의 관심을 모은 것이 바로 준우승한 알 아인의 이명주였다. 그간 중동 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국내 팬들의 관심에서 잊혀졌던 이명주는 전북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활약으로 ACL 결승 진출팀의 주전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명주는 이미 포항 시절부터 K리그를 대표하는 유망주로 꼽혔다.  2012년 데뷔 첫해 신인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K리그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기록을 수립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브라질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낙마한 이후 돌연 UAE의 알아인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명주를 내주며 500만 달러에 이르는  이적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명주는 실력에 비하여 대표팀에서는 유난히 불운한 선수로 꼽혔다. 최강희 감독 시절인 2013년 축구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지만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는 뽑히지 못했고, 그해 한국축구가 금메달을 차지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소속팀의 반대로 무산되며 병역혜택의 기회를 날리기도 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호출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2년간 대표팀과 더 이상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6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맹활약한 이명주(왼쪽)
ⓒ 알 아인 공식 홈페이지
이명주는 대표팀에서 저평가받은 선수들을 거론할 때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하나다. '의리축구' 논란에 휩싸였던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당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이명주를 외면하고 구자철, 김보경, 지동원 등 자신이 아끼는 올림픽팀 출신 멤버들만 편애했다는 이유로 축구팬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사퇴 기자회견에서는 'K리그 선수들은 B급'이라고 지칭하며 경기에 못뛰더라도 유럽파가 더 낫다는 투의 망언을 했다가 두고두고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선수 선발은 기본적으로 감독의 재량이다. 감독은 전술적으로 자신의 축구철학에 부합하는 선수들을 기용할 권한이 있고 결과로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냉정히 말하면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이명주를 중용하지 않은 이유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명주의 주 포지션은 공격형 중앙 미드필더다. 그런데 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구자철, 후방 플레이메이커나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기성용이라는 확실한 주전이 버티고 있다. 남태희, 김보경, 이재성 등 백업자원도 풍부하여 어쩌면 대표팀에서 가장 두터운 포지션이기도 하다.

이명주를 처음 대표팀에 발탁한 것은 2013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최강희 감독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구자철과 기성용이 모두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설상가상 중원보강을 위하여 차출된 베테랑 김남일마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명주는 우즈베키스탄과의 단두대매치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음에도 선발출장하여 인상적인 활약으로 최우수선수까지 올랐다. 하지만 만일 기존 주전들이 모두 건재했다면 이명주가 이런 빅매치에서 중용되었을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을 이끌었던 홍명보 감독은 2014년 1월 미국 전지훈련에서 이명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점검했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이미 호주 아시안컵에서 이명주를 활용해본 적이 있지만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반드시 이명주의 기량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감독이 원하는 선수의 성향이나 스타일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제외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리고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이런 경우는 축구에서 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대표팀 선발을 둘러싼 기회의 공정성이다. 이명주가 아닌 누구라도 감독의 전술과 맞지 않으면 굳이 대표팀에 기용하라고 강요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꾸준히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도 최소한 대표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수 있는 기회조차 얻을 자격이 없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홍명보와 슈틸리케 감독이 비판받았던 공통적인 이유는 굳이 어떤 특정 선수를 뽑지 않아서라기보다, 소속팀에서 잘하는 선수를 중용하겠다는 원칙을 깬 것이었다. '감독의 입맛'대로 뽑은 선수들이 과연 뽑히지못한 선수들보다 더 나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었다.

역대 대표팀 감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거스 히딩크와 허정무 감독의 공통점은 끊임없는 인재 육성과 무한 경쟁에 있었다. 이들은 부임 초기 선수 기용을 놓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불과했던 박지성이나 김남일, 이영표 같은 선수들을 발탁했다가 무의미한 선수실험만 한다고 비난받았고 빨리 베스트 멤버를 정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선수들과의 밀당에 능했던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 윤정환, 김병지 등 당시 각 포지션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받던 선수들을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파격을 단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번 자신의 눈밖에 났던 선수들이라도 경쟁력을 증명하면 대표팀에서 다시 기회를 줬다.

평가전에서 위험한 플레이로 도마에 올랐던 김병지는 월드컵 개막 전까지 이운재와 선의의 주전경쟁을 유도했고, 뛰어난 기술에 비하여 수비와 체력이 부족하여 히딩크식 압박축구에 맞지않는다는 평가를 들었던 플레이메이커 윤정환도 최종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골결정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던 차두리는 대표팀에서 조커로 깜짝 승선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각기 다른 재능과 팀 전체의 궁합을 두루 고려한 선택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의외로 저평가받은 부분중 하나가, 알고보면 역대 대표팀 사령탑 중 가장 많은 선수들을 발탁한 감독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K리그에서 조금이라도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한 번 이상은 거의 대표팀에 발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기 시절의 박지성과 이영표는 물론이고 지금의 이청용, 기성용, 곽태휘, 구자철, 김신욱, 김보경 등을 모두 대표팀에 처음 기용한 것도 알고보면 허정무 감독 시절이다. 허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고 박지성-이영표도 은퇴한지 수 년이 지났지만, 대표팀의 주요 선수층은 지금도 허 감독 시절에 구축해놓은 인프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히딩크와 허정무가 남긴 교훈은 대표팀의 문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승선하는 것도 맞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내부 경쟁도  필수다. 어느 리그, 어느 소속팀에서 뛰느냐를 넘어 어디서든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대표팀에 승선하여 기존 선수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다시 옥석을 가리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어야 팀이 더욱 탄탄해 진다. 또한 감독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발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능력 있는 선수들을 데려와 그들의 재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판을 짜주는 것도 대표팀 감독의 역할이기도 하다.

슈틸리케 감독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시안컵에서 무명의 이정협을 처음 발굴했을 때처럼  K리그나 2부리거 같은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제로 베이스에서 선수들을 경쟁시키면서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모습이 실종됐다. 경기에 못뛰어도 이름값에 치우친 선발을 고집하고, 선수의 노력이나 발전보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선수를 재단하거나 팀 운영의 폭을 좁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 조광래나 홍명보 전 감독이 실패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한 모습이었다.

굳이 이명주만이 아니더라도 K리그나 아시아 무대에는 실력에 비하여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인재들이 아직 분명히 남아있다. 그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동기부여를 통하여 대표팀의 인재풀을 넓히는 것도 국가대표 사령탑의 엄연한 의무다. 대표팀에서 공정한 경쟁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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