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무너진 국정교과서, 나오자마자 폐기 위기

조인경 2016. 11. 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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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현장검토본·집필진 공개
이준식 부총리, 현장 적용방식 고심중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정부가 지나치게 좌편향된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며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탄생과 동시에 폐기 위기에 놓였다. 교육부는 당초 국정교과서 전면 적용 방침을 고수하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일단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뒤 현장적용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로 돌아섰다.

청와대는 "국정교과서는 예정대로 간다"면서도 "교육부와 청와대 입장이 다르지 않고 철회도 아니다"는 애매한 답변만을 내놓고 있어 향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정국 상황에 따라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한치 앞을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28일 오후 1시20분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전용 웹사이트에 e-북 형태로 공개되는 시점에 맞춰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편찬기준을 설명한다. 교과서 최종본이 완성된 뒤 일선 학교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 집필진 중 일부가 이 자리에 참석한다. 베일에 가려졌던 집필진 전원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교과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 수렴절차도 곧바로 시작된다. 공개된 현장검토본을 보고 본인 인증절차를 거쳐 웹사이트에 의견을 남기면 이를 교과서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이 검토해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부총리는 앞서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질의 교과서를 만들었으니 국민께서 내용을 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하실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정교과서 내용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 논란은 대한민국 건국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친일·독재 미화 우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계획 부각 등 교과서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김상률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측근이었던 차은택씨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정화 추진 과정 자체에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파장이 더 커졌다.

교육부는 최씨와 국정교과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하지만 이미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 터라 설사 교과서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국민 정서상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게 됐다.

교육부도 이 같은 여론을 고려할 때 국정교과서를 내년 3월 신학기부터 일선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15 개정교육과정' 적용 시기에 맞춰 다른 과목 교과서처럼 2018년으로 시행 시기를 미루고 대신 일부 시범학교에만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 기존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 중 일선 학교가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 등 교과서의 내용을 살릴 수 있는 현장 적용 방안을 검토중이다.

국회에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되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되고 있는 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설사 내년 3월 청와대가 끝내 국정화를 강행한다 해도 국정교과서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면 국정교과서는 곧바로 폐기 수순을 밟게 돼 '1년짜리 교과서'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방은희 한국사교과서국정화반대저지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집필진과 집필기준도 공개하지 못한 채 깜깜이로 만들어진 교과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교육 현장의 목소리"라며 "단일 역사교과서를 전국적으로 일괄 적용하는 일은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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