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욕 먹었던 국민의당의 기나긴 하루

입력 2016. 12. 2. 14:46 수정 2016. 12. 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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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12월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어제(1일) 국민의당은 ‘역대급’으로 욕을 먹었습니다. 의원들마다 수백통의 항의 전화, 문자를 받았고 의원회관 사무실도 쏟아지는 전화를 받느라 업무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홈페이지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일찌감치 ‘다운’됐습니다. “새누리당과 손을 잡고 탄핵 추진에 반대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항의였습니다. 12월1일, 국민의당의 ‘역대급’ 하루는 이랬습니다.

1일 오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회동에 국민의당, 특히 박지원 위원장은 기습 공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오후 2시에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박 위원장은 이를 두고 “경악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추 대표와의 통화에서 “(전날) 야3당 대표들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단축을 위해서는 만나지 않기로 했고, 최소한 회동을 하려면 두 야당 대표에게 사전 통보 혹은 양해가 있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리고 탄핵을 주장했던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어떻게 1월말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느냐”고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전날 저녁 김무성 대표가 만나자고 했지만 본인은 야권 공조를 위해 만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오늘 탄핵안을 발의하면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7일까지 ‘4월말 퇴진’을 받길 제안한다”고 밝힌 마당에 2일 표결을 강행해봤자 비박계 표의 이탈로 부결될 게 뻔하다는 판단이라고 했습니다.

12월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조배숙 의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옆 자리에 앉은 안철수 전 대표는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습니다. “내일 탄핵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의견대로 1일 발의, 2일 표결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정동영 의원도 발언을 자처했습니다. “1일 발의를 우리 당의 노선으로 관철하는 것이 우리 당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안 전 대표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입장은 여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정 의원이 발언을 마치자 외려 “민주당 비문 의원들도 우리 국민의당과 의견이 같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박 위원장은 의총 시작 30여분만에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2시30분 추미애 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의 회동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안 전 대표, 정 의원의 의견에도, 일단 9일 표결안을 고수하며 들고 갔습니다.

탄핵 일정 놓고 야3당 엇갈렸던 급박했던 1일
추미애-김무성 회동 소식에 박지원 “경악”
박지원 9일 표결 주장하다 의총에서 제동
‘탄핵반대세력’으로 몰려 시민들의 비판 쇄도
정동영이 제안한 5일 표결로 당론 채택
9일 표결까지 야권공조 공고할지 의문

회동이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문 밖으로 고성이 들렸습니다. 박 위원장 목소리와 추 대표의 목소리가 번갈아 오갔습니다. ‘워딩’을 정확히 들을 순 없었지만 서로 항의하는 톤은 분명했습니다. 이날 원래 본회의는 2시에 예정돼 있었지만 여야 상황 탓에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3시가 넘어가자, 의장실 쪽으로부터 “3시30분까지 기다리겠다”는 통보가 와 회담장 안에 전달됐습니다. 본회의 시작 전에 탄핵안이 발의되지 않으면 2일 표결은 물건너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었습니다. 3시25분, 박 위원장은 굳은 얼굴로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결과는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의총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야 3당 대표가 12월1일 오후 국회에서 만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를 논의하기에 앞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늦게 도착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 자리에서 추 대표와 심 대표는 1일 탄핵소추안 발의와 2일 처리를 주장했고, 박 비대위원장은 9일로 연기할 것을 주장해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 위원장은 ‘9일 표결’을 고수하는 이유로, “발의가 목적이 아니라 가결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여러차례 말했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4월말 퇴진’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습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당론을 수용할 경우엔 당장 탄핵 소추를 통한 대통령의 직무 정지와, 이르면 1월 말 헌법재판소의 탄핵 여부 결정 등 속도감 있는 퇴진에 지장이 생긴다는 야권 내 반발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유리한 길을 열어주고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야3당 회동 뒤 빈손으로 의총장으로 가는 그에게 이걸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얘기할 게 아닙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4월말 퇴진 제안을 안 받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박 당신들은 속지 말고 빨리 (탄핵으로) 와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받는다’, 이것을 가지고 제가 얘기하면은 안 되죠.”

박 위원장의 속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추 대표와 감정의 골이 너무 깊이 파인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근래 박 위원장은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추 대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추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 제안을 발표했을 때 “안에서 확 올라와서” 몸에 수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전날 추 대표와의 회동에서 모두 발언을 시작하며 박 위원장은 항의 발언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야3당 회동을 국민의당이 제안하자 민주당 쪽에서는 사무총장끼리 일단 만나는 것으로 하자며 거절해놓고, 이제와서 또 만나자고 하냐는 불만이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듣던 추 대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 눈으로 볼 땐 누가 제안해 만나든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두 당끼리는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모양새입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추 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를 만났다는 얘길 듣고 다시 수포가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두 당의 ‘주도권’ 경쟁은 박-추 두 대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국민의당은 규모로 볼 때 민주당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를 자처하며 개원 뒤 여러 국면마다 존재감을 키워왔습니다. 당내에서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에 끌려가선 안 된다’, ‘우리는 제3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대두됐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했습니다. 차기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정돼있는 김동철 의원은 대통령의 3차 담화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100% 부정만 하지 말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해야 한다”며 협의에 나서자고 했습니다.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박주선 의원은 “민주당이 지지를 받고 있는 급진 진보세력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무서워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못한다는 것은 정권을 창출할 수권정당으로서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원총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들이 있었지만 이날 힘을 받은 것은 ‘2일 본회의 보고, 5일 표결’이라는 정동영 의원의 중재안이었습니다. 정 의원 쪽은 박 위원장이 9일 표결 입장을 고수하는 것을 보고 점심시간까지 아이디어를 짜내 5일 표결안을 마련해 의총장에 내놨다고 했습니다. 박 위원장이 야3당 대표 회동을 마치고 의총장에 돌아온 뒤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해 다수 의견은 이 쪽에 기울었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은 하루종일 계속된 항의 등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물론 “탄핵을 안하겠다는 게 아니라 되게 하자는 것인데 새누리당 부역당으로 매도돼 억울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어찌됐든 기왕 2일 표결이 무산된 마당에 촛불 민심대로 하루라도 빨리 표결을 추진하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박 위원장도 동의했습니다.

다음날인 오늘 아침 9시, 박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야권균열의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국민의당을 대표해서, 또 저 자신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바짝 엎드렸습니다. 바로 이어진 야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는 결국 ‘9일 표결’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회동을 마친 뒤 박 위원장은 “(야권공조가)이렇게 잘 되는데 말이야!”라며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9일까지 일주일의 시간동안 야권은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탄핵안을 가결시킬 수 있을까요?

참고로 박 위원장은 쏟아진 항의 문자들을 아직 보진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보겠다고 합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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