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추리닝과 낡은 운동화

이기성 기자 2016. 12. 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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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쿠바 혁명의 영웅이 지난달 25일 90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뉴스가 됐다. 집권 시기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덥수룩한 수염에 군복을 입고 시가를 문 모습으로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지만 2006년 장 출혈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추리닝 복장만을 고수했다. 2006년 태풍이 훑고 지나간 중국 남부 한 농촌을 찾은 원 총리가 운동화를 몇 년 째 기워가며 신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청백리의 표상으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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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쿠바 혁명의 영웅이 지난달 25일 90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뉴스가 됐다. 세계 각국 언론들은 ‘냉전 시대의 마지막 붉은 별’이 떨어졌다며 역사가 된 그에 대해 장문의 일대기를 앞다퉈 보도했다.

카스트로 애도하는 쿠바 국민들 (사진=AP)

1962년 미사일 기지 설치를 둘러싸고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과 일촉즉발의 순간, 630여 차례의 암살 위기 등 파란만장한 카스트로 삶의 숱한 비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권 시기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덥수룩한 수염에 군복을 입고 시가를 문 모습으로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줬지만 2006년 장 출혈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추리닝 복장만을 고수했다.

피델 카스트로

카스트로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 등 외국 정상을 만날 때는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하는 자리에도 추리닝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아디다스 추리닝으로 시작해 휠라, 푸마, 나이키도 입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다 탈락되고 결국 카스트로 추리닝 패션의 최후 승자는 독일산 아디다스가 됐다. 아디다스는 이에 대해 2006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는 카스트로 (사진=AP)

카스트로가 추리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양복 같은 정장은 서구의 부르조아 문화를 상징한다는, 그 특유의 문화적 거부감 때문일 것이라는 둥 현 집권층을 배려해 서민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둥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카스트로는 추리닝 패션을 통해 다른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점이다.

중국 원자바오 전 총리는 재임 시 10년 넘은 허름한 단벌 점퍼를 입고 민정 시찰을 다녔다. 권력 서열 3위의 총리가 이런 행보를 보이자 중국 대륙은 감동했다. 뿐만 아니다. 이번에는 신발이었다. 2006년 태풍이 훑고 지나간 중국 남부 한 농촌을 찾은 원 총리가 운동화를 몇 년 째 기워가며 신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청백리의 표상으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중국 원자바오 전 총리

그러나 원 총리 임기 후반 부정축재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가 원 총리 아들과 사위가 원 총리의 권력을 이용해 모은 재산이 27억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원 총리가 허름한 점퍼와 낡은 운동화로 서민 총리 역할을 하는 동안 원 총리 부인은 중국보석협회 회장을 지내고 아들 원윈쑹은 사모펀드를 운영해 떼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카스트로, 원자바오처럼 정치인들은 이미지를 먹고 산다. 문제는 이미지는 실체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미지는 보통 언론 등에 의해 윤색되거나 증폭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깨지고 실체가 드러날 때 느끼는 배반감과 분노는 배가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와 이미지 뒤에서 그가 했던 행위로 열병을 앓고 있다. 

이기성 기자keats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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