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간교한 술책'으로 퇴진 모면할 수 없다

2016. 11. 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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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은 솔직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간교해지고 노회해졌다. 얕은꾀로 발등의 불을 끄고 반격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만이 번득였다. 박 대통령이 29일 발표한 3차 대국민 담화는 국민의 기대를 또다시 배반하며 온 나라를 더욱 큰 실망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며 공을 정치권에 떠넘겨 버렸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초연한 척했으나, 실제로는 대통령의 권좌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집착과 오기가 생생히 전해져 온다. 사퇴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결단하면 끝날 문제다. 그런데도 공을 정치권에 떠넘긴 이유는 자명하다. 박 대통령은 사퇴할 뜻이 눈곱만큼도 없는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 문제를 뒤늦게 거론하고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애초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통과가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따라 “탄핵을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탄핵안 통과가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정치권의 전열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검찰 수사 거부’는 일언반구 없어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는 결국 탄핵 저지를 위한 간교한 꼼수다. 당장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야당 쪽에 탄핵 일정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서고, 비박계 안에서 ‘즉각 탄핵론’이 멈칫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합의’와 연계시킨 것은 참으로 교활하다. 합의가 이뤄지려면 야당들뿐 아니라 새누리당까지도 동의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을 국회에 주문해 교묘히 빠져나가려 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한사코 외면하던 ‘질서있는 퇴진론’을 뒤늦게 들고나온 것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질서있는 정국수습책을 두고 갖가지 논의가 무성했다. 거국중립내각 구성 후 대통령 사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등 다양한 방안이 쏟아졌다. 원래 ‘메뉴’가 너무 많으면 선택이 쉽지 않은 법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틈을 타고 정치권에 먹이를 던짐으로써 정치권의 백가쟁명식 다툼을 유도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권끼리 갑론을박하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시간을 벌면서 전열을 정비하겠다는 속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개헌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야권의 분열까지 노린 매우 교활한 술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국민 담화를 통해 다시금 확인된 사실은 박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었다”고 강변하면서,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느니 “주변을 관리하지 않은 잘못” 따위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최순실씨와 차은택씨 등의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이 이들의 이권 챙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으로 적시된 대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사퇴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믿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진퇴 논의는 탄핵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이미 ‘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의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으나, 막상 검찰 수사가 눈앞에 닥치자 “인격살인”이니 “시간이 없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가 최소한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런 ‘말 바꾸기’에 대한 설명과 변명이라도 있었어야 옳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 대목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통령의 담화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일단 탄핵안 저지와 시간 벌기 의도가 관철되고 나면 박 대통령이 또 어떻게 말을 번복할지 아무도 모른다. 설사 국회가 합의해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기 위한 일이라면 상식이나 양식, 염치 따위는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 담화로 정치권이 나아가야 할 길은 더욱 분명해졌다. 탄핵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교란책이 이미 새누리당 안에서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치밀한 접근 방식이 요청된다. 박 대통령의 진퇴 문제에 대한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면 탄핵안 통과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국회가 합의안을 도출할 수도 있고,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로 탄핵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켜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국회가 박 대통령의 꼼수에 빠져 허우적거릴 경우 촛불은 더욱 거대하게 타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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