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집토끼 놔두고 산토끼 잡는 격"

송창섭 기자 2016. 12. 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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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로 어설픈 '미국식 자본주의' 정면 비판하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책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대표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따온 듯하다. 주인공 엄석대는 부정을 일삼고도 아무렇지 않은 거악(巨惡)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쓴 책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서 ‘엄석대’와 동일시되는 거악은 잘못 해석된 ‘경제민주화’다.

신 교수는 학자의 길을 걷기 전 언론인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매일경제신문에서 경제부 기자·논설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학자로 변신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봤기에 신 교수의 진단은 직설적이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길 거부한다. 그동안 펴낸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금융전쟁; 한국경제의 기회와 위험》 《김우중과의 대화》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도 극과 극을 달렸다.

이번에 신장섭 교수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역시 논란이 많은 주제다. 이론적으로야 허점이 많지만, 국민정서상 ‘경제민주화’처럼 매력적인 게 없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했기에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듣는 이들은 가슴 한편에서 청량감을 맛본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경제민주화는 틀렸다. 허구다’라고 외치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의 저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 시사저널 고성준

“미국식 소액주주 권익 보호, 만능 아니다”

하지만 그가 무턱대고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신 교수는 “개념 설정부터 원인 분석, 대안 제시까지 전 분야에 걸쳐 경제민주화는 한국 경제에 도움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대주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높이는 방식의 제도 개선은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SK-소버린 사태’와 ‘삼성-엘리엇 사태’가 좋은 예다. “미국식 소액주주 권익 보호가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미국에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했을 때는 소액주주들의 힘이 약했습니다. 당시 전문경영인들은 사내 유보와 재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관·개인 투자자들의 의사는 무시됐죠. 그래서 지금 어떻습니까?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매출보다는 이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현실 아닙니까?”

신 교수는 현재 윌리엄 라조닉 미국 매사추세츠대 경제학과 교수와 미국의 헤지펀드 행동주의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관련 서적을 출간할 계획이다. 라조닉 교수는 “주주 몫 챙겨주다 성장기회 놓친다”며 주주행동주의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신 교수는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고용→분배’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원활한 기업 승계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기업 승계 해법은 ‘재단’이다. “지금처럼 65%의 상속세를 내면서 경영권을 승계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지금의 시스템은 가족경영의 씨를 말리도록 설계가 돼 있어요. 그럴바에는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면서 지속적으로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됩니다. 미국 록펠러재단이나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좋은 예죠.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재단 운영이 우선시돼야 한다. 복잡한 순환출자식 지배가 아닌, 지주회사 형태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이토록 성장한 것은 이익보다 매출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용이 최상의 복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미국도 실패했다고 생각해 바꾸려고 하는, 주주권한 강화를 모토로 내건 경제민주화를 우리가 도입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집토끼는 놔두고 산토끼, 그것도 말라비틀어진 산토끼를 잡으러 나간 꼴이죠. 경제민주화는 사리에 맞지 않는 단순한 국민정서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장섭 지음 나남 펴냄 262쪽 2만원

“경제민주화, 국민정서법에 지나지 않아”

신 교수는 이번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된 것도 중산층 붕괴에 따른 불안감이 표출된 것으로 본다. 일자리를 위협받는 백인 화이트칼라가 콘크리트 지지층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지식산업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거라고 내다봤다. 미국식 주주제일주의를 만능으로 여겨온 우리 경제에 트럼프 현상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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