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탄핵 늦추고 시간벌기..개헌논의 불붙여 판흔들기
개헌 매개로 제3지대세력 합종연횡 가속화
'朴 퇴진로드맵' 野 반대로 국회 논의 불투명드맵' 野 반대로 국회논의 착수 불투명
◆ 朴, 조기퇴진 선언 / 승부수 띄운 朴대통령…향후 정국 어디로 ◆
이날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사분오열된 국회에 '대권의 공'을 넘기면서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정치권 원로회의의 '내년 4월 하야' 요구와 28일 친박계 핵심 중진의 '명예로운 퇴진' 요청을 박 대통령이 수용한 셈이다.
일단 박 대통령은 처음으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공식화했다. 시간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퇴진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190만명의 촛불 민심이 정치권을 압박하면서 야권과 비박계가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이고, 검찰과 특검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누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다만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시한과 방식을 못 박지 않으면서 향후 정국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희망 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며 국회에 공을 넘겼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통령이 퇴진을 말했지만, 퇴진하는 게 아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직 국회의원 200명 돌파'라는 탄핵의 일차방정식에 매몰돼 있던 정치권은 청와대발 역제안에 복잡한 셈법의 고차방정식을 떠안았다.
일단 탄핵 카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의 키를 쥐고 있던 비박계가 박 대통령 퇴진 결정으로 구심점을 잃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대통령이 하야하고 내년 3월에라도 조기 대선을 치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중도연대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내년 6월(4월 하야) 조기 대선을 최적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현재 경쟁력 있는 대권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복귀 등을 감안해 내년 하반기 이후 대선을 원한다. 정치권에서 대통령 퇴진 시기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국회에서 다시 개헌 논의가 불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주류는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을 복안으로 가지고 새누리당을 끌어간다는 계획이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28일 열린 친박계 핵심 중진 오찬회의에서 수장 격인 서청원 의원이 대통령의 퇴진과 개헌은 함께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개진했다"며 "참석자 상당수가 동의한 것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주류는 헌법 개정 과정에서 개정헌법의 시행 시기를 부칙으로 명시하면 대통령의 퇴진 시한이 법적으로 명확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이날 담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일정뿐 아니라 '법 절차' 마련을 요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퇴진의 법 절차가 '헌법 개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청원 의원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이) 야권과 폭넓게 의견을 모아 정권 이양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당 지도부가 '정권 이양 일정과 절차'를 야당과 논의하고 △야권이 '거국내각 총리'를 추천해 국회에서 결정하며 △야권의 개헌 주장에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거국내각 총리는 야권에서 정하고, 대통령 퇴진 일정과 개헌은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리적 측면 외에도 여권에서 대통령 퇴진과 개헌을 한 묶음으로 끌고 갈 전략적 이유는 다분하다. 개헌을 반대하는 문 전 대표 세력을 고립시키면서 중도진영에 반문(反文) 스크럼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정계구도가 탄핵 찬반에서 개헌 찬반으로 바뀌면 고립되는 정치세력은 '친박계'가 아니라 '친문(문재인)계'로 바뀐다. 개헌 논의가 재점화되면 친박계는 개헌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를 당내에 붙잡아 두면서 오월동주를 유지할 수 있다. 외치와 내치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에서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로 재평가받을 수 있는 반 총장도 개헌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당은 개헌을 중심으로 제3지대 세력을 모으려 하고 있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민주당 의원도 '개헌'이라는 기치하에 합종연횡이 가능하다.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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