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지역주의에만 기댔던 가짜 보수, 둑이 무너졌다
의식조사, 진보 30 보수 26% 첫 역전
진보에 보편적 가치 주도권 뺏겨
DJ·노무현 10년에도 없던 붕괴 불러
정치적으로 보수는 이미 사면초가다.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당 지지율 3위까지 떨어졌고 친박-비박 내분에 휘말리며 파산 수순을 밟고 있다. 집권층의 와해와 동시에 보수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각종 정책·법안도 전면 후퇴하고 있다. 역사 국정교과서는 시작부터 식물 교과서로 전락했고, 국회에선 법인세 인상 등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기 중이다.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등도 원점 재검토가 힘을 얻고 있다.
해방 이후 70여 년간 한국 사회를 추동해 온 저변엔 사실 보수 이념이 자리해 왔다. 남과 북으로 대치된 지정학적 조건과 ‘잘살아 보자’는 국민적 염원 등이 보수의 반공주의·성장론에 힘을 실어 줬다. 이런 연유로 야권은 자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항변해 왔다. 분단뿐 아니라 유권자 구성(영남 1059만 명, 호남 414만 명)이나 미디어 환경 등에서 보수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지형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파악한 유권자 이념 성향(0은 매우 진보, 5는 중도, 10은 매우 보수)에 따르면 2012년 총선(5.399)과 대선(5.65), 2014년 지방선거(5.55) 등에서 한국인은 중도보수 경향을 일관되게 띠었다. 급진보단 안정적 개혁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때도 목격하지 못했던 보수 몰락이 진행되고 있다. 둑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가치는 왜 부정당할까.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사이비 보수가 득세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가짜 보수가 반공과 국가주의에만 기댄 탓에 보편적 가치를 모조리 진보에 빼앗겼다”고 분석했다. 허튼짓을 하다가도 선거 때면 무작정 종북 딱지를 붙이거나 ‘우리가 남이가’에 호소하는 지역주의가 보수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무상급식·반값등록금·흙수저론 등은 진보성을 매개로 한 치열한 논쟁이었다. 2012년 대선 때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복지 증진을 내세우는 등 좌클릭했고, 현재 여권의 주요 잠룡들 역시 ‘양극화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임동욱 교수는 “형식적 제도 내에선 보수 세력이 권력을 잡았을지언정 교육과 문화예술 등 사상과 담론 전쟁에서 보수는 진보에 완벽히 주도권을 내줬다”며 “보수의 허약한 철학적 기반이 결국 부메랑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보수는 여전히 관(官) 주도, 성장 지상주의, 위계질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시대 현안을 포착해 내지 못한 채 낡은 ‘박정희 패러다임’에만 안주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김원용 전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고령화의 3대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사회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보수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 잇따라 민주당이 집권하며 보수 위기론이 커지자 보수그룹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이른바 ‘4P 이론’을 제시했다. 즉 보수의 철학화(Philosophy)를 통해 가치를 재정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면서(Popularize) 조직적 정치화(Politicize)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자선활동(Philanthropy) 등 사회적 책임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보수주의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근본도 없고 절차도 무시하는 한국의 보수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친노도 2007년엔 ‘우리가 폐족’이라며 반성하지 않았나. 하지만 보수는 자유를 억압했던 유신체제마저 외면해 왔다. 참회하지 않는다면 계속 ‘꼰대’와 기득권으로만 폄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논객 복거일씨는 “보수의 진정한 가치인 자유·경쟁·책임을 회복시켜야 한다. 도덕적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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